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이무송
https://youtu.be/Nou-TTZtPGc?si=9AoaFu9wlaKiuHWt
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 평생을 살 사람아
정들어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 이무송의 <사는 게 뭔지> 가사 중 -
이무송은 1987년 데뷔했습니다. 유학중이던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뉴욕 대표로 나온 '어금니와 송곳니들'이라는 밴드에서 드러머를 담당했죠. 동상을 받았고요. 1987년 1집 앨범 '잃어버린 시간'을 발매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죠.
오늘소개해 드릴 노래는 1992년 발매한 2집 'Karma'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이 노래는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전성기였죠. 이 노래는 2021년 리메이크 앨범으로도 나왔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1999년까지 6집을 발매했지만 그냥 뭍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노사연 씨와 1994년 결혼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수 최성수 씨가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때 잉꼬부부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이무송 씨가 졸혼 이야기를 꺼낸 바 있고 노사연씨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애증이 관계가 옅보이거든요.
입담이 좋아서 부부동반으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 라디오DJ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음반을 새로 내진 않지만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서 노래도 종종 하고 있습니다. 현재 결혼정보 업체의 사외 이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사는 게 뭔지'입니다. 여려운 질문이죠. 한 마디로 딱잘라 말하기에 말이죠. 이 제목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한탄의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가사를 쫓아가면서 왜 화자가 이런 한탄을 하게 되었는지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찾아보도록 하죠.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순 없지만/ 인연이 끝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알 수 없는 거잖아'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사랑이 무엇이냐고 자문하면서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인연이 끝난 후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면 되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화자는 사랑의 반대말로 아픔을 꼽고 있죠. 사랑에는 가시돋힌 아픔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결혼이 무엇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아직 알 순 없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알 수 없는 거잖아' 부분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죠. 이 역시 몇 년이 지난 후에 후회할 지 말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삶과 같은 덩어리로 보는 듯 합니다. 아니면 삶만큼이나 복잡난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사랑한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 하지/ 후회하는 거라고/ 하지만 사랑 않고 혼자서 살아간다면(2절 : 하지만 둘이 아닌 혼자서 살아간다면) 더욱 후회한다고'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랑을 하면 후회한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더욱 후회한다고 말이죠. 사랑을 해도 후회는 하지만 안 한 것보다는 낫다 정도로 정리해야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 평생을 살 사람아/ 정들어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부분입니다. 화자는 사랑의 좋은 면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까지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걸 다 안 후에 후회하는 사랑과 더 후회하는 솔로 중 전자를 택하고 있죠.
사랑을 넘어 정이 든 사람과 힘들어도 한 평생을 같이하며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노래 말미에 '사랑을 하면서 후회는 왜 하나'라고 반문하기도 하죠. 어차피 가야 할 길,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긍정적으로 임하자와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음. 오늘은 가사 중 '사랑한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 하지/ 후회하는 거라고/ 하지만 사랑 않고 혼자서 살아간다면(2절 : 하지만 둘이 아닌 혼자서 살아간다면) 더욱 후회한다고'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마치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명언이 떠오르죠.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죠.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독과 욕망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고독과 욕망으로 잡은 것은 예전에 브런치 <독서유감>에서 소개한 <인간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저 역시 아직 인간의 본성을 이 두 단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을 찾지 못한 상태라 이걸 빌려 씁니다.
이유도 모르고 내던져진 우리는 고독의 바다를 헤엄치며 삽니다. 그래서 늘 누군가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사랑의 감정이 동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갖고 싶고 안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욕망의 바다를 헤엄치게 됩니다. 고독과 욕망은 우리가 살아 숨쉬는 한 우리 몸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가진 고독과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어서 잠시 치유는 가능하나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는 맹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할 때 일시적으로는 고독과 욕망이 충족되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다시 고독해지고 욕망이 들끓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후회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하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고 봐야겠죠. 이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더 큰 후회를 맛보게 되니까요.
우리 인생의 기본값이 사랑을 통한 후회라면 최소한 사랑하는 일정 기간 동안은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조차 하지 않으면 고독과 욕망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야 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부러움 따위를 느끼기까지 합니다.
남과 여의 사랑은 그렇습니다. 외로움과 함께 하고픈 욕구가 발동되어서 시작되지만 외로움은 절대적 외로움에서 상대적인 외로움으로 바뀌고 함께 하고픈 욕구는 혼자 있고픈 욕구로 변합니다. 그래서 종국에서는 사랑한 것을 후회하는 스토리로 귀결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저는 이 지점에서 이런 뻔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결국 고독과 욕망을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되죠. 고독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수로 결정되진 않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고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100명의 친구보다 한 명의 깊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고독 퇴치에는 더 좋습니다.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인 것 같아요.
욕망은 시시 때때로 일어납니다. 뭔가를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고 갖고 싶고 등등요. 욕망의 특성은 1차적 욕망이 충족되면 더 큰 욕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죠.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를 지향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역설적이게도 무언가가 늘 부족한 상태로 남게 됩니다. 멋진 차를 한 대 사면 끝날 것 같지만 그 안에 인테리어가 막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죠. 어디서 멈출 수 있는가가 그래서 화두입니다.
자. 이제 이런 고독과 욕망의 속성을 이해했다면 다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죠. 사랑한 사람들이 후회하는 이유는 깊은 마음의 교류가 바닥이 나서 같이 있어도 같이 없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투여된 욕망이 해소가 되지 않아서일 겁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더 후회하는 이유는 깊은 마음의 교류를 할 대상조차 찾을 수 없어서이고 사랑이라는 욕망을 투여할 존재가 보이지 않아서는 아닐까요?
저는 무언가가 채워져야만 고독과 욕망을 해결하는 매커니즘에 주목해 보는데요. 우린 불완전한 존재라는 디폴트값을 먼저 인지하고 수용해야 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원래 인간은 외로운 거다. 원래 인간은 바라고 또 바라는 거다. 그러니 없을 때를 생각하며 지금에 감사하며 살자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이 노래에서 '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 평생을 살 사람아/ 정들어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라는 하이라이트의 구간에서 화자의 사랑이 왜 결국 이렇게 흐르는지를 알려면 고독과 욕망을 기반으로 한 사랑의 속성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후회하더라도 사랑합시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몇 일 남지 않는 세밑이 어수선합니다. 주말에 무안 참사를 보니 브런치가 쉽게 써지질 않았습니다. 먼저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 나몰라라 하고 글을 올리기 보단 세상과 호흡하는 시대 정신같은 게 더 필요한 시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저 나름의 애도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악을 마음 편히 듣을 수 있게 세상이 어서 찾아왔으면 하네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