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작사/작곡 이적

by GAVAYA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이적'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BklP_G__BRU?si=84qs_3zBQmufPY2k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가사 중 -




해가 저무는 모습을

웅크린 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긴 밤 너를 기다려봤지만

끝내 너는 나타나지 않았어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

잠깐이면 된다는 말

여기서 있으면

된다고 했던 말이

거짓말인 줄도 모른 채

너를 하염없이 기다렸어

니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어


이제 다시 나는 혼자가 됐어

모든 추억들은 버려지고

나는 사랑할 자격을 잃었어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

상처까지 안아줄 거라는 말

모두가 거짓말이었어


찬 바람에 얼어붙은 길처럼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은 1995년 패닉 정규 1집 <PANIC>으로 데뷔했습니다. 패닉은 친한 동생이었던 김진표 씨와 함께 결성한 그룹이죠. <달팽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1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명은 이동준입니다. 활동명은 대학교 4학년 때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데뷔 당시 외자로 짓는 것이 유행이었고 좀 세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 씨 성에 '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한자로는 '피리 적'인데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좋아해서라고 합니다. 참고로 <피리 부는 사나이는>는 독일 하멜른이라는 도시가 늘어나는 쥐들로 골치를 썩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자신의 피리로 쥐를 조정해서 모든 쥐를 강물로 유인해 빠뜨려 퇴치하는 내용이죠. 다 아시죠? 이 뒷 이야기가 시장이 돈이 아까워 약속을 지키지 않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주인공이 마을의 아이들을 피리로 현혹해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을 담은 동화죠.

이적은 작곡/편곡 능력도 발군이지만 가사 역시 무진장 잘 씁니다. 음악 천재에 가장 가까이 손을 뻗은 음악인이죠. <거위의 꿈>을 비롯해서 <그땐 그랬지><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말하는 대로> 등 주옥같은 노래가 즐비하죠.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많은 리스너의 사랑을 받고 있죠.

이번 노래는 2013년 발매한 솔로 앨범 5집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 이 노래 있었지. 맞아?' 이런 감탄사를 연발하는 곡이죠. 왜 노래 제목에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쓴 것일까요? '완전 거짓말'이라는 뜻일까요? 본업인 가사 속으로 같이 들어가서 이 부분을 파헤쳐 보시죠.

흔히들 이별하고 나면 사귈 때 했던 수많은 말들이 한 마디로 거짓말이 되는 비극을 경험합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첫 가사인데, 바로 이런 부분을 표현하고 있죠. 앞의 세 가지가 모두 거짓말이라는 의미로 세 번 거짓말이라는 가사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영원이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간에 한 달콤한 모든 말이 이제 거짓말이 된 겁니다.

2절에도 비슷한 전개가 보이는데요.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음' 부분이죠. 1절과 다른 점을 눈치채셨나요. 네. 거짓말이 3번 반복되는 가사에서 마지막 한 번은 '음'이라는 가사로 처리를 해 버리죠. 전 이 부분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되는데요. 왜냐면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White lie'라는 것을 감지한 지점처럼 느껴져서입니다. 말 그대로의 거짓말이 아니라 선의의 거짓말임을 알고 '음'이라는 단어로 바꾼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작사가님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다음 가사가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입니다. 화자는 이별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죠.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뻔하죠. 상대가 결국 나타나지 않은 거죠. 그러면서 지난날 그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복귀해 봅니다. 날 사랑한다는 말 기다려 달라는 말 등 그가 했던 모든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되는 것이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부분이죠. 노래의 화자는 상대의 변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추운 밤을 보내다 그만 찬바람에 두근거리던 심장마저 얼어버렸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차가운 길로 비유적으로 표현했는데 마치 시적 내음이 풍기는 듯한 가사라 참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부분은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지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음' 부분입니다. 노래의 화자가 이제 이별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것 같죠. 그러면서 상대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본인이 너무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여기서 마지막에는 '거짓말'이 한 번 나오죠. 3번->2번->1번으로 거짓말 언급 회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거짓말을 했던 상대에게 보냈던 원망의 화살을 하나둘씩 자신에게로 걷어들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하네요.

네 이적의 노래에는 그만의 쓸쓸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쓸쓸함이 예전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던 최백호 씨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특유의 찢어지는 듯한 고음 처리도 매력적인 곡입니다. 떠난 상대를 탓한다기보다는 남겨진 누군가를 위로하는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자. 오늘은 당연히 거짓말에 대해 썰을 좀 풀어야겠죠. 거짓말의 반대는 당연히 진실이라는 단어죠. 여러분들은 거짓과 진실을 잘 구분하시는 편이신가요? 상대의 거짓말을 잘 꿰뚫어 보시나요? 우리 모두는 진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과 진실이 뒤엉켜 있는 곳이죠.

그 안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를 따지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도 생기고 진실을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래서 세상이 이토록 혼탁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여러분만의 노하우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상대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을 안 하기 위해 침묵하거나 대화의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본 적 있으시죠?

속이기로 작정한 사람을 당해낼 재간은 없겠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팁을 하나 드린다면 말과 행동의 일치를 눈여겨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지만 행동까지 그러긴 쉽지 않죠. 언행일치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거의 절반 가량의 거짓을 가려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이네요. 이 노래 역시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죠. 진실을 알아차리는 일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니 거짓도 때론 그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PS. 빅마마의 이지영 씨가 KBS <불후의 명곡> 이적 편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래 이적이 있었지. 하마터면 빼먹을 뻔했네'라고 혼잣말을 했더랍니다. 도전 1000곡을 하는 저로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노래는 화수분처럼 계속 샘솟으며 저에게 힘을 주고 있네요. 이제 120곡을 갓 넘어섰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죠. 다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길고 험난하겠지만 만만디의 정신으로 진짜 브런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해 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See you. Coming Soon- (NO.17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동균의 <나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