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남성 아이돌로 1996년 데뷔했습니다. 대한민국 아이돌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룹입니다. 리더인 문희준을 비롯해 강타, 토니 안, 장우혁, 이재원이 멤버입니다. 데뷔하자마자 벼락스타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한류문화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룹명은 'High-five Of Teenagers'로 '10대들이 승리하고 하이파이브라는 것'을 표현했다고 하네요.
아이돌 최초로 단일 앨범으로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했죠. 지상파 3사 연말 시상식 트리플클라운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수많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사의 후예'가 그들의 데뷔곡이었는데요. 원래는 '오늘도 짜증 나는 날이네'라는 곡이었는다는데. 캔디가 물망에 오르내리다가 결국 강렬한 콘셉트의 곡이 선보이는 걸로 정해졌다는 후문입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HOT는 신선한 정도였는데, 후속곡 '캔디'를 비롯해 '행복', '빛'등 메가 히트곡이 이어지며 범접할 대상을 상실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유사 그룹인 젝스키스가 있었지만 이들의 인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10대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이전 가요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죠. 아이돌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300회 특집으로 1990년 초에 활동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요. 2000년대 음악계를 뒤흔든 이들은 바로 'HOT'였죠. 이수만 씨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운영하던 카페까지 처분하며 내놓은 그룹이었습니다. 사실상 HOT에 의해 SM엔터테인먼트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길거리 캐스팅된 강타에 이어 문희준, 이재원, 장우혁, 토니 안 순으로 영입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문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음악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은 HOT에게 일종의 빚을 지고 있다고 표현하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5년 정도 활동을 한 후 2001년 그룹이 해체되며 많은 팬들을 충격에 몰아넣었죠. 죽는 날까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룹, HOT 그들의 음악과 활동에 경의를 표하면서 400회 기념 아카이브에 이들의 노래를 담아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행복'입니다. 행복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단연 으뜸이죠. 최근에 과학 기사를 보다 보니 행복할 때 우리 뇌를 찍은 영상에서 사랑할 때 느끼는 행복이 뇌의 전 영역에 관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사랑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은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난 너를 잊어본 적 없어/ 오직 그대만을 생각했는 걸/ 그런 너는 뭐야 날 잊었던 거야/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배신감 느껴'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상대에게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한 순간도 그 사람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상대와는 온도차가 상당합니다. 상대는 화자에 대한 생각을 1도 안 하고 있었던 것 같죠? 그래서 화자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낍니다.
'널 찾아갈까 생각했어 난 난 잘 모르겠어/ 이 세상이 돌고 있는 지금 내 눈에는 너 밖에 (뭐지)/ 할 말이 없어 갈 수도 없어 눈물도 없어 느낌도 없어/ 네 앞에 서 있는 날 바라봐/ 이렇게 널 위해 살아있는 날' 부분입니다. 온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어필해 봅니다. 찾아갈 생각도 해 보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보여 주려하죠.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한데요.
'약속된 시간이 왔어요/ 그대 앞에 있어요/ 두려움에 울고 있지만/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그대 내 손 잡았죠 일어날 거야/ 함께해 준 그대에게 행복을' 부분입니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오면서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죠. 두려움에 울고 있는 화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도 잡아주고요. 낙담하고 있는 화자가 갑자기 가엽게 보이기라도 한 걸까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다소 판타지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눈감고 그댈 그려요/ 맘속 그댈 찾았죠/ 나를 밝혀주는 빛이 보여/ 영원한 행복을 놓칠 순 없죠/ 그대 나 보이나요/ 나를 불러줘요/ 그대 곁에 있을 거야 너를 사랑해/ 함께해요 그대와 영원히' 부분입니다. 내용 전개상 화자의 상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사랑이 잘 전달되지 않으니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것이죠. 그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란 없죠. 그래서 행복의 행복에 의한 행복을 위한 관계를 마음껏 그려봅니다. 10대 이기에 가능한 행복 상상이 아닐는지. 하하하.
음. 오늘은 '행복'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그동안 사랑만큼이나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는데요. 제 기억에 따르면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씀을 드린 게 마지막 행복에 대한 언급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법률 스님이 '너무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마라'는 취지로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무탈한 상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행복+, 무탈 0, 불행- 이런 공식으로 말이죠.
행복은 불행의 꼬리를 달고 다니는 법이고 거꾸로 불행은 행복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죠. 진통제는 육체적 고통을 낮춰주는 동시에 심리적 고통도 함께 줄인다고 하는데요. 행복과 불행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는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요? 책을 읽다가 끄적거리는 제 노트에 이런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행복은 나의 진짜 본성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요. 네. 본성에 충실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졌을 때 우린 그걸 행복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려면 먼저 나의 진짜 본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여러분들의 진짜 본성은 무엇인가요? 어렵죠? 본성부터 살펴봐야겠죠?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또는 '사물이나 현상에 본디부터 있던 고유의 특성'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정의는 좀 애매한 것 같고 두 번째를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고유의 특성이라는 문구 말이죠.
이 고유의 특성이 바로 저마다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도 하고 그 가치가 실현되는 지점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어떤 모습인지를 커닝하는 것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남의 행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 고유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죠. 같이 있는 것이 좋은 사람, 혼자 있는 것이 좋은 사람.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만족하는 사람 등 사람마다 행복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자신의 고유의 행복을 어렵사리 찾았다면 그다음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행복과 관련에 언급되는 명언인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일 텐데요. 바로 삶에서 자신이 정의한 행복과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말이겠죠? 행복한 감정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삶을 누군들 꿈꾸지 않겠냐만은 자신이 가진 환경에서 최대치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다른 이름인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조화'라는 단어인데요. 본성대로 살 수 있는 삶이란 불가능하죠. 고유의 특성이나 자질을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자기만의 시간'이 행복에 필수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의무 같은 굴레를 벗어나 순수하게 자신의 본성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행복한 감정이 일어날 테니까요.
'느린 속도가 행복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의 삶은 자신의 본성이 아니라 타인의 본성에 이끌려가면서도 그걸 알지 못할 수 있고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일에 궁색하게 됩니다. 행복은 강도도 빈도도 아닌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지점을 잘 캐치해 내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품느냐에 따라 행복감이 좌지우지되곤 하니까요.
흔히 말하는 행복 마일리지는 불행이나 무탈의 시간을 근거로 합니다. 일상의 무너짐 혹은 지루한 일상의 용량이 일정한 수준으로 쌓인 후 발생하는 감정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일부로라도 일상을 무너뜨려 위태로움을 갖는 여행이나 일탈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우리들 아닙니까.
행복한 인생, 행복한 삶 이런 건 어찌 보면 허구일 수도 있어요. 행복은 이런 명사가 아니라 느끼는 동사인 동시에 나도 모르게 내지는 감탄사일 수 있거든요. 행복해지려는 시도에 너무 목 매지 마시고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행복한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가사실종사건>이 어느덧 400회를 맞았네요. 최근 부진으로 400 고지를 눈앞에 두고도 밟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오늘에야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목표한 도전 1000곡의 40%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늘 부족한 글을 읽기 위해 방문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다루지 못한 명곡들이 즐비합니다. 그걸 어떻게 소화해 나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인데요.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겹치지 않는 주제와 내용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새로운 글과 콘텐츠를 탐독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