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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Apr 16. 2024

한경일의 <내 삶의 반>

작사 강은경 작곡 서동성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한경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Q_U7 faogoaQ? si=3 m0 EE8X9 RM6 Vt7 CS

깊은 사랑이 죄라면 

반으로 줄일게


하늘아 그 대신 

그녈 행복하게 해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으로 줄여도


그 소원 하나에 

모두 다 바치고 갈게


- 한경일의 <내 삶의 반> 가사 중 - 




웃자

마지막 기억으로 남게

이 한 번의 미소를 띠기 위해

천 번을 흘렸을 눈물


깜깜한 미래

널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지

슬픈 세상

멀리 널 보내는 게

사랑하는 거라고 말을 했지


지독한 그리움

내 앞을 가로막아

거친 세상에

익숙해지게 날 맡겨봐


눈을 뜨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 괴로워

이대로 잠들어 버렸으면 했지

그 사이 사랑의 흔적이

먼지처럼 사라져 가길 바라면서


널 지키지 못한 죄

달게 받을 테니

넌 내 곁에서 흘린 눈물만큼

다른 사람과 행복하길 바랄게


내 사랑을 내 남은 삶을

반으로 줄여서라도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게




한경일은 2002년 정규 앨범 1집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정규 앨범 6집에 미니앨범 2집, 그리고 다수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현재까지 2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본명은 박재한 씨고요. 데뷔곡은 '한 사람을 사랑했다'라는 곡입니다. 

특이한 게 대한민국에서 싱글 앨범을 가장 많이 낸 가수라는 타이틀을 보유 중입니다. 2013년 무렵부터 10년가량 꾸준하게 싱글앨범을 많을 때는 열몇 곡 씩 발표하고 있네요. 적중률이 좀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열정만큼은 높이 사고 싶네요. OST도 많이 불렀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2003년 발매한 2집에 실린 가장 잘 알려진 곡이죠. 이 노래가 대히트를 쳤지만 본인은 얻은 수입이 없어서 허름한 월세집에 살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는 안타까운 자기 고백이 있었죠. 3집을 준비하다가 소속사와 갈등으로 모든 활동을 취소하고 1주일간 잠적했는데 사건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출연이 막혔고 음악 활동은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죠.

2011년부터는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했고 그러다 슈퍼스타 K5에 출연하기도 했죠. 히든싱어 2 신승훈 편에서는 모창가수로 나와서 3라운드까지 생존했습니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도 출연했고요. 아무튼 보든 안 보든 전천후로 왕성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파이팅! 응원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내 삶의 반'입니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반쪽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노래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헤어지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의 삶의 반을 내놓을 테니 그 또는 그녀의 행복을 보장해 달라는 가사입니다. 얼핏 봐선 말이 안 되는 가사죠? 왜 이런 얼토당토 안 한 내용인지 같이 톱아보시죠.

'이제 떠나는 그대여 나처럼 웃어줘/ 기억될 모습은 항상 그것뿐이게/ 그저 한 번의 미소를 너에게 보이려/ 천 번도 더 흘린 그 뒤에 눈물을 알까'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이별 상황입니다. 기억될 마지막 모습을 미소로 남기기 위해 수 천 번 눈물을 흘리면 연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연습으로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결정적으로 그런 피나는 연습을 상대가 알아주길 약간 기대하는 듯하죠.

'아무런 기대도 없는 미래/ 끝내 널 지치게 한 나/ 멀리 보내주는 게 사랑하는 거라고/ 슬픈 이 세상이 내게 말해' 부분입니다. 못난 화자 + 사랑받기 충분한 상대라는 공식이 이 가사에서도 나오죠. 못난 화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난 누군가에게 보내주는 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거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표현하고 있죠.  

'널 향한 지독한 그리움/ 내 앞에 기다리겠지만/ 거친 세상에 날 맡기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겠지' 부분입니다. 상대를 보내고 다가올 감정의 소용돌이가 두려워진 모양입니다. 그리움에 치를 떨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자신을 내깔겨두면 그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겠냐고 정리하죠.

2절을 볼까요?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차라리 눈떠지지 않길/ 세상에 남은 사랑의 흔적을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너 하나 이렇게 지키지 못해/ 내리는 모든 벌 달게 받겠지만/ 내 곁에 머물며 흘렸던 눈물/ 다음 사람에게서 모두 보상받기를 바라' 부분입니다. 잠이 마음정리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사실에 기반한 가사가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알았지? 하하하. 비참한 현실을 볼 수 없어 차라리 잠들어 눈떠지지 않길 바라고 있죠. 그런데 정도가 문제죠. 사랑의 흔적이 닳아 없어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은유로 봐야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깊은 사랑이 죄라면 반으로 줄일게/ 하늘아 그 대신 그녈 행복하게 해/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으로 줄여도/ 그 소원 하나에 모두 다 바치고 갈게' 부분입니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죠. 이별의 아픔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습니다. 하늘에게 명령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깊은 사랑과 아직 남은 생명의 반을 희생할 테니 상대의 행복과 바꾸자고 거래를 제안합니다. 파우스트가 생각나네요. 

네. 이 노래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상대와의 이별 과정에서 화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너무 사랑한 죄를 달게 받겠다는 화자. 그리고 자신의 반쪽을 잃었으니 그 반만큼만 생명이 붙어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을 줄여서'라고 표현했죠. 역시 강은경 작사가 답습니다. 


음. 오늘은 '깊은 사랑이 죄라면'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볼까요.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 말이죠. 네. 저는 죄라고 생각한답니다. 하하하. 이 노래에서는 그다음 가사로 '반으로 줄일게'가 이어지는데요. 감정을 칼로 무 자르듯이 반으로 딱 가를 수는 없는 것이겠죠.

오늘은 제가 깊은 사랑이 죄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죠. 어느 광고장이가 TV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태워본 사람만이 후회가 없다'고요. 멋진 말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이 말에 안티를 하게 되었답니다.

우린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번아웃 같은 증상이 오는 것도 그런 열심히가 만들어낸 후폭풍일 수 있잖아요. 알츠하이머라고 우리가 흔히들 치매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기억이 지속적으로 상실되는 안타까운 병인데 의외로 주변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고스톱 같이 뇌활동을 많이 하는 활동을 평소에 하면 알츠하이머를 늦출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이 들어서까지 학문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알츠하이머가 발견되면서 이 가설에 조금씩 균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뇌의 활동을 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죠.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는 옛 말씀을 떠올려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4일제 근무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옵니다. 4일 동안 힘들게 일하고 3일을 쉬자는 주장인데요. 월급을 4일만 주는 방법도 있고 5일 치 일을 4일에 몰아서 하고 돈은 기존과 똑같이 받는 방법도 거론됩니다. 이처럼 우린 뭔가를 몰아서 하고 쉬는 생활 방식을 좋은 것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뭔가를 몰아서 할 때 열정을 쥐어짤 때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5일 치 일은 10일에 나눠서 하는 방식이 훨씬 건강에는 좋을 수 있다는 말이죠. 자본주의식 사고는 당연히 전자를 추종합니다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이런 여유와 여백의 미가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심장도 다 내놓을 만큼, 그 사람이 곧 나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순간 자신을 돌보는 것은 쉽게 잊히게 되죠. 이것이 진정 건강한 사랑의 모습일까요? 혹여라도 이 노래처럼 상대가 떠나며 남긴 자리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내 절반을 줄 테니 너라도 행복했으면 한다는 게 정상적인 사고냐 말이죠. 하하하.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 떠오릅니다.

뭐든 뽕을 뽑아야 성이 풀리는, 일이 땡꽁하게 마무리되어야만 한다는 완벽성 등을 좀 내려놓은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인생을 걸어도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고 좀 편안한 마음이면 어떨까요? 오늘 남긴 2%가 내일을 살게 하는 이유나 의미가 되는 삶이면 어떨까요? 뭐든 너무 깊어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니까요. 정이 있으면 반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반쪽 삶이 온전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로 전 깊은 사랑도 죄라고 생각한답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사랑은 5:5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죠. 그걸 재는 공식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내가 꽃을 주었더니 맛있는 밥을 사더라고'에서 꽃과 밥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좋은 사랑은 5:5 법칙에 수렴해 가는 것 같긴 합니다. 처음엔 1:9나 2:8에서 점점 시간이 더할수록 5:5에 근접해 가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몇 대 몇의 관계 속에 있으신가요? 좀 기울어졌다면 5:5의 법칙에 수렴하는 행동이나 말을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NO.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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