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는 R&B 가수로 2002년 데뷔했습니다. 본명은 고정기입니다. 2002년 2인 힙합 듀오인 인피닛 플로의 노래에 참여하며 Cubic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고요. 데프콘 2집 피처링도 했습니다.
2005년부터 활동명을 정기고로 바꿨습니다. 2005년 각나그네와 Soul star라는 듀오를 결성합니다. 전곡을 프로듀싱하여 싱글앨범을 발매하지만 반응이 그다지이었죠. 그리고 더콰이엇, 이루펀트, 에픽하이 등 앨범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조금씩 넓혀갑니다.
2008년 자신의 첫 싱글 앨범 'Byebyebye'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5장의 싱글을 발매합니다. 2013년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산하인 스타쉽엑스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씨스타, 케이월, Mad Clown과 한솥 받을 먹게 되고요. 2014년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를 씨스타의 소유 씨와 발매하며 음원 사이트를 석권합니다. 스트리밍만 1억 회를 달성하며 가수로의 입지를 다지죠.
2014년에는 이단옆차기와 함께 작업을 했고, 2017년 R&B 앨범 <ACROSS THE UNIVERSE>를 발매했습니다. 2020년 박재범의 곡을 피처링했고 2021년에는 레이나와 듀엣곡 '헤어질 수 있을까'를 발매했습니다. 그 사이 <함부로 애틋하게> <자체발광 오피스> <하백의 신부> <힘센 여자 강남순> 등의 OST를 불렀죠.
80년생으로 나이가 좀 있는 편이고요. 2년 만인 2023년 신곡 'her'를 내놓은 게 최근 활동입니다. 현재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종료되고 자신의 회사인 서울아트클룹을 직접 설립한 상태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묵묵하게 노래를 하는 그의 모습도 나름 매력이 있는 듯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썸'입니다. 나무위키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지난 남녀의 불분명한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신조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으로 해석된다고 하네요. 하하하.
'(남)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짜증이나/ 너를 향한 맘은 변하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이상한 걸까/ 혼자 힘들게 지내고 있었어'가 첫 가사입니다. 남자는 괜히 심술이 납니다. 어정쩡한 관계 때문이죠. 친구라고 생각했던 여자친구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버린 탓입니다.
'(여) 텅 빈 방 혼자 멍하니 뒤척이다/ 티브이에는 어제 본 것 같은 드라마/ 잠이 들 때까지 한 번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부분입니다. 여자 역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따분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죠. 한 번도 안 울리는 핸드폰을 야속해하면서 말이죠. 이 역시 어정쩡한 관계 탓입니다.
2절을 볼까요. '(여) 매일 아침 너의 문자에 눈을 뜨고/ (남) 하루 끝에는 니 목소리에 잠들고 파/ 주말에는 많은 사람 속에서/ 보란 듯이 널 끌어안고 싶어' 부분입니다. 남과 여가 본인들의 진심을 표현하고 있죠. 그들은 썸을 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미 썸 단계를 지나버린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 무뚝뚝하게 굴지 마/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 나만 볼 듯 애매하게 날 대하는 너/ 때로는 친구 같다는 말이/ 괜히 요즘 난 듣기 싫어졌어' 부분입니다.
아주 중독성 있는 구간이죠. 니꺼 내꺼 헷갈리면 안 돼요. 하하하.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오묘한 중간길을 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감정이란 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적당한 속도와 거리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죠. 친구 같다는 말이 요즘 듣기 싫어졌다는 가사는 썸의 종결에 대한 선언이 아닐까 합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랩 부분이 주제를 담은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 노래 역시 랩 부분에서 본심이 읽히는데요. '너 요즘 너 별로야 너 별로야/ 나 근데 난 너뿐이야 난 너뿐이야/ 분명하게 내게 선을 그어줘/ 자꾸 뒤로 빼지 말고 날 사랑한다 고백해 줘' 부분이죠.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노는 상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썸을 지난 상태, 그러나 행동은 썸으로 대응하는 부조화의 상황이죠.
'여전히 친구인척 또 연인인척 행동하는 모습을 전부 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너의 진심이 더 궁금해지는 걸 girl you're so ambiguous 난 못해 무엇도/ 아니 어쩌면 기적을 바라지 lotto/ 확실한 표현을 원하지만 너의 미소 띤 표정에 잊어버리지 난' 부분입니다. 서로가 밀땅을 잘하는 것일까요? 하하하. 한 사람은 연인 연기의 달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무덤덤한 연기의 달인처럼 보이네요. 각자의 마음과 따로 노는 행동만 썸인 상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일 것 같네요.
음. 오늘은 가사 중 'you're so ambiguous'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말로는 '애매함'이죠. 이것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저것이라고 하기도 그런 상태를 말하죠. 국어사전에는 '희미하여 분명하거나 확실하지 아니하다'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두룽뭉술, 모호, 미적지근 등이 유사어고요.
뭘 먹자거나 뭘 하자고 할 때 상대방이 이런 태도를 보이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딱 사라지죠. 뭔가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랬다는 건지 안 그랬다는 건지 애매한 답변이 돌아오기도 하고요.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말을 얼버무리며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도 처세술 중 하나입니다.
MBTI를 물었을 때 'T'로 나오는데 'F'도 많아 뭐 이런 답변 들어보셨나요?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저는 이런 대답 들을 때마다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듭니다. 바로 ''you're so ambiguous'라는 말이죠. 너무 나간 느낌이 없진 않지만 전 그 답변에 그 사람의 정체성도 살짝 묻어 있다고 보는 편이거든요. 마치 우리가 글을 쓰면 그 사람이 보이듯 그 사람의 답변에서 그 사람의 면모가 살짝 드러난다고 할까요.
'회색분자'라는 말 아시죠? 사회 생활할 때 가장 안전한 지대가 '회색지대'입니다. 다 짜장면을 외치며 통일이 임박했을 때 혼자서 '짬뽕'을 외치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죠. 지금은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요. 사회생활에서 그러는 거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그걸 개인의 삶까지 가져오는 부분은 한 번 짚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하는 부분요.
신해철의 노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뭐다라고 쉽게 못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애매 바이러스'가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싹수없다'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말을 듣게 되니 알아서 애매함 속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를 숨기며 사는 것이 익숙해지고 생활 전반으로 이어지는 구조죠.
예전 광고 문구가 생각나는데요. '아닐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이죠. 물론 뭐가 좋은지 몰라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애매하게 표현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애매함의 영역을 선명함의 영역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물론 좋고 싫음에 통달해서 무슨 말을 해도 허허실실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저것 기웃기웃했더라도 삶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자신의 색깔과 취향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살면서 회색이 점점 짙어지는 쪽으로 가면 안 될 테니까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 애매한 것은 독약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가 안 된 상태이니까요.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글로 담아내어 독자를 설득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과 같죠. 반대로 생각이 너무 선명해서 뭇매를 맞는 한이 있어도 애매함과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입니다. 최근에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뉴라이트' 논쟁이 떠오르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애매한 태도가 주는 안전성도 있겠지만 이 노래처럼 애매한 태도로 인한 마음고생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누군가의 애매한 말이 화근이 되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애매한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망상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 단어만 지워도 훨씬 간결하고 가벼운 삶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의도적인 애매함이 아니라면 애매함의 대부분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잘 모르니 판단이 서질 않는 것이죠. 이런 논리라면 애매함을 제거하는 데는 일정한 공부가 필수일지도 모르겠네요. 애매함의 경계를 넘어야 확신의 단계에 설 수 있죠. 사물이나 현상은 하나인데 그것도 있고 저것도 있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본인 혹은 당사자만 있을 뿐이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제 제법 해가 부쩍 짧아졌네요. 퇴근길에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야 피아구분이 될 정도니까요. 우리 인생이 칼로 무짜르듯 그리 선명하지만은 않죠. 끊고 싶으나 끊지 못하는 관계라는 것도 있고 있음과 없음 그 중간의 애매한 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은 애매함에서 선명함으로 가려는 시도는 계속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성과와 관계없이 말이죠.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