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경일의 <내 삶의 반>

작사 강은경 작곡 서동성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한경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Q_U7 faogoaQ? si=3 m0 EE8X9 RM6 Vt7 CS

깊은 사랑이 죄라면

반으로 줄일게


하늘아 그 대신

그녈 행복하게 해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으로 줄여도


그 소원 하나에

모두 다 바치고 갈게


- 한경일의 <내 삶의 반> 가사 중 -




웃자

마지막 기억으로 남게

이 한 번의 미소를 띠기 위해

천 번을 흘렸을 눈물


깜깜한 미래

널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지

슬픈 세상

멀리 널 보내는 게

사랑하는 거라고 말을 했지


지독한 그리움

내 앞을 가로막아

거친 세상에

익숙해지게 날 맡겨봐


눈을 뜨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 괴로워

이대로 잠들어 버렸으면 했지

그 사이 사랑의 흔적이

먼지처럼 사라져 가길 바라면서


널 지키지 못한 죄

달게 받을 테니

넌 내 곁에서 흘린 눈물만큼

다른 사람과 행복하길 바랄게


내 사랑을 내 남은 삶을

반으로 줄여서라도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게




한경일은 2002년 정규 앨범 1집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정규 앨범 6집에 미니앨범 2집, 그리고 다수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현재까지 2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본명은 박재한 씨고요. 데뷔곡은 '한 사람을 사랑했다'라는 곡입니다.

특이한 게 대한민국에서 싱글 앨범을 가장 많이 낸 가수라는 타이틀을 보유 중입니다. 2013년 무렵부터 10년가량 꾸준하게 싱글앨범을 많을 때는 열몇 곡 씩 발표하고 있네요. 적중률이 좀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열정만큼은 높이 사고 싶네요. OST도 많이 불렀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2003년 발매한 2집에 실린 가장 잘 알려진 곡이죠. 이 노래가 대히트를 쳤지만 본인은 얻은 수입이 없어서 허름한 월세집에 살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는 안타까운 자기 고백이 있었죠. 3집을 준비하다가 소속사와 갈등으로 모든 활동을 취소하고 1주일간 잠적했는데 이 사건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한 때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출연이 막혔고 음악 활동은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죠.

2011년부터는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했고 그러다 슈퍼스타 K5에 출연하기도 했죠. 히든싱어 2 신승훈 편에서는 모창가수로 나와서 3라운드까지 생존했습니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도 출연했고요. 아무튼 보든 안 보든 전천후로 왕성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파이팅! 응원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내 삶의 반'입니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반쪽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노래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헤어지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의 삶의 반을 내놓을 테니 그 또는 그녀의 행복을 보장해 달라는 가사입니다. 얼핏 봐선 말이 안 되는 가사죠? 왜 이런 얼토당토 안 한 내용인지 같이 톱아보시죠.

'이제 떠나는 그대여 나처럼 웃어줘/ 기억될 모습은 항상 그것뿐이게/ 그저 한 번의 미소를 너에게 보이려/ 천 번도 더 흘린 그 뒤에 눈물을 알까'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이별 상황입니다. 기억될 마지막 모습을 미소로 남기기 위해 수 천 번 눈물을 흘리면 연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연습으로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결정적으로 그런 피나는 연습을 상대가 알아주길 약간 기대하는 듯하죠.

'아무런 기대도 없는 미래/ 끝내 널 지치게 한 나/ 멀리 보내주는 게 사랑하는 거라고/ 슬픈 이 세상이 내게 말해' 부분입니다. 못난 화자 + 사랑받기 충분한 상대라는 공식이 이 가사에서도 나오죠. 못난 화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난 누군가에게 보내주는 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거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표현하고 있죠.

'널 향한 지독한 그리움/ 내 앞에 기다리겠지만/ 거친 세상에 날 맡기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겠지' 부분입니다. 상대를 보내고 다가올 감정의 소용돌이가 두려워진 모양입니다. 그리움에 치를 떨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자신을 내깔겨두면 그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겠냐고 정리하죠.

2절을 볼까요?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차라리 눈떠지지 않길/ 세상에 남은 사랑의 흔적을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너 하나 이렇게 지키지 못해/ 내리는 모든 벌 달게 받겠지만/ 내 곁에 머물며 흘렸던 눈물/ 다음 사람에게서 모두 보상받기를 바라' 부분입니다. 잠이 마음정리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사실에 기반한 가사가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알았지? 하하하. 비참한 현실을 볼 수 없어 차라리 잠들어 눈떠지지 않길 바라고 있죠. 그런데 정도가 문제죠. 사랑의 흔적이 닳아 없어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은유로 봐야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깊은 사랑이 죄라면 반으로 줄일게/ 하늘아 그 대신 그녈 행복하게 해/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으로 줄여도/ 그 소원 하나에 모두 다 바치고 갈게' 부분입니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죠. 이별의 아픔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습니다. 하늘에게 명령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깊은 사랑과 아직 남은 생명의 반을 희생할 테니 상대의 행복과 바꾸자고 거래를 제안합니다. 파우스트가 생각나네요.

네. 이 노래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상대와의 이별 과정에서 화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너무 사랑한 죄를 달게 받겠다는 화자. 그리고 자신의 반쪽을 잃었으니 그 반만큼만 생명이 붙어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아직 남겨진 내 삶을 반을 줄여서'라고 표현했죠. 역시 강은경 작사가 답습니다.


음. 오늘은 '깊은 사랑이 죄라면'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볼까요.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 말이죠. 네. 저는 죄라고 생각한답니다. 하하하. 이 노래에서는 그다음 가사로 '반으로 줄일게'가 이어지는데요. 감정을 칼로 무 자르듯이 반으로 딱 가를 수는 없는 것이겠죠.

오늘은 왜 제가 깊은 사랑이 죄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죠. 어느 광고장이가 TV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태워본 사람만이 후회가 없다'고요. 멋진 말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이 말에 안티를 하게 되었답니다.

우린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번아웃 같은 증상이 오는 것도 그런 열심히가 만들어낸 후폭풍일 수 있잖아요. 알츠하이머라고 우리가 흔히들 치매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기억이 지속적으로 상실되는 안타까운 병인데 의외로 주변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고스톱 같이 뇌활동을 많이 하는 활동을 평소에 하면 알츠하이머를 늦출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이 들어서까지 학문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알츠하이머가 발견되면서 이 가설에 조금씩 균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뇌의 활동을 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죠.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는 옛 말씀을 떠올려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4일제 근무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옵니다. 4일 동안 힘들게 일하고 3일을 쉬자는 주장인데요. 월급을 4일만 주는 방법도 있고 5일 치 일을 4일에 몰아서 하고 돈은 기존과 똑같이 받는 방법도 거론됩니다. 이처럼 우린 뭔가를 몰아서 하고 쉬는 생활 방식을 좋은 것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뭔가를 몰아서 할 때 열정을 쥐어짤 때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5일 치 일은 10일에 나눠서 하는 방식이 훨씬 건강에는 좋을 수 있다는 말이죠. 자본주의식 사고는 당연히 전자를 추종합니다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이런 여유와 여백의 미가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심장도 다 내놓을 만큼, 그 사람이 곧 나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순간 자신을 돌보는 것은 쉽게 잊히게 되죠. 이것이 진정 건강한 사랑의 모습일까요? 혹여라도 이 노래처럼 상대가 떠나며 남긴 자리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내 절반을 줄 테니 너라도 행복했으면 한다는 게 정상적인 사고냐 말이죠. 하하하.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 떠오릅니다.

뭐든 뽕을 뽑아야 성이 풀리는, 일이 땡꽁하게 마무리되어야만 한다는 완벽성 등을 좀 내려놓은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인생을 걸어도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고 좀 편안한 마음이면 어떨까요? 오늘 남긴 2%가 내일을 살게 하는 이유나 의미가 되는 삶이면 어떨까요? 뭐든 너무 깊어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니까요. 정이 있으면 반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반쪽 삶이 온전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로 전 깊은 사랑도 죄라고 생각한답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사랑은 5:5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죠. 그걸 재는 공식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내가 꽃을 주었더니 맛있는 밥을 사더라고'에서 꽃과 밥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좋은 사랑은 5:5 법칙에 수렴해 가는 것 같긴 합니다. 처음엔 1:9나 2:8에서 점점 시간이 더할수록 5:5에 근접해 가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몇 대 몇의 관계 속에 있으신가요? 좀 기울어졌다면 5:5의 법칙에 수렴하는 행동이나 말을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NO.26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현성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