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은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으로 데뷔했습니다. 원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는데 빈곤을 벗어나려고 방송활동을 시작했다고 하죠.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른 가수 김현식 씨가 언더그라운드 데뷔를 도왔다고 전해지고요. 방송 펑크를 내면서 7년간 방송 출연 금지를 당했다고 하네요.
그러다 다시 1998년 다시 방송국을 찾으며 냈던 노래가 4집 앨범에 실린 <나와 같다면><사노라면>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까지 히트하며 무명의 설움을 한 순간에 떨쳐버리게 되죠. 이 노래 외에도 <난 남자다><혼잣말> 등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장훈은 뭐니 뭐니 해도 공연계에 큰 반향을 가져왔죠. 자신의 무대를 연출하는 것을 넘어서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연출까지 맡았으니까요. 공연 중 그의 발차기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2016년에는 <나를 도발한다>는 수필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나눔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었다고 하죠
그만큼 Top of Top 기부천사이기도 합니다. 음색이 워낙 독특하죠. 워낙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는 스타일이라 목소리에 부담이 많이 가중되며 여러 번 가수 인생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가 안정감을 찾아가는 역주행 가수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짚고 가보죠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다 아시죠? 푸시킨이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에서 파생된 말이죠.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는지 가사를 같이 살펴보시죠.
'흔들리는 그대를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픈 거죠/ 그댈 떠나버린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이젠 다 잊어주길 바라요'가 첫 가사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 그려지죠. 화자는 그걸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하고요.
'한없이 울고 싶어 지면/ 울고 싶은 만큼 울어요/ 무슨 얘기를 한다 해도 그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는 걸 알기에' 부분입니다. 화자 본인도 상대와 이루어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일까요. 이별로 인한 상대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 같죠.
'난 어쩌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잘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몰라요/ 그대를 볼 때면 늘 안타까웠던 거죠/ 우리의 만남이 조금 늦었다는 것이' 부분입니다. 화자의 감출 수 없는 본심이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상대가 겪은 이별이 아플 걸 알지만 자신의 자리가 없는 상황이 더 안타깝고 크게 보였던 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빨리 이별을 해야 자신이 상대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그 누구보다 그대 사랑했음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기억해요' 부분입니다. 이제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운명의 장난 같이 이별의 아픔을 겪는 상대에게 세상이 그대를 속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제 화자 자신을 봐 달라고 말하는 것 같죠.
네. 오늘은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대해서 썰을 풀어봐야겠네요. 삶이 사기라도 쳤다는 말일까요?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삶이 전개될 때 우린 이 말을 꺼내 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우 있으시죠? 저는 이 표현 뒤에 붙는 말이 더 의미심장하다고 보는데요. '슬퍼하거나 노여워지 말라' 말이죠.
삶이 그대를 속일 때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억울함이 아닐까 싶은데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그걸 아무런 신호도 설명도 없이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당한 사람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이'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게 되는 거죠.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성실히 살아온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 따위를 받는 상황을 떠올려 보게 되네요.
우린 살다 보면 착한 삶-나쁜 결과로 나타나는 상황을 적지 않게 접하게 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뇌는 원인과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착한 삶-좋은 결과, 나쁜 삶-나쁜 결과를 당연시하죠. 실제는 아닌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때 우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고 말할 겁니다.
제 첫 책 <지구복 착용법>에 '부조리'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바로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제 나름의 관점으로 풀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권선징악처럼 조리에 맞는 세상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렇지가 않으니 우리 속을 매번 뒤집어 놓는 거죠.
조리에 맞지 않는 부조리 상황에 노출되면 우린 자연스럽게 '세상이 나를 또 속이고 있구나'라는 말을 꺼낼 겁니다. 전 '당위'를 보지 말고 '현실'을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리에 맞게 세상이 운행되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야 이해하기 편하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부조리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자 혹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 당위의 관점을 내려놓고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야 두 가지 세계가 모두 마음에 담아지거든요. 철학의 한 챕터라 할 만큼 우리 인생의 부조리는 참 대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조리를 상수로 놓고 각자만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이 유일하죠. 여러분들은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오늘은 이것으로 브런치를 마치겠습니다.
PS. 이 노래를 커버한 영지씨는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서운해 마시고요. 저는 역으로 삶이 저를 속이는 순간을 사랑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믿고 있던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동안의 진실이 늘 세상에서 통했다면 죽는 날까지 그것이 쭉 옳다고 믿고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불현듯 나타나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제가 너무 긍정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 건가요? 하하하.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