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준은 솔로 가수로 1992년 데뷔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예대에 진학, 메탈 그룹과 통기타 클럽에 소속되어 활동했습니다. 1992년 선배의 추천으로 제일기획에서 주최한 오디션에 합격해 CF전속모델 겸 신인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 유명한 '모두 잠든 후에'라는 곡이 탄생하게 되죠. 김원준 씨가 자작곡을 했습니다.
이듬해 2집을 발표했는데, '언제나'라는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94년 3집의 타이틀 곡입니다.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는 치마 패션이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했죠.
CF모델을 했을 정도로 조각미모를 자랑했습니다. 그 덕에 영화 제의도 받았고요. 공군사관생도의 생활을 그린 KBS 드라마 <창공>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주제곡도 불렀죠. 1995년 발매한 4집에서는 전곡을 자작곡하며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죠. 그리고 1996년 5집에 바로 그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Show(쇼)'를 발매하게 됩니다. 이때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 음반 제작자로 나서면서 시련을 겪습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전국 공연도 뛰어다니고 드라마, 교양, 예능 가릴 것 없이 활동했다고 전해집니다.
외모 때문에 그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가 다소 가려지는 측면이 있죠. 무려 300곡이 훨씬 넘는 자자곡을 갖고 있다고 하네요. 과거 코요테의 신지가 김원준 팬클럽의 인천지부 회장이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강동대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실용음악과 전임교수를 맡은 바 있습니다. 2018년부터 빈방 프로젝으로 1인 프로듀싱 활동 중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음악과 늘 함께하려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너 없는 동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부재의 시간. 참 견디기 힘들죠? 그 기간이 오래되다 보면 달라진 환경과 마음 등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도 합니다. 지지고 볶더라도 떨어져 있는 것보단 함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죠.
'아무런 기대 없이 나간/ 우리 첫 만남은/ 너무 쉽게 운명처럼/ 빨리 이뤄졌지'가 첫 가사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상대와 눈이 맞고 대화가 너무 잘 통하면서 급격이 가까워진 상황이죠. 이쯤 되면 우린 서로를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가끔/ 네가 싫증 나서/ 나도 모르게/ 한 눈을 팔고 싶을 때도 있었지' 부분입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빠르게 가까워진 사이는 그 열기도 빨리 식는 법이죠. 좋은 것만 보였던 상대에게서 흠만 보이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상황까지 이어지죠.
'잘 빠진 몸매와 외모/ 너보다 더 잘난 여자/ 찾길 원한 건 사실이야/ 난 하지만 욕심일 뿐/ 내 주제를 몰랐던 건/ 단지 나의 착각이었어 (야이야히야이야)' 부분입니다. 당연히 지금 사귀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눈을 높게 잡았겠죠. 하지만 그건 화자의 바람일 뿐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상황에 마주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너의 갖춰진 조건/ 누군가에게 뺏기긴 싫어/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을 세워줘 (야이야히야이야)/ 남들이 얘기하는/ 그런 흔한 연인은 안될 게/ 너 없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부분입니다. 화자는 참 문제가 많네요. 자신이 한눈을 팔고 상대를 누군가에게 뺏기기 싫다는 둥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둥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흔한 연인 사이를 뛰어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데요. 하하하. 행동과 말이 따로 노는 이 모습을 상대가 어찌 받아들일지 걱정이네요. 아무튼 화자는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허튼짓을 하면서 알게 된 '너 없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진실 앞에서 살 떨리며 상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불안한 모습이랄까요.
음. 오늘은 가사 중 '내 주제를 몰랐던 건'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바로 '주제' 혹은 '분수'에 대해서죠. 실생활에서는 보통 '지 주제(분수)를 알아야지'라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변변하지 못한 처지를 이르는 말인데요. 자학을 할 때 혹은 남을 비난할 때 동시에 쓸 수 있습니다. 국어 시간 같네. 하하하.
주제 혹은 분수는 '자기 객관화'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고평가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저평가하고 있는 상황일 텐데요.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자기 객관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 객관화는 영어로 'Self-objectification'입니다. 자기 자신을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제삼자 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행위죠. 우린 살아가려면 많든 적든 자기애가 필요할 테니 그걸 감안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실제보다는 긍정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을 겁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처럼요.
사실 우리 주변에서는 자기 객관화가 제대로 된 사람을 구경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테스형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는데,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내가 잘하면 얼마큼 잘하고 못 하면 얼마큼 못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아니 비슷한 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그냥 주변 친구들 대비해서 잘하면 세계 최고가 되고 주변 친구들 대비 못하면 최악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말입니다.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보면 내 점수가 전국에서 몇 퍼센트 안에 드는지 데이터가 나오잖아요. 인재가 모인 학교인 경우 반에서는 좀 쳐지지만 전국에서는 상위에 속하게 될 겁니다. 저는 이게 자기 객관화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시선이나 경험, 혹은 주변 누군가의 시선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자기 객관화는 의심하기와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A로 볼 지 아니면 B로 볼 지 그것도 아니면 판단을 유보해야 할지를 여러 가지 생각을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기 객관화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시간보다는 홀로 있는 시간이 더 적합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이 노래에서 화자는 자신이 언제든 지금의 상대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착각합니다. 그래서 한 눈을 팔게 되죠.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상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니까요. 이걸 빌미로 상대가 관계를 종료하기라도 하면 어찌 될까요?
살면서 자기 객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현재 위치, 능력 범위 등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천지차이죠. 될 성싶은 나무를 찍는 사람과 되지도 않는 나무를 하염없이 베고 있는 사람이랄까요. 인생을 낭비하기 딱 좋습니다. 헛물만 켜셔 실속이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죠.
인생을 너무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나 자신도 너무 고평가로 혹은 저평가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정한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자만심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죠. 우리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바로 자기 객관화가 나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며 내가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 느끼곤 하니까요.
제가 지향하는 삶 중 하나가 '맑고 균형 잡힌 시선'인데요. 바로 자기 객관화의 시선인 것이죠. 자기 객관화를 위해선 메타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많은 정보와 감정에 대한 이해 뭐 이런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 바로 자기 객관화일 텐데요. 우리 인생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자기 객관화는 우리 인생 전체에 놓인 숙제 같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시는 편인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김원준 씨의 곡 중 오늘 소개드린 노래와 <모두 잠든 후에>, <쇼> 이 세 곡을 놓고 뭘 다뤄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뭘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실 뭔가를 해 보기 전에 자신의 능력치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음식의 간을 측정하는 기계처럼 정확한 수치가 나와 있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그걸 모르니 생각을 통해 사유를 통해 상상을 통해 그 언저리를 가늠할 수밖에 없죠. 어쩔 수 없이 주관이 개입하는 나란 존재 속에서 객관을 회복하는 일이 진정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