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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May 10. 2024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작사/작곡 서태지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0 zqjMTVKtaE? si=-zGl71 kcgVzt1-Rj

난 정말 그대 그대만을 좋아했어

나에게 이런 슬픔 안겨 주는 그대여

제발 이별만은 말하지 말아요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 서태지와 아이돌의 <난 알아요> 가사 중 -




서태지와 아이들은 3인조 남성 그룹으로 1992년 데뷔했습니다.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가 멤버입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역사가 이들의 출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입을 모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졌던 그룹이죠. <가사실종사건> 300회를 맞아 '서태지와 아이들'을 재조명해 봅니다.

가요계의 지각변동. 최초의 힙합댄스그룹. 문화의 아이콘. K-POP의 진정한 시작점 등 이 그룹을 꾸며주는 수식어만도 셀 수 없이 많죠. 서태지와 아이들이 왜 그렇게 추앙받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세계적인 음악 흐름에 합류한 시작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1990년 전까지 우리나라는 미국 중심의 세계 음반 시장을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소비하기 바빴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외국 노래를 번안해서 부르는 식으로 대응했죠.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겁니다. 음반을 내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의 혼을 쏙 빼놓은 거죠.

경제로 비유를 해 보면 선진국은 컴퓨터 팔고 있을 때 가발이나 안경 팔던 나라가 갑자기 컴퓨터 CPU를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컴퓨터도 모르는데 컴퓨터 CPU를 보여줬으니 말이죠. 그것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까지 붙여서.

이들이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를 저는 정확히 기억합니다. MBC <특종 TV 연예>였는데, 이 프로그램 내에 지금으로 보면 신인발굴 정도의 꼭지가 있었는데요. 그들의 무대를 심사위원과 리스너들이 너무 생경한 음악이라서 당황한 나머지 낮은 점수를 주는 촌극이 벌어졌죠.

랩 음악을 좋아했던 서태지가 춤을 배우기 위해 양현석을 찾아갔고 군 제대 후 서태지가 들려준 음악을 잊지 못해 다시 만나 듀엣을 결성한 게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춤꾼 이주노 씨가 합류하게 되고요. 이주노 씨의 늦은 합류로 1집에는 그의 목소리가 없다고 하네요. 저도 몰랐네요.

발매하는 음반마다 고유성이 반짝였습니다. 1집은 댄스와 랩, 2집은 국악과 힙합, 헤비메탈, 3집은 랩 메탈, 4집은 갱스터 랩이었죠. 보컬,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서 등 음악 전반을 서태지가 담당했고 두 사람은 춤이 압권이었습니다. 옥에 티라면 '철이와 미애', '현철과 벌떼들'처럼 팀명만큼은 예전 버전이라는 정도죠.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 자체의 영향력도 눈부시지만 음반 저변의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줬습니다. 기획사와 방송사의 권위를 단숨에 무너뜨렸고 음반 활동 공백기를 갖으며 '컴백'이라는 개념을 만들기도 했죠. 그리고 가수에게 의상을 담당하는 전속 코디네이터 제도도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4장의 앨범을 내며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사라진 후 1990년대는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사랑받으며 공존하는 '르네상스'가 되었죠. 그 성과는 2000년대 아이돌 그룹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그 절정이 'BTS'가 아닐까 합니다.

싸이나 BTS가 글로벌 무대에서 K-POP을 소개하고 그 저변을 넓혀간 주인공이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K-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이라 봐야겠죠. 저는 이들이 음반을 통해 보여 준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 예를 들어 교육(교실이데아), 통일(발해를 꿈꾸며), 컴백홈(일탈 청소년) 등이 대표적이죠.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가사는 정말 언터처블이 아닐까 싶거든요.

오늘은 300회를 맞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가치를 설명하느냐 지면을 많이 할애한 관계로 일일이 가사를 해석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가사를 가지고 썰을 푸는 것으로 바로 넘어가 보죠.


음. 오늘은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에 대해서 썰을 풀어 보겠습니다. 예전 대학 시절에 제가 다니던 학교에 MBC 주철환 CP가 강의를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대학가요제>를 비롯해서 <퀴즈 아카데미><일요일 일요일 밤에><우정의 무대> 등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만든 분이죠. 지금으로 치면 나영석 PD나 <무한도전>을 만든 김태호 PD를 떠올리면 될 듯싶네요.

각설하고 이 분이 그날 했던 강의가 제 머릿속에서 한 번도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었는데요. 바로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에 대한 해석 부분이었습니다. 이 노래와 함께 언급된 곡이 양희은의 <아침이슬>에 나오는 '긴 밤 지새우고' 였죠. 두 노래 모두 '밤'이 언급되어 있죠.

주 PD는 서태지가 말한 밤은 '개인의 밤'인데 반해 양희은의 밤은 '사회의 밤' 혹은 '역사의 밤'이라고 말하더군요. 서태지를 개인의 밤이라고 말한 이유는 서태지 씨가 애초에 하고 싶었던 장르는 랩댄스가 아니라 헤비메탈에 가까운 음악이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장르를 선보이면 생계를 걱정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먼저 하는데요. 바로 그 시절을 '개인의 밤'이라고 해석한 듯합니다.

이에 반해 양희은의 밤은 당시 사회 상황이 박정희의 독재정권 시절의 한가운데였죠. 이 노래는 1970년대에 발표되었는데 1980년대 민주화항쟁이 벌어질 때까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입해 보면 양희은의 밤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어떤 개인이 꿈을 펼치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쟁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긴 가사라는 것이죠.

제가 주 PD의 이런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참 참신한 해석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할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원래 제가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갈 때 꿈꾸던 게 '문화평론가'였거든요. 어찌 보면 그때 이루지 못한 꿈을 <가사실종사건>이라는 브런치에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다들 PD나 기자 꿈꾸던 시절이어서 제가 좀 특이해 보일 정도였죠. 교수님조차도 '그거 하면 딱 밥 굶어 죽기 좋다'라고 하셨고요.

만약 그때 제가 뚝심 있게 그 꿈을 밀어붙였더라면 아마도 K-팝이 지금처럼 전 세계인으로부터 각광받을 때 문화평론가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쩝. 전 개인적으로 다음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고 다시 태어나길 거부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야구 해설가, 문화 평론가, 음악 프로그램 심사위원 같이 뭔가를 심사나 평가하는 직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하하하.

테스형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외친 것만큼 저에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큰 마음의 파장을 일으켰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4대 메이저 기획사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를 세울 정도이니 그 영향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겠죠.

만약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을 수 있고 각종 플랫폼에 힘입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브런치를 시작한 게 지난해 6월 말이었습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만 있으면 꼬박 1년이 되네요. 처음엔 방향을 못 잡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방황을 좀 했더랬습니다. 그러다 정리할 거 정리하면서 시작한 것이 <가사실종사건> 브런치였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쓸 수 있을지는 저도 몰랐네요. 언젠가부터는 도전 1000곡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고 지금은 그걸 목표로 나아가고 있죠. <가사실종사건> 따지면 290곡 290명의 가수를 다뤘네요. 참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쓰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이제 가까운 500 고지를 향해 나아가 보죠. 도전 1000곡 하는 날까지 붙어있는 브런처는 제가 밥 살 겁니다. 하하하. 오늘도 편안한 저녁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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