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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의 <바람기억>

작곡/작사 나얼

by GAVAYA

안녕하세요?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나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XTBxoN3azlc?si=j98Q0iKQyX4GTb0_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

그 영원한 약속들을


나 추억한다면

힘차게 걸으리라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이별

그 바래진 기억에


나 사랑했다면

미소를 띄우리라


-나얼의 <바람기억> 가사 중 -




바람이 불어와

내 맘 속에 있는 기억을

흔들어 깨우면


지나간 세월을

추억해 보려

두 눈을 감아본다


바람이 내 안에

고요한 떨림을 만들고


그 작은 소리 놓치지 않으려

난 귀를 기울여 본다


내 안에 숨 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과

모자란 삶의 기억들이


불쑥 떠오를 때

난 피하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리라


우리의 믿음과 사랑

그 영원한 약속들을 추억하며

앞으로 힘차게 걸으리라


우리의 만남과 이별

그 바래진 기억을 사랑하며

환한 미소를 띄우리라




나얼은 1999년 4인조 R&B 그룹 <앤썸>으로 데뷔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2001년 <브라운 아이즈>와 2003년 <브라운아이즈소울>이었죠. 2008년 브라운 아이즈 3집 이후 활동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솔로 가수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가수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재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이번 노래는 너무너무 유명해서 뭐 딱히 설명이 없는 노래입니다. 2012년 첫 정규앨범에 실린 곡으로 높은음 때문에 손에 꼽히는 최악의 난곡이라 평가되고 있죠. 이 노래는 실수로 반 음을 높여서 녹음한 관계로 최고음이 3옥타브 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곡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노래 잘함' 인증을 받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커버한 가수도 부지기수고요.

자 그럼 본업인 가사로 들어가 보실까요? 이 노래는 서정적인 노래이고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입니다. 그 촉매제 역할을 바람이 하고 있죠. 그래서 제목이 <바람기억>입니다. 바람이 불러온 과거의 기억 정도가 부제로 알맞을 듯합니다.

첫 번째 가사가 '바람 불어와/ 내 맘 흔들면/ 지나간 세월에/ 두 눈을 감아본다'입니다. 어느 날 문득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지워진 줄 알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 있잖아요. 그럴 때 그 기억을 더 선명하게 그려내려고 지긋이 두 눈을 감아보는 거죠. 아마도 그 기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 아름답거나 애틋하게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기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나를 스치는 고요한 떨림/ 그 작은 소리에/ 난 귀를 기울여 본다'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내 살결과 부딪히며 살에 난 가는 털이 갈대처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고요한 떨림'이라고 표현한 게 아닐까 싶네요. 소리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의 세기지만 오롯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전해오는 작은 기억의 소리를 듣고자 집중해 보는 거죠.

그다음 가사가 좀 해석이 난해했습니다. '내 안에 숨 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들이 / 날 부딪혀 지날 때/ 그곳을 바라보리라' 부분요.

과거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기는커녕 더 커져버린 상황에서 관련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이를 회피하지 않겠다 정도로 1차 정리하고 넘어가 보죠.

2절에서는 1절 '내 안에 숨 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들이'와 '내 안에 있는/ 모자란 삶의 기억들이'가 매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자란 삶의 기억이란 게 어떤 것을 표현한 걸까요?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정도의 기억이 아니었을까요. 마무튼 이번에도 그럴 때 그곳을 바라본다고 말하네요.

후렴구를 살펴보면 좀 더 뜻이 명확해지겠죠.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 그 영원한 약속들을/ 나 추억한다면/ 힘차게 걸으리라'와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이별/ 그 바래진 기억에/ 나 사랑했다면/ 미소를 띄우리라'죠.

누군가를 진정으로 한 때나마 사랑했다면 지금은 헤어졌어도 그걸 추억으로 삼아 미소를 띠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정도로 요약이 될 듯한데요. 후렴구를 감안하면 앞에 나왔던 '그곳을 바라보리라'에서 '그곳'은 현재의 삶에서 버겁고 힘겨움을 느낄 때 찾게 되는 안락했던 과거라고 해석해야 타당할 듯합니다.

우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과거라는 시간의 기억을 쌓아갑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느 쪽에 가까운 상태냐에 따라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경우와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는 경우로 나뉘죠. 보통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일은 어느 정도 어른이 되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물리적인 사진이나 물건일 수도 있지만 비,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어떤 것들일 수도 있죠. 우리의 과거 기억도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제목을 <바람기억>으로 정한 것이 저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되는데요. 의도했던 안 했던 작사가가 바람도 기억도 실체는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한 점이 마음에 듭니다. 특히 바람처럼 떠나간다 혹은 사라진다 등 그 속성을 생각해 보면 그 기억이 홀연히 떠난 사람과 사랑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연상되네요.

옛사랑의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 기억을 꺼내보게 되는 순간. 아련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죠.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해 보신 적 있나요? 철부지 어린 시절 마음으로만 좋아했던 옆집 누나를 떠올리며 그 누난 지금쯤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장면이 그려지네요. 그런 따뜻한 <바람기억>을 간직하며 거기서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네요.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 곡 말고도 다루고 싶은 명곡 몇 개가 있는데, 작사보다는 작곡이, 작곡보다는 가수가 빛나는 곡이라 어찌 살을 붙여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아직 브런치에 다루지 못하고 있네요. 그 고민의 열쇠가 풀이고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날이 반드시 오겠죠. 개인적으로 브런치를 하는 이유는 <바람기억> 같은 우리 삶의 기억을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보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면 이상할까요? 하하하. See you. Coming Soon- (NO.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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