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김정수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정수'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Fh5g5ziG9OM?si=UNecWAdJu5gH0EiI
내 품에 안기어 곤히 잠든 그대여
어느 덧 그대 눈가에도 주름이 졌네
내 가슴에 묻혀 꿈을 꾸는 그대여
야위어진 그댈 바라보니 눈물에 솟네
고왔던 여자의 순정을 이 못난 내게 바쳐두고
한마디 원망도 않은 채 긴 세월을 보냈지
나 맹세하리라 고생많은 당신께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대를 사랑하리
- 김정수의 <당신> 가사 중 -
김정수는 1967년 데뷔했습니다. 미8군에서 록 음악밴드 <미키스>로 출발했죠. 1978년 <김정수와 급행열차>의 보컬리스트로중 <내 마음 당신 곁으로>라는 노래를 발표합니다. 이 노래 참 좋습니다. 1985년에 가수 민혜경씨도 리메이크한 곡이죠.
이 노래로 일본 진출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일본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국내로 들어와 1985년 솔로 가수로 본격 데뷔합니다. 제2의 가수 인생이라고 볼 수 있죠. 일본에 있을 때 너무도 가족이 그리웠는데 이걸 모티브로 삼은 노래가 오늘 소개할 곡입니다.
이 노래는 가요톱텐에서 트로트는 드물게 5주 연속 1위를 했고 KBS 가요대상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애처가라고 하네요. 하하하. 중절모가 매우 잘 어울리는 비주얼이죠. 덕분에 대머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2008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그까이꺼>를 발표했으나 이전 2곡을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2020년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내용을 보면 갑작스럽게 위함 3기 진단을 받았으나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전해지고요. 지금도 음악을 놓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되네요. 화이팅입니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당신'입니다. 트로트 제목으로는 짧아서 좋긴한데 당최 무슨 노래인지를 알 수 없는 제목이죠. 아까 말씀드렸지만 일본활동할 때 너무도 가족이 그리웠던 시절이 모티브가 된 곡입니다. 그만큼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을 듬뿍 담아 만든 곡이죠.
'내 품에 안기어 곤히 잠든 그대여/ 어느 덧 그대 눈가에도 주름이 졌네' 부분입니다. 세월이 어찌 흘렀는지도 모르는 사이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얼굴에서 주름을 발견합니다. 세상일에 바쁜 나머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있었던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죠.
'내 가슴에 묻혀 꿈을 꾸는 그대여/ 야위어진 그댈 바라보니 눈물에 솟네' 부분입니다. 함께 잘 살자, 행복하자라고 말하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꿈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린 듯 합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야윈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죠. 그 풍파에 큰 몫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화자의 가슴을 애려 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고왔던 여자의 순정을/ 이 못난 내게 바쳐두고/ 한마디 원망도 않은 채/ 긴 세월을 보냈지' 부분입니다. 화자라는 사람을 선택해서 삶을 살아온 배우자. 그동안 원망할 일이 한 두개가 아니었을 텐데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화자 옆을 지켜주었죠.
'나 맹세하리라 고생많은 당신께/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대를 사랑하리' 부분입니다. 얼마 전에 맹세가 약속과 어찌 다른지 썰을 통해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 그 후폭풍을 감당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고요. 그동안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남은 시간 갚는 것으로 대신해 보려 하는 화자의 모습이 담긴 가사입니다.
음. 오늘은 가사 중 '어느 덧 그대 눈가에도 주름이 졌네'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세월'이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모두 시간에 지배를 받습니다. 잠깐이나마 돌연변이의 이상으로 혹은 의약이나 패션 조정을 통해 회춘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긴 그림으로 보면 늙는 건 막을 수 없죠.
여러분들은 나이가 든다는 걸 무엇을 보면서 느끼시나요? <가사실종사건>에서 소개해 드린 노래가 언제 나온 노래였는지를 확인하면서일수도 있고요. 이 노래처럼 거울을 보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거나 흰 머리가 어느새 하얀 꽃을 피웠을 때일 수도 있죠.
제 경우에는 트로트 가사가 예전과는 다르게 들릴 때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트로트는 제 최애 장르도 아니었을 뿐더러 가사가 하나같이 유치하게 들렸었거든요. 나이가 들면 애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복잡하고 빠른 음악과 가사는 소화가 되지 않아서인지 뭐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죠.
그런데 직접적인 표현이 많은 가요와 다르게 어린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로 노래를 만드는 게 더 어려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성철 스님이 '산은 사닝요. 물은 물이요'라고 말하면 문자적으로 이해했던 시절을 지나 그 말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쯤해서 아마도 세상과 감정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시에 눈이 갔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근사한 시집을 한 편 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시에 음을 붙인 가곡과도 그래서 접속이 이루어졌죠. 다 세월 탓입니다. 하하하.
전 요즘 '세월엔 장사 없다'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현 시국을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시끄럽지만 다 제자리를 찾아갈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역사의 점을 사는 우린 그 점안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죽을 듯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사실 몇 년만 지나도 그때 그랬어 하며 기억을 더듬느냐 바쁘게 되기도 하죠.
세월이 흘러서 예전에 살던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둔갑해서 자신의 기억을 둘 곳이 없어 허망했던 적 있으신가요?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는 세월의 경과는 흔적이라도 남겨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몸뚱이는 탄력이 떨어졌지만 그 몸이 그 몸이니까요.
세월은 비교적 공평합니다. 연애인들 중 아무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그 세월을 무색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만 세월과 싸우며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너도 늙고 나도 늙어가죠.
서로가 늙어가는 존재라는 사실만 가슴에 품고 살아도 우리 삶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세월의 지배를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공집합이 서로에 대한 시샘이나 미움 등을 낮추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 노래에서처럼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늙음을 보면 더 애틋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죠. 그것을 보는 당사자도 같이 늙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늙어가는 누군가를 걱정하는 것이죠.
우리가 늙어가는 존재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무엇을 가졌을 때 굉장히 샘이 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그 무언가를 사용하며 즐거움을 누린다고 생각하면요. 하지만 늙어가는 존재라면 무언가를 가졌다는 게 한시적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죠. 죽을 때 다 싸갈 수 없는 것이니까요. 죽을 땐 다 내려놓아야 하니까요. 평생 쓰지도 못할 돈을 벌었다고 자고 나면 돈이 쌓이는 어떤 사람은 그런 읨에서 하나도 부럽지가 않은 인간입니다.
우린 세월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존재인 동시에 이 세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바꿔나갈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다 늙는 거 너 해. 어차피 다 늙는 거 그거 안 한다고 뭐가 다르냐 등의 사고가 가능해지거든요. 세월을 잘 이해하면 세월에 떠밀린 삶이 아닌 세월과 벗하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 기회에 세월하고 친구 한 번 먹어보실랍니까?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한동안 트로트 파트가 잠자고 있었네요. 그래도 매거진에서 가장 쓴 지 오래된 파트를 쓰기 위해 조금의 의도적인 노력은 기울인 답니다. 하하하. 어떤 사람의 늙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동반해야만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내일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평소보다 좀 디테일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들키진 마시고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