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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Jun 02. 2024

임재범의 <비상>

작사 채정은 작곡 임재범, 최준영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임재범'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lA2 yNzojHEk? si=yxghFFP1 UZYGauHJ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 임재범의 <비상> 가사 중-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은 없어

내가 날 괴롭히는 거지


생각, 걱정

그 족쇄를 

스스로 채웠어


이젠 너무 오래돼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그것조차 알지 못해


너무 버거운 시간

모든 건 내 손을 떠났어

하지만 후회는 없어

손안에 있는 걸 놓아야

다른 것을 담을 수 있으니


마주쳐서 부서지는

방법도 있지만

혼자의 시간 속에서

얻는 깨달음도 있지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견디는 것도 사는 거다


그런 말들의 힘으로

다시 날개를 펼쳐야지

미뤄뒀던 내 꿈을 펼쳐야지

힘겨웠던 방황을 끝내야지





임재범은 <시나위> 멤버로 1986년 <크게 라이오를 켜고>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외인부대>와 <록 인 코리아> <아시아나> 록 밴드를 활동을 했고요. 1991년 <이 밤이 지나면>으로 솔로 데뷔하며 팝 발라드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곡이 표절 논란에 이어 표절 판정을 받았죠. 

그때의 충격 때문이었는지 이후 앨범은 냈지만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매한 음반들은 리스너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7년 2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1998년 3집 <고해>를 비롯해 2000년 4집 <너를 위해> 등이 대표곡입니다. 드라마 <추노> OST <낙인>도 유명한 곡이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2집에 실린 후속곡이죠. <사랑보다 깊은 상처> 가수 박정현 씨와 듀엣곡 버전이 있는데, 따로 녹음을 따로 했다고 하죠. <비상>까지 더블 히트곡을 낸 셈이 되었네요. 임재범 씨는 가수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자신의 음반에 참여하는데요. 이번 곡도 그런 경우죠.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그가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비춘 것은 2011년 MBC <나는 가수다>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다시 긴 공백으로 빠져들죠. 2015년 데뷔 30주년 기념을 발매하며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나는 기대감을 높였으나 전국 투어 콘서트만 성황리에 종료했죠.

2017년 아내와의 사별 이후 2022년 7집 앨범으로 컴백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왕성한 활동이 눈에 띄었죠. <싱어게인 3-무명가수 전>에 심사위원으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솔로 7집을 포함해서 17개의 앨범을 발매했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흔적입니다.

노래 실력은 이승철 씨와 함께 역대 Top3에 언급될 만큼 자타가 인정하죠. 초창기 그의 전성기 때는 다소 거친 매력이 있는 것 같고 최근에 <비긴어게인>에서 보여준 음색은 다소 해탈한 편안함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세월에 따라 변화되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할 있어 팬의 한 사람으로 영광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비상'입니다. '위로 날다' 정도가 되겠네요. 이 노래는 임재범 씨 본인의 사연을 모티브로 만든 노래라는 생각입니다. 지난날 자신을 돌아보며 쓴 가사 같거든요. 인생의 우여곡절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던 그였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복잡한 주변 상황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었다는 것을 실토한 노래가 아닐까 싶네요. 이 노래는 굉장히 시적이기도 하고 은유가 많이 들어가서 해석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만의 해석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각자의 해석을 붙여보아요.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가 첫 가사입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신만이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죠. 바로 자존심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 자존심을 너무 오래 부여잡고 있다 보면 자신이 온 길도 가야 할 길도 잊게 되는 대략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겁니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부분입니다. 걱정이 다른 걱정을 양산해 내는 상황인 듯 보입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도 느끼죠. 너무 많은 생각 때문인데 이걸 만든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엉킬 대로 엉켜서 이젠 그 실타래를 푸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처럼 보이네요. 

2절을 보시죠.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 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부분입니다. 인생사에서 아주 힘든 일이 벌어질 때 우린 급기야 손을 놓게 됩니다. 정면으로 마주할 체력도 능력도 땅에 떨어진 상태니까요. 그러는 사이 내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그 나름대로의 길을 갑니다. 잡으려고 애를 쓴다고 해결될 일은 원래 아니었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그런 절망의 순간. 감정의 바닥을 치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접고 다시 일어서 뛸 수 있는 재기의 힘을 얻게 되죠. 과거에 묶여있던 족쇄가 풀리며 전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이라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만 같죠.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부분입니다. 마주하면 내 맘처럼 되지 않아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대면하지 않고 고독을 택합니다. 비대면의 상태는 자신의 마음을 관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휘저어진 흙탕물에서 흙 성분이 서서히 아래도 가라앉으면 맑은 물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마음도 고독과 외로움의 영역에서 침 참하면 고요함과 맞닿게 되는 것처럼요. 그 순간 마음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을 보여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부분입니다. 이어지는 후렴구는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돼줄 거야/ 힘겨웠던 방황은'입니다.

저는 이 노래가 1집을 내고 표절 논란으로 힘든 시간을 겪을 때 쓴 가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성을 갖지 않고 만든 노래가 표절로 결론이 낫듯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잘못된 결과에 실망하고 자신을 탓했던 시간이었지 않나 싶거든요. 그 일로 누가 가수를 그만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고 본인 스스로가 가수의 자격을 논하며 자신을 누구보다도 괴롭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마음의 방황을 했던 그가 얻은 결론은 바로 '비상'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처럼이 아니었을까요.


음. 오늘은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요? 저는 이 노래에서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부분에 자꾸 눈이 가고 귀가 쫑긋 세워집니다. 과연 깨달은 소중한 게 뭘까 하고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연예인이나 재벌 2세처럼 유명한 사람이 세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장면요. 보통은 이 장면 후에는 오해가 말끔히 풀리면서 해피앤딩 분위기로 전개가 되곤 하죠. 그런데 최근 민희진 씨 사태처럼 기자회견이 또 다른 말들로 이어지는 상황은 어떨까요? 네. 이 노래에서 상처받는 것이라는 가사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서서 싸우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흙탕 싸움이 되어서 구경꾼들만 좋아지는 상황 말이죠.

그래서 화자는 혼자를 택합니다. 이 경우에는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일명 '침묵하면 인정하는 거다'라는 세간의 화살이죠. 아니라고 항변하면 싸우게 될 것이니 그 대안으로 택한 일이지만 침묵하면 그렇다고들 받아들이는 현실의 몫은 남게 되죠. 화자는 이것을 택했다고 하죠.

처음에는 대면하여 싸우고 상처받는 것이 더 시원해 보이고 옳은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역으로 싸우지도 않고 사태를 피하며 몸을 움츠리며 혼자를 택하는 것은 비겁해 보기까지 하죠. 하지만 여기에 시간이라는 함수가 붙으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주를 합니다. 

개싸움을 벌렸던 누군가는 구설수의 대상으로 기억됩니다. 싸움을 구경한 사람들이 자기 해석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이죠. 그 사건을 떠올리며 '민 씨가 멋졌지' 혹은 '너무 말이 과했어' 등등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법적 분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가 나와도 왜곡된 기억은 잘 수정되지 않습니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건의 전모를 모를 상태에서 보이는 정보만으로 판단을 해 버리는 셈이죠.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는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는 세간의 비난으로 시작하지만 결과의 여부 상관없이 망각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나중에는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정도가 되죠. 증거를 인멸하고 가급적 이슈화를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대중의 망각에 기대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화자는 처음엔 억울했겠지만 침묵과 혼자를 택한 후로 서서히 대중 사이에서 잊혀 가는 사건을 바라보지 않았을까요? 불나방처럼 입방아를 찢던 사람들은 온 데 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긴 침묵 혹은 그 침잠 속에서 화자가 깨달은 소중함이라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들도 동의하시나요?

흔히들 '참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여기서 참는다는 게 바로 혼자를 택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데요. 화를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그 화는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 화를 참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들은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 노래에서 하나 아쉬운 지점은 '고독'과 '외로움'을 같은 단어로 생각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독은 자발성, 외로움은 비자발성이 핵심이라고 말씀드린 있습니다. 화자는 혼자를 스스로 택한 것임으로 외로움보다는 고독 쪽이라고 봐야 옳을 같습니다. 고독이든 외로움이든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우리에게 누구도 말할지 않을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 준다는 데는 절대 동의합니다. 하하하. 오늘은 그럼 이만^*. See you. Coming Soon-(NO.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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