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신의 <한 번만 더>

작사 전상진 작곡 김성호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성신'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gRfEEDPEjVE? si=dzwvAYXHWWBoSIX7

헤이 한 번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 나

이렇게 애원하잖아


헤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 와 봐

그대의 숨결 들리지 않아

마지막 한 번만 더

그대의 가슴에 안기고 싶어


- 박성신의 <한 번만 더> 가사 중 -




박성신은 1988년 데뷔했습니다. '산 넘어 남촌에는'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박재란 씨의 딸이며 가수 김혜림 씨와는 오랜 친구 사이라고 하네요. 서울예술전문대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때인 1987년 MBC 대학가요제에 입상했고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참여해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했습니다.

1989년에 1집 앨범을 냈는데 오늘 소개해 곡이 여기에 실려 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로 대한민국 영상 음반 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죠. 후배가수인 나얼, 이승기, 마야 등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1991년 2집을 발표하고 활동하던 중 덜컥 결혼을 하면서 가수 활동이 줄었고, 남편과 함께 선교활동 및 CCM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2014년 45세의 나이로 갑자기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죠. 올해는 그녀가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원히트원더로 기억되는 가수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 한 곡의 강렬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뭔가 쓸쓸한 듯한 분위기에 세련된 목소리가 일품입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한 번만 더'입니다.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 있는 표현이죠. 잃어버린 무언가 혹은 다시없을 것 같은 무언가를 갈구할 때 쓰는 말입니다. 화자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멀어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면은/ 떨어지는 눈물 참을 수가 없다고/ 그냥 돌아서서 외면하는 그대의/ 초라한 어깨가 슬퍼'가 첫 가사입니다. 딱 봐도 이별 상황입니다. 화자는 뒷모습을 보이며 상대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상대는 화자가 떠나가는 모습을 차마 눈에 담을 수 없어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화자는 잠깐 뒤돌아 먼발치에 있는 상대를 응시합니다. 보이지 않는 얼굴이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대가 그려지죠. 그래서 상대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픔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절에서는'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느껴도/ 헤어져야 하는 사랑인 줄 몰랐어/ 그대 돌아서서 외면하는 이유를/ 말하여 줄 수는 없나' 부분입니다. 이별의 이유에 대한 답답함을 담고 있습니다. 일정한 선만 넘지 않으면 곁에 있을 수도 있다고 믿었던 사랑의 공식이 철저히 부서집니다. 뭔가 눈치를 챈 것인지 상대를 화자를 외면하자 화자는 그 연유가 한없이 궁금해집니다.

'이젠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인사에/ 나의 눈물 고인 눈물방울 흐르고/ 그대 돌아서서 외면하고 있지만/ 흐르는 눈물은 알아'부분입니다. 이별 선언은 상대가 먼저 한 것 같고요.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거다'였죠. 그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화자는 눈물이 저절로 납니다. 그 모습에 애써 약해지지 않으려고 상대는 다른 곳을 응시하며 외면하죠. 하지만 상대 역시 도그순간 최소한 가슴으로는 울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가/ 헤이 한 번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 나/ 이렇게 애원하잖아/ 헤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 와 봐/ 그대의 숨결 들리지 않아/ 마지막 한 번만 더/ 그대의 가슴에/ 안기고 싶어' 부분입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습이죠. 진짜냐고 되묻고 있죠.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눈을 보자고 하고, 가까이 오라고 하고, 한 번만 안기고 싶어 하죠. 살의 상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상대라는 물리적 대상이 사라질 것을 직감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그 살을 터치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화자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가사 중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느껴도/ 헤어져야 하는 사랑인 줄 몰랐어' 부분이 가장 의미심장한데요. 임자가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서글픈데 그 사람이 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간다고 말했던 걸까요? 하하하.


음. 오늘은 가사 중에 딱히 쓸 말도 없고 해서 따끈따끈한 정치 관련 논평을 해볼까 합니다. 요 몇일 많이들 놀라셨죠? 4개월 전에 야당 모 의원이 계엄령 이야기 할 때만 해도 괜한 위기 조장한다고 폄훼됐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 발언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모 신문사 칼럼을 보니까 그때 나무랐던 거 미안했다고 사과 표시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이런 모습 보기 좋습니다. 잘못을 알고 바로 시정하는.

정치 문제는 늘 보는 시각에 따라 왈가왈부할 경우가 많아서 글쓰기의 주제로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 역시 가끔 정치 문제를 다룰 때는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유지하는 센서가 스스로 작동하곤 합니다. 자기 검열받는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관련 글을 잘 안 쓰려고 하는데요. 그런데 작금의 사태가 위중하고 엄중하기에 몇 마디 붙여 봅니다.

돌아가는 상황이야 다들 뉴스를 보시면 아실테고 전 보다 이 사태에 이른 근본적인 이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유권자들의 정치 뉴스 소비 형태' 말이죠. 도이치 주가조작 사태가 어느 날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대통령 선거 때부터 말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주목하지 않았죠. 그게 지금처럼 문제라고 인식을 했으면 당선이 힘들었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국민들은 국회의원 등 공직자를 뽑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때론 그럽니다. 하하하.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인데 현실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끝나질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헛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분산하기도 하고 감사원, 검찰, 경찰 등 각종 감시 기구들을 두고 있지만 말이죠.

정치인들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여론이고 무관심을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민심 말이죠. 영원한 권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치인들은 그 민심을 이반해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이 가장 신경 쓰입니다. 민심이 추후에 자신의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안별로 민심을 확인하는 여론조사를 들여다 보면서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려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정치 사안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누구와 누구 중 누구를 선택할 거냐는 대충 말할 수 있는데, 가치 판단의 영역, 내란이라고 생각하냐 아니라고 생각하냐 식의 질문을 하면 좀 당황스러워집니다. 그 사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죠. 계엄 관련 법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어요? 작전을 하는 군인들도 알 턱이 없었겠죠. 내란이라면 법조항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 답변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대부분은 언론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하지만 정국을 흔들 정도의 정치적 상황이 아니면 정치에 저관여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 친절한 설명도 그냥 지나치죠. 그러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고관여층으로 변하곤 하죠. 선거철도 그렇고요. 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보하는데 홍세화 씨가 언급한 '똘레랑스(관용)'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보는데요.

장애인이 지하철에 파업하면 내 출근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왜 저렇게 까지 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죠. 어떤 정치인이 법원에 간 것에 주목할 게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기소됐는지,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호불호에 따라 무리한 수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악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죠. 여러분들은 이럴 때 어떻게 판단을 하시나요?

정치 기사를 포함해서 모든 뉴스는 참고 사항 수준이어야 합니다. 사실과 의견도 나눠서 봐야 하고요. 우편향 매체를 봤으면 좌편향 매체로 찾아봐야 하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게 되죠. 어쩔 수 없이 사건의 조각, 기사의 조각을 보고 자신의 판단을 세우게 되고요. 어떤 경우에는 지인 찬스를 쓰기도 합니다.

제가 주변에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1차적 질문,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됐는지 팩스만 요약해서 말해줘라고 질문을 던지면 어디서 들은 이야기, 뉴스에서 본 이야기 중 일부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랑하든 미워하든 정확히 알고 해야 하는데 우리의 정치 뉴스 소비에는 그 점이 빠져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정치의 불행은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그것에서 이어지는 정치 뉴스의 소비 행태 말이죠. 정치인들은 이걸 또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데 능숙합니다. 가만히 있다간 코 베이기 쉽죠. 민주주의는 최선을 선택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악을 막을 수 있는 기능만 하니까요.

적극적인 뉴스 소비만이 지금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뉴스 한 꼭지 보고 그 사안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면 금물이죠. 책 한 권만 본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잖아요. 차라리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용기에 더 가까울 수도 있어 보이네요. 지금은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추후에 왜 우린 실패한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표를 주고 있는가라는 반성과 성찰까지 이어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주 시민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선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더 노력해 볼랍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어떤 주장이든 그냥 받아들이지 마시고 '한 번만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행위가 꼭 따라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몇 번이고 망설였습니다. <가사실종사건>의 취지에 맞는지도 고민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쟁이로서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발동한 거 같아요. 가사는 시대상을 반영하잖아요. 예전에 쓰인 가사이긴 하지만 지금의 시대와 연결할 무언가를 뒤적거리다가 결국 이 길로 와 버렸습니다. 하하하. 영 아니다 싶으시면 넓은 마음으로 그냥 스킵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