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의 <희나리>

작사/작곡 추세호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구창모'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c3 doU7 eKHsM? si=3 v2 p1 DNAZaqnk5 VD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 구창모의 <희나리> 가사 중 -




구창모는 TBS '해변가요제'로 1978년 데뷔했습니다. 홍익대학교 밴드인 '블랙테트라' 2기 멤버였죠. 1980년대 배철수 씨가 이끄는 밴드 '송골매'에 가입하면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10대 소녀팬들이 많았죠.

귀공자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꿀꿀이죽을 배급받아먹었을 정도라고 하네요. TBS 해변가요제에서 '구름과 나'라는 곡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거기서 배철수 씨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송골매가 2집을 발매하면서 연락을 한 후 1980년부터 84년까지 송골매의 리드 보컬을 맡았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등 조용필 다음의 인기를 누렸죠. 그렇게 4집까지 같이 하게 되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송골매에서 탈퇴한 후 1985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발표한 곡입니다. 일명 번안곡인데요. 외국의 음악을 가사만 바꿔서 부르는 곡을 말합니다. 이 곡은 <기허풍우> 곡을 번안한 곡으로 유명한 홍콩 영화 <영웅 본색>에 삽입되기도 했죠. 이 곡으로 1985년 KBS 가요대상을 수상합니다.

1990년 가요계를 은퇴했고요. 1991년 카자흐스탄 아시아가요제에 우연히 초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업가로 변신, 2005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현지 최대 규모의 아파트를 건설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스케일이 어마무시하네요. 하하하. 키르기스스탄에서 골프장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송골매로 2집에서 4집까지 3장, 그리고 솔로로 1989년까지 5장 이렇게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간간히 TV에 얼굴을 비추시는데 반갑더라고요. 그가 한 때 몸 담았던 송골매는 나중에 따로 소개하기로 하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희나리'입니다. 희나리의 뜻을 아시나요? 희나리는 '채 마르지 않은 장작'을 의미합니다. 캠핑할 때 불을 피워보시면 아시겠지만 채 마르지 않은 장작에는 불이 쉽사리 붙지 않습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는지 가사를 톱아보시죠.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가 첫 가사입니다. '사랑함에 세심했던'이라는 가사가 참 이색적이네요. 세심한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랑이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런 사랑이 상대에게는 구속이라는 단어로 다가가는 듯하네요. 자주 전화를 해서 상대에게 '어디야? 지금 뭐 해'라고 말하는 것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관심일 수 있지만 연락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의외로 이런 부분이 갈등의 이유가 되기도 하죠. 화자는 상대와 그런 트러블이 있어 보이네요.

'내게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 것처럼/ 느낄 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왜려 나를 점점 믿지 못하고/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오' 부분입니다. 서로 보조를 맞춰가는 사랑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너무 앞서가는 사랑의 모습이랄까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상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결국 화자는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뒷걸음치는 상대를 안타까워하죠. 뭔가 상대로부터 단단히 오해라도 받고 있는 듯하네요.

그래서 이어지는 가사가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입니다.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전부 보여준 것뿐이라는 해명이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온도차가 느껴지시나요? 너무 순수했다고 할까요? 속도 조절이라는 스킬이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이긴 합니다.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부분입니다. 그런 연유로 상대와 이어지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먼발치에서 상대의 마음이 동하는 상황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죠. 화자는 자신의 모습을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다'고 말하는데요. 나무를 처음에 배 물기가 있는 상태인데, 이걸 장작으로 패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 쌓아두잖아요. 그럼 나무 안에 있던 물기가 날아가면서 색이 변하죠. 그리고 그 나무의 운명은 '땔감'으로 불구덩이에 풍덩 빠지기 되며 자신은 소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화자는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죠. 한 마디로 변치 않는 희나리의 모습으로 상대를 기다리고 싶어 한다고 봐야겠죠?


음. 오늘은 가사 중 '세심했던'에 대한 썰을 좀 풀어볼까요? '세심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작은 일에도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 빈틈이 없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세심한 성격을 가지고 계시나요? 하하하. 반대말로는 털털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정도가 될 듯하네요.

사람마다 참 다르죠. 누군가는 세심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세심한 사랑이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심지어는 자신은 세심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상대에게는 털털하거나 자신에게는 털털하게 대하기를 바라면서 상대에게는 세심한 부조화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세심한 성격이 잘 발동되면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죠. 일명 배려의 아이콘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세심하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상대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환원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상대가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캐치해서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신경을 쓰는 일일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세심한 성격이 상처를 받기 쉽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사안에 눈이 가다 보니 그걸 잘 소화하지 못하고 가슴에 뭔가가 턱 하니 걸린 느낌을 받는 일이 자주 발생하거든요. 그런 고민을 듣다 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넌 그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죠.

당연히 모든 성격은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좋기만 한 성격도 나쁘기만 한 성격도 없죠. 세심한 성격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디서 얼마나 누구에게 발동하느냐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파악하는 것만큼 그 성격에 걸맞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이 드네요.

이 노래에서 화자는 상대가 부담스러울 만큼 세심함을 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10번 보고 싶어도 반은 참고 반만 실행해야 하지만 그런 상대의 성향을 무시하고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급급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러니 상대는 점점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겠죠?

세심함을 갖는 것은 나름의 경쟁력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얻어지는 감수성은 아니니까요. 세심함을 갖지 못한 털털한 성격보다는 세심함을 가지고 그것의 운영을 고민하는 타입이 훨씬 나아 보인다고 할까요? 글을 쓰는 작가라면 더더욱이 그런 것 같고요.

자기 자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은 상대라는 대상이 있어야 하죠. 내가 가진 세심함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해 줄지를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굳이 이런 것까지 신경 써달라고 얘기한 적도 없는 일을 해 놓고 알아주지 못한다고 투덜거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죠.

사람마다 세심함의 크기와 정도는 다 다릅니다. 큰 게 좋은 것도 아니고 작은 게 좋은 것도 아니죠.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시점에 꺼내 쓸 수 있어야 하는 걸 겁니다. 세심함은 자기 칭찬의 목적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본래 목적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걸 진심으로 바라는 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죠. 너무 세심하면 주변이 피곤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겠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주변에서 사람으로 상처 입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심함'이라는 단어를 한 번씩 떠올려 봅니다. 대부분 자신의 의도가 다르게 전달되어 오해를 사는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하고 그걸로 인해 내상을 입는 경우인데요. 세심함은 타인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내 속의 감정을 들을 아주 잘게 쪼개서 그 감정의 정체에 다가가는 일은 꽤나 생산적일 수 있으니까요. 성격 잘 안 바뀌지만 그래도 방향만이라도 그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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