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조관우'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 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 뒤엔
언제나 눈물이
- 조관우의 <늪> 가사 중 -
조관우는 1994년 데뷔했습니다. 판소리 명창 조통달의 아들 되시겠습니다. 조관우 씨 가문은 대대로 국악을 해 온 집안입니다. 이모할머니는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중 한 명인 박초월 씨입니다. 조통달 씨는 조관우 씨가 국악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 키워지면서 조금은 숨 쉴 틈이 생겼는 모양입니다.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했거든요. 1982년 가야금 연주자로 첫 데뷔했고요. 잠시 미국 유학을 갔다가 중퇴를 하고 본명 조광호라는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바로 1집 앨범 <My First Story>에 실린 타이틀 곡이죠.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가성으로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쭉 부르는 파격적인 노래였습니다. 이 앨범은 13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하네요.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내용으로 당시 종교계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하하하.
그래서인지 앨범 재킷에는 얼굴을 가려져 있습니다. 일명 얼굴 없는 가수였죠. 1995년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2집 <Memory>는 1집의 두 배인 300만 장이 팔렸습니다. 정훈희 씨의 <꽃밭에서>가 대박 히트를 치며 그의 인생곡이 되었죠. 정훈희 씨는 나중에 따로 한 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집과 2집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시절 소속사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소속사를 옮기고 3집을 발매하며 이때부터 전국 콘서트를 했는데, 연속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4집부터는 슬럼프에 빠졌지만 100만 장이 팔렸고, 5집은 자살 미화 가사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6집 <연>은 음반펀드 형식으로 투자자를 공모해서 화제가 되었고 7집은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8집을 내고 일본 활동을 했고 2018년 정규 9집을 발매했습니다. 2021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 <비가 오려나>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이네요. 올해 5월 데뷔 30주년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4옥타브 그리고 자신만의 창법. 더 이상 설명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늪'이죠. '빠져 빠져 빠져 버려' 전 박경림의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떠오르는데요. 하하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늪으로 비유한 것이겠죠. 어디까지 늪에 빠졌는지 가사를 살펴보시죠.
이 노래 처음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 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부분입니다.
결혼한 유부녀였는데도 그런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화자. 지금도 그렇지만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94년도인 것을 감안하면 왜 그리 종교계에서 싫어했는지 짐작이 가네요. 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가슴으로 좋아하고 머리로만 생각했으니까요. 누군가는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 현실이 안 되면 죄라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시렵니까?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가슴엔 사랑이' 부분이 사실상 노래의 처음입니다. 왠지 결혼식장의 신부 대기실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친구나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신부 대기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대를 본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네요. 화자는 천 눈에 한 마리도 뻑가죠. 가슴이 멎고 손을 틈도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되죠.
2절에서는 '까맣게 타버린 가슴엔/ 꽃이 피질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속엔/ 차가운 바람이' 부분이 나옵니다. 임자 있는 사람을 좋아했으니 아픔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고 맙니다. 가슴은 시커멓게 타 버리고 꽃도 피지 않을 만큼 황폐해지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사랑한다 말 못 하는 굳게 닫아야만 하는 마음에는 고독과 쓸쓸함을 뜻하는 차가운 아니 냉혹한 바람만 불어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 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 뒤엔/ 언제나 눈물이 (흐르고 있어)' 부분입니다. 참고로 () 안의 기사는 2절에만 나옵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꿈속에서도 마주치길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어 현실로 달려가고자 하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수준으로 높고 견고합니다. 그 벽을 앞에 두고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돌아서는 것 그리고 잠시라도 상대를 보기 위해 눈물 흘리며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마지막 가사는 '오늘밤 내 방엔/ 파티가 열렸지/ 그대를 위해 준비한 꽃은/ 어느새 시들고/ 술잔을 비우며/ 힘없이 웃었지/ 또다시 상상 속으로/ 그댈 초대하는 거야' 부분입니다. 화자가 조금씩 망상을 하고 있는 것 같죠. 상대를 초대한 것처럼 꽃을 준비하고 파티를 엽니다. 하지만 꽃은 어느새 시들고 술잔을 비우며 허탈해하죠.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상상놀이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네요. 쯧쯧
음. 오늘은 제목 '늪'에 대해 썰을 좀 풀어 보겠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장소죠. 애초에 발을 딛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노래의 화자는 이미 늪에 몸이 반 이상은 빨려 들어간 것은 느낌이죠?
아시는 바대로 늪에 한 번 빠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죠.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몸은 점점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말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고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뇔수록 더 생각나는 아니러니가 바로 늪 그 자체를 연상시키죠.
늪과 비슷한 공간이 있는데 갯벌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같은 곳에 보면 갯벌에 다리가 빠져서 허부적 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자주 연출됩니다. 갯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게가 분산되도록 최대한 땅에 닿는 면적을 넓게 해 주면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더군요.
이 갯벌에서 유래한 말이 '뻘'일 텐데요. 여기에 무언가는 하는 행위인 '짓'자를 합치면 '뻘짓'이라는 단어가 되죠. '아무 쓸모가 없이 헛되게 하는 짓'이라는 의미입니다. 늪에서 살기 위해 허부적되는 것이나 뻘에서 나오겠다고 용쓰는 것이나 모두 뻘찟이라고 봐야겠네요.
제가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가 인생에서 늪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를 논해보기 위함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선인들의 말처럼 '길이 아닌 곳이면 가지 않는다'가 가장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이 노래의 화자처럼 사랑이 훅 들어온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쉽지 않죠.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요. '상사병'은 약도 없다고 하잖아요.
물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법에 대한 우스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다리가 땅에 안 닿는다고 당황해서 힘을 다 소진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단 몸에 힘을 빼고 어느 정도 바닥 근처로 가라앉으면 바닥을 땅으로 생각하고 유유히 걸어 나오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저는 늪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법에 대해 작은 힌트를 하나 얻습니다. '바로 정중동'이죠. 최소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살려고 하면 죽음을 재촉하는 상황이니까요. 사랑의 늪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조바심 내고 뭔가 해 보려고 하고 그럼 그 늪에서 못 벗어납니다. 오히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마음 챙기기 전법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되죠.
사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늪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을 말하죠.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막막한 현실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하죠.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액션'으로 이어져야 하죠. 안타깝게도 화자는 생각과 상상만 있지 액션이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의 늪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죠.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늪에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 좀처럼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하염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죠. 그때 그걸 조기에 극복하겠다고 사방팔방 바쁘게 뛰어다녀 본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고요히 하고 가만히 현 상황을 관조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정한 기간을 침잠하여 일을 벌이지 않으면 자연스레 늪에서 나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드디어 2번째 책 탈고가 끝나서 표지 디자인을 외부에 맡겼네요. MS의 Bing Creator를 이용해 제가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비슷하긴 한데 뭔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첫 책처럼 표지 디자인은 외부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재미로 두 번째 책 <참을 수 없는 이직의 가벼움>을 Bing Creator로 만든 이미지를 보여 드립니다. 웃으시라고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참을 수 없는 이직의 가벼움> 표지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