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이탁, 현진영
https://youtu.be/6 wMUCMGFXPo? si=RnCP6 VhtQjsHLy8 e
싸늘한 밤거리를 걷다가
무거워진 내 발걸음
흐린 기억 속에 그대
그대 그대 모습을 사랑하고 싶지만
돌아서 버린 너였기에
멀어져 버린 너였기에
소중한 기억 속으로
접어들고 싶어
-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가사 중 -
현진영은 1989년 데뷔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1호 가수 되시겠습니다. 1987년 발탁되어 2년 넘는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1989년 싱글 앨범 <야한 여자>를 발표했습니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1집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합니다. <슬픈 마네킹>과 <야한 여자>가 대표곡이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랩이었죠. 현진영과 와와 시절에 늘 데리고 다닌 백댄서가 2명 있었는데 이들은 이후에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합니다.
1992년 2집, 솔로로서는 처음으로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가 여기에 실린 곡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이어서 후배가수들이 지금도 적지 않게 커버를 하고 있습니다. 친구였던 이탁 씨와 함께 공동작업을 했는데요, 이탁 씨는 탁2준2라는 그룹으로 나중에 데뷔를 하게 되죠. 이 앨범의 후속곡인 <현진영 go 진영 go>라는 노래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현진영이라는 가수의 가치는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엉거주춤과 X세대를 상징하는 X자 마크가 새겨진 커다란 후드티와 큼직한 청바지로 상징되는 힙합 패션을 유행시키기도 했죠.
1993년 3집에는 <두근두근 쿵쿵>이라는 노래가 있었고요. 속사포랩이 화제였죠. 하지만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 입건되면서 잘 나가던 활동에 제동이 걸립니다. 1997년 이탁 씨와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갱스터 랩을 선보였고요. 2002년 4집에서는 반성의 의미를 담아 마약 퇴치 운동을 벌이기도 했죠. 2006년 발매한 5집 앨범은 재즈힙합이었고, 2015년과 2022년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년 만에 단독콘서트를 갖기도 했고요. 12월에는 재즈를 테마로 한 공연도 예정되어 있네요.
호서전문대학과 세종사이버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 바 있고요. 엔터테인먼트에서 총괄 프로듀서를 하며 후배들을 다수 양성해 냈죠. 최근에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 출연하며 전보다 얼굴을 많이 비추며 전보다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하하.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흐린 기억 속의 그대'입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사랑했던 누군가겠죠? 이 곡을 공동 작업한 이탁과 현진영 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 노래의 주인공을 '어머니'라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첫 부분부터가 압권이죠. '안개빛 조명은 흐트러진 내 몸을 감싸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우예~/ 나의 모습 이제는 싫어 슬뜰르를 예' 부분입니다. 조명이 흐려진 것과 술에 취해 사리분별이 안 되고 비틀거리는 화자의 모습이 묘사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다고 말하고 있고요. '슬뜰르를'라는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이렇게 적으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하하하.
'뽀얀 담배 연기/ 화려한 차림 속에/ 거울로 비쳐오는/ 초라한 나의 모습/ 변화된 생활 속에/ 나만의 너는 너는 너는 잊혀져 가고' 부분입니다. 옷을 멋들어지게 입고 한껏 멋을 부리고 있습니다. 입에 담배를 문 상태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거기서 초라함을 발견하죠. 이유는 변화된 생활입니다. 사랑했던 누군가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힘겨운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집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그러는 사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도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져 가죠.
'여인들의 열기 속에/ 흔들리는 촛불마저/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어' 부분입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화자만 촛불 하나처럼 혼자인 상태죠.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일수록 그 영향으로 그 촛불은 흔들립니다. 마치 촛불의 처지가 화자 자신인 것만 같아 처량하고 견딜 수 없어하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싸늘한 밤거리를/ 걷다가 무거워진 내 발걸음/ 흐린 기억 속에 그대/ 그대 그대 모습을 사랑하고 싶지만/ 돌아서 버린 너였기에 /멀어져 버린 너였기에/ 소중한 기억 속으로/ 접어들고 싶어' 부분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나 볼 수 없는 상황.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 인물을 보기 위해 기억을 소환해 보는 것이죠. 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시간이라는 함수 속에 빠져 흐릿할 뿐이죠.
랩가사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속에/ 나만의 모습 찾을 수가 없어 없어/ 흐트러진 나의 마음/ 무질서한 공간에서/ 슬픔에 찬 나의 마음/ 이젠 이젠 이젠 이젠 잊고 싶어'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온전했던 자신의 모습이 그 존재의 상실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고 느끼는 것 같죠? 그걸 무질 한 공간의 흐트러진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화자는 그 기억을 잊고 싶어 합니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나/ 왜 내 마음 모두 남겨 버린 채/ 내 곁에서 멀리 떠나가버린/ 흐린 기억 속에 그대 모습 떠올리고 있네/ 하 하루 지나고 지나도 왜 너를 잊을 수가 없는가/ 내 곁에서 멀리 떠나가버린/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모습 떠올리고 있네' 부분입니다. 잊고 싶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화자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죠. 왜 그렇게 말도 없이 저 멀리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연을 영영 모른 채 말이죠. 지금 화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떠올려 보는 일이겠죠?
음. 오늘은 가사 중 '무질서'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대략 난감할 예정이네요. 하하하. 질서가 없는 상태.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이 떠오르나요? 저는 코로나 초반 그리고 박근혜 탄핵 전 뭐 이런 것들이 연상됩니다만. 뭔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혼돈의 상태 말이죠
과학에서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무질서를 설명하는데요. 엔트로피의 법칙 일명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된 계에서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다는 법칙을 말합니다. 방 안에 연기를 피운다고 했을 때 연기가 한 곳만 있지 않고 방 전체로 퍼지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될 텐데요. 질서가 있는 상태는 아주 적은 확률로 존재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있거나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들 학교나 군대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공간에서 질서를 강조하잖아요. 그냥 풀어놓으면 중구난방이 될 게 자명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간에서 질서가 없다면 아마도 힘센 사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고요.
질서는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이나 사물 사이의 규칙적인 관계를 뜻하는데요. 질서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개인이라는 이름의 다양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전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히틀러죠. 그에게 질서란 유대인이 없는 상태로 받아들여졌을 테니까요.
과학은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렇고 어떤 때는 저렇고 가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는 늘 이렇다는 것을 발견하고 측정하고 재현하는 학문이라서죠. 그에 반해 인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학문은 인간의 질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봐야 할까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서의 재편이죠. 그동안 믿었던 어떤 정보가 폐기되고 새로운 정보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됩니다. 특정 현상이나 정보를 발견한 것이 서서히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그걸 인정하는 시점에서 점핑하듯이 도입된다고 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죠.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무질서의 모습을 보입니다. 지동설과 천동설이 충돌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믿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많은 현상들이 발견되고 소수의 사람들이 천동설을 부르짖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권력은 그런 무질서를 싫어하기 때문에 새로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철창에 가두고 심지어는 사형 선고를 내리죠.
그러다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벼락같이 천동설이 인정받게 되는데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모든 분야가 역동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바로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놓는 르네상스가 바로 그런 현상을 뜻하죠. 무질서에서 찾은 새로운 질서는 그만큼 강력하고 전 지구적이죠. 요즘 AI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동설을 믿고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질서라고 생각했을 것 같단 말이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기가 찬 일이겠지만 절대다수가 거짓을 진짜라고 믿는 세상이었니 무질서가 들어설 공간은 없었을 겁니다. 문제의식 없는 평온한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랄까요?
질서와 무질서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질서는 좋은 것이고 무질서는 나쁜 것일까요? 역사적으로도 질서가 있기 위해서는 무질서라는 긴 강을 건너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무질서라도 당시의 사람들 다수가 그걸 질서라고 우기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러니죠.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던 질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홀로서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죠. 완벽하게 홀로서기가 가능하면 좋겠지만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마음이 흐트러지고 기존의 질서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말합니다. 그 기억조차 희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라는 이름을 부여받죠.
과연 화자는 이러한 무질서의 시간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을까요? 그냥 과거 속에 살겠다고 선언해버리려고 해도 시간은 째깍째깍 무심히 흘러갑니다. 그걸 알기에 화자도 잊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우리들 마음의 질서가 깨지고 무질서가 찾아올 때 이 노래를 함께 불러보아요. 우주에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진행된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우리들 마음에 적용해 보면서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어제 썼던 브런치가 다 날아갔습니다. 저장이 아닌 발행 버튼을 눌렀고 화들짝 놀라 '발행 취소'가 이 닌 '삭제' 버튼을 누르는 두 번의 대참사를 겪어서죠. 덕분에 팔다리가 고생했습니다. 무질서 그 자체였다고 할까요. 하하하. 그래서 기억을 복귀해서 새로 썼습니다. 다시 쓰니 처음보다는 좀 가지런해지며 질서를 부여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하하. 날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즐거운 저녁 시간 되시어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