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균은 2002년 7 Dayz라는 5인조 남자보컬 그룹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2004년 멤버가 일부 교체되며 그룹명을 Wanted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스케줄을 소화하다 불의의 사고로 멤버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고 이때 하동균도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3년 후 원래 7 Dayz 멤버였던 이정 씨가 합류하며 7 Dayz+Wanted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죠.
하동균의 목소리는 처음엔 미성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흉성을 이용한 허스키 보이스는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네요. 2012년 이후가 지금 우리가 듣는 목소리의 시작이죠. 솔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 차별화된 목소리는 반드시 필요한 항목인데, 잘 자리 잡은 듯합니다. 이번 노래는 2008년 발매한 2집 앨범 <Anothe Corner>에 수록된 곡입니다. <그녀를 사랑해 줘요>로 솔로가수에 안착한 후 두 번째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동균 씨 인터뷰에 따르면 동료 사고로 인해 이 노래들에 흠뻑 빠져 있어야 할 시기에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해 이 당시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노래가 사랑하는 연인보다는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하동균 씨 삶의 일부를 가사로 쓴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이 노래는 생각보다 가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창력으로 후렴구를 반복한 탓에 말이죠. 한 문장씩 꾹꾹 눌러 해석해야 하는 난해함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가사는 많아도 정리하느냐 애먹고 이리 없어도 사라진 중간을 그려내느냐 애먹습니다. 하하하.
여러분은 누군가가 눈물 나게 그리워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그리움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만나 눈물이 되기도 합니다. 첫 가사가 '한 밤 널 그리워하다/ 두 밤 널 기다리다가/ 새 밤 널 찾아 나선다 그만/ 눈물이 나서 울었어'입니다. 그리움 -> 기다림 -> 찾아 나섬 -> 눈물흘림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전개입니다.
다음이 '우린 헤어진 걸 알아/ 다시 만날 수가 없는 걸 알아'인데요. 마치 눈물을 흘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죠. 그리운 대상과 헤어져 다시 볼 수 없는 현실을 자각했기에 그리움은 눈물로 마감하게 됩니다.
2절에서도 비슷한 가사가 보이는데요. '우리 사랑한 게 맞아/ 그러다가 끝난 게 맞아' 부분이죠. 전체적으로 이별을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가사에서 보면 담담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다음 이어지는 가사가 '항상 사랑한 기억 떠오를 때면/ 괜스레 웃다가 결국엔 울잖아'입니다.
사랑할 때는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었는데 그게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바뀌면서 지금 남아있는 것은 눈물뿐이라는 의미죠.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앤딩이네요. 좋았던 기억이 몇 배 많아도 지금이라는 시점과 이어지지 못하면 한 낮 슬프고 아련한 추억에 불과하게 될 뿐이니까요.
'다만 한 번쯤 니가 보고 싶은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지는데' 부분은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치면 끝내 눈물 바가지를 흘린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 사람을 딱 한번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보는 거죠.
그런다고 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존재가 없어짐 혹은 사라진 부재 상황을 염두한 상태에서 갖는 그리움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아마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죽음과 같은 이별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아시다시피 '나비야 나비야/ 너를 부르던 그 말/ 날 보며 웃어주던/ 행복했던 그날/ 그리워 그리워/ 니 얼굴이 그리워/ 하루만 더 자고 나면/ 내 눈에 보일까'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딱히 해석할 것은 없고 가사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다만 내 님을 부르는 애칭인 나비야에 대해서만 짚고 가보겠습니다. 꽃사슴, 강아지 등 사랑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다른 표현도 있었을 텐데 왜 나비를 썼을까요? 아마도 나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성장 과정에서 탈피하는 것이 떠오르고 다른 하나는 훨훨 어디론가 날아갔다 정도일 텐데요. 이 노래에서는 후자를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디론가 거침없이 떠나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말, 그 누군가의 애칭을 부르면 왠지 행복한 과거의 기억이 잠시 돌아오는 것 같다가도 이내 그리움에 사무치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오늘은 '상실'이라는 단어로 썰을 좀 풀어볼까 하는데요. 상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며,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다 보니 그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이 오면 상실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죠.애착이 있었던 인형이나 애완동물을 비롯해서 사랑하는 애인과 부모님 등 물리적, 관계적 상실 모두 우리를 고통스럽하는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상실감을 극복하고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불가피한 상실은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까요?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 자신의 마음을 지나치게 많이 투영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상실에 아파하는 이유는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하는 것이니 만큼 그것이 갖는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이겠죠. 나 역시 사람이니 무언가의 만남이 있는 것처럼 헤어짐도 늘 있기 마련이다라는 정도의 마인드 셋 말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한자성어가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상실에 대처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가사실종사건>에서 매우 많이 다루고 있는 이별이라는 단어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실을 노래하고 있죠. 상실에 대처하는 게 쉬웠다면 구구절절한 노래가사가 이리도 많이 나와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도 시작하기 어려웠을 듯하고요. 하하하.
어찌 보면 우리 삶은 상실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초등학생에 머무를 수도 없고 매년 한 해를 떠나보내며 살고 있으니까요. 상실의 감정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상실의 아픔이 더 큰 무엇일수록 우리 삶에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더 아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많은 상실을 겪어가면서 우리 삶은 그만큼 단단해지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오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주 쓰는 애칭은 무엇인가요? 자기야, 허니부터 누구 엄마, 별명 등등. 저는 개인적으로 애칭을 따로 부르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이름을 부르죠. 그래서 그 애칭을 부르는 사람이 바뀌어 다른 사람에게 또 같은 애칭을 부르는 촌극은 발생하지 않죠. 하하하. 어제 소개해 드린 샘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에서 노래의 화자가 다른 사람에게 Baby라고 부르는 것을 알아서 분노하는 모습이 데자뷔 되네요. 애칭을 달콤하게 만들어 부르는 노력보다 사랑해라는 말을 더 자주 해주는 게 어떨까요? 주말 마무리 잘하시고요. See you. Coming Soon- (NO.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