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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의 <스토커>

작사/작곡 10CM, 권정열, 윤철종

by GAVAYA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10CM'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mBGUPXyhRSA?si=4-nPmr_4-2W_oAdv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라만 보는데도


내가 그렇게 불편할까요

내가 나쁜 걸까요


아마도 내일도

그 애는 뒷모습만


- 10CM <스토커> 가사 중 -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뭐가 부족한지

얼굴은 평균 이하고

겉모습은 추레하지


누군가의 남친이 되기엔

부족함 투성이지

아니 낙제점이지


누군갈 좋아하는 일에

어떤 기준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슬프지만 안경 쓴 센 님을

누가 좋아하겠어


오히려 함께 다니는 게

부담스럽다고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도 알아

널 좋아하는 일을

어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내가 너라도 나보단

너의 남자 친구를 선택할 거야

물론 나도 너의 선택을 받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지


내가 널 사랑하고 원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멀리서 널 바로 보는 일


그런데도 너는

그렇게도 불편한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난 오늘도 내일도

그녀의 뒷모습만 쫓아

마치 난 스토커가 된 것 마냥






10CM는 2010년부터 활동한 1인조 인디 밴드입니다. 10CM라는 활동명은 전 멤버였던 윤철종 씨와 키 차이가 10CM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윤철종 씨가 탈퇴하면서 지금은 사실상 솔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명은 권정렬입니다.

<아메리카노>라는 음식 관련 노래로 히트를 쳤죠. 재미있는 건 이 노래가 청소년위원회 결정으로 유해매체로 판정되었다고 하네요. 담배 피우고 아메리카노 마시고 여친과 싸우고 바람피운다는 불건전 내용으로요. 이번 노래는 2014년 발매한 3집 <3.0>에 실린 곡입니다.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더 사랑을 받은 곡입니다.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 보죠. 무시무시한 <스토커>네요.

스토커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고의적으로 쫓아다니면서 상대방에 위협을 가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노래의 화자는 고의성과 위협 부분에서 스토커라고 볼 수 없죠.

그런데도 굳이 스토커적인 부분을 찾자면 너무 좋아해서 상대방을 쫓아다니는 정도죠. 친구 간에도 자꾸 동선이 겹치면 가볍게 '너 스토커야. 왜 자꾸 따라다녀'라고 말하잖아요. 그런 표현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전체 내용은 임자가 있는 한 여자를 좋아해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짝사랑 중인 한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곡입니다. 왜 자신을 스토커라고 느끼는지 가사를 따라가 보시죠.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가 첫 가사이지 마지막 가사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에둘러 이렇게 표현했네요. 그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난 못났고 별 볼일 없지'입니다. 그다음 가사가 '그 애가 나를 부끄러워 한다는 게 /슬프지만 내가 뭐라고'입니다. 자신을 바라봐 주기는커녕 부끄러워하는 상대방에 상처를 받고 자존감이 땅굴을 파고 지하로 내려간 상황이네요.

그다음 가사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요. '빛나는 누군갈 좋아하는 일에/ 기준이 있는 거라면/ 이해할 수 없지만/ 할 말 없는 걸/ 난 안경 쓴 샌님이니까'입니다. 일정한 기준 이상이 되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따져 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화자는 그 기준에 한 참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에 낙담하며 '안경 쓴 샌님'이라는 칭하죠. 근데 이 표현대로 라면 다소 답답해 보이긴 해도 모범생 이미지는 긍정적인 건데 그럴 좀 활용해 보면 어땠을까요.

2절에서는 1절에서 밝힌 이유로 '다 포기하고 참아야 하지'라고 자신의 할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나가는 남자친구를 제치고 본인이 그녀의 남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말하죠. 이 정도면 패배 의식에 절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이 노래에서 결정적인 노래 가사를 꼽으라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라만 보는데도/ 내가 그렇게 불편할까요/ 내가 나쁜 걸까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상황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걸 그 누군가도 압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죠. 그래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오해받을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좌절했지만 그 마음까지 거둘 수는 없었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유독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경계하는 것이 느껴지죠.

그래서 이런 가사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네요. '내가 그렇게 불편할까요? 내가 나쁜 걸까요?'라고요. 내 입장에서는 그녀를 좋아하고 바라본 것 밖에 없는데 그렇게 혼자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녀는 마치 대역죄인처럼 자신을 대하니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겠죠. 짝사랑할 거면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네요. 하하하.

오늘은 가사 속에 나온 '기준'이라는 것으로 썰을 간단히 풀어볼까 합니다. 예전에 사촌 형에게 '형은 삶의 철학이 뭐예요'라는 어처구니없고 다소 조숙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촌형이 뭘 그런 걸 물어라고 말하지 않고 '난 기준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기준? 그게 무슨 의미예요'라고 재질문을 던졌죠. 그랬더니 '삶이 잘 풀린 때는 나보다 더 잘 사람을 보고 삶이 안 풀릴 때는 나보다 더 안 풀리는 사람을 보며 겸손해지고 용기를 얻는다'라고 대답을 해 주었죠.

그러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백지연 아나운서 인터뷰를 보다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살아왔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사촌 형이 말했던 그 말이 데자뷔 되었죠. 내가 나를 보는 기준과 남들이 나를 보는 기준, 그리고 제삼자가 나를 보는 기준이 저마다 다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네. 기준이란 정하기 나름입니다. 사회적 시선도 하나의 기준이고요. 자신만의 기준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자신을 괴롭히는 기제가 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써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겠죠. 노래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적용을 했지만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세운 기준으로 힘든 삶을 스스로 좌초하고 있진 않으신지요? 하루에 하나씩 브런치를 해야 '진정한 브런처'가 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요. 네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죠. 하지만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깃발은 어디에 꼽을지는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전 언제든 틀렸다 싶음 바로 빼서 다른데 꼽자는 주의입니다만. 오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그렇게 좋아하던 아메리카노를 끊는 노력을 해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 7년 가까이 손수 커피를 내려먹어 왔죠). 10일쯤 되었네요. 워낙 해비 커피 중독자여서 일주동안 두통으로 꽤나 고생을 했네요. '세상이 안 바뀌면 나를 바꿔보겠노라'라는 어처구니없는 키치를 내걸며 객기를 부리고 있는 중입니다. '커피는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아'라는 일반적인 기준에 안티 하면서 저만의 기준을 재정립해 보려는 시도라고 보면 어떨까요? 하하하.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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