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박정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정운'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mqZXeSywuOg? si=0749 wMzFyvPzMvpa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사랑했다 말을 할 거야
- 박정운의 <먼 훗날에> 가사 중 -
박정운은 1989년 데뷔했습니다. 9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1989년 혼자 귀국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합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상업미술과, 한국에서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수재입니다. 데뷔는 오석준, 장필순과 함께 만든 합동앨범이었고요. '내일이 찾아오면'이라는 곡이었죠.
1991년 발표한 2집 앨범에는 '오늘 같은 밤이면'이라는 명곡이 수록되어 있고요. 이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등에 밀려 2위만 10주 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93년 그의 3집 앨범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1위를 못한 설움을 한 방에 날린 곡이었죠.
1994년 4집, 1996년 5집, 2002년 7집을 발매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가수 생활을 중단하게 되는데요. 무대에 복귀하려고 준비하던 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그 후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납니다. 2022년이었습니다. 2017년 불후의 명곡 박정운과 김민우편에 출연한 것이 그나마 영상으로 남아 있어 다행이었죠.
가는 목소리지만 나름 파워풀해서 리스너들의 귀를 즐겁게 했죠. 이 노래는 가수 윤하와 박완규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2집부터는 자신이 직접 곡을 쓰고 작곡했는데 이 노래도 그가 직접 만든 곡이죠. 미국 국적을 보유했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음악 활동을 했던 그였지만 오늘 소개한 곡을 정점으로 인기가 꺾긴 것이 다소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변고 소식까지 있었으니 말이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먼 훗날에'입니다. 얼마쯤 지나야 먼 훗날이라는 표현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까요? 1년은 좀 약한 듯하고 5년이나 10년 정도는 잡아야 하겠죠? 화자는 뭐가 하고 싶어서 그날을 그리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일까요?
'잊으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지우려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그 이름'이 첫 가사입니다. 당연히 헤어진 누군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겠죠. 의지를 발동해서 잊고 지우는 것이 잘 안 되는 화자입니다.
2절을 볼까요. '때로는 외로움 속에/ 때로는 아쉬움 속에/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난 홀로 울고 말았지' 부분입니다. 2절은 이별 후가 되겠습니다. 혼자 지내는 외로움, 잡지 못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어느 날 눈물이 갑자기 터져버린 상황이죠. 이별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별을 아쉬워하며/ 나의 품에 안겨 고개 숙인 너/ 가슴속 깊이 간직한/ 네게 하고 싶었던/ 그 한마디 남겨둔 채' 부분입니다. 이별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화자의 숨에 안겨 고개 숙였던 상대에게 화자는 끝내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사랑했다 말을 할 거야' 부분입니다. 이별 현장에서 먼저 등을 돌린 건 화자였던 모양입니다.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진 않았지만 상대가 울먹이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의 정체는 '사랑했다'였네요. 견디기 힘든 현장에서 차마 약해질까 염려해서 그 말을 못 건네었던 것일까요?
노래 말미에 하이라이트 구간과 비슷한 가사가 나오는데요.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너는 나의 마음 알고 있을까/ 너를 진정 사랑했다고' 부분입니다. 화자가 먼 훗날을 언급했던 것은 사랑했다는 자신의 진심을 상대가 알고 있었을지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먼 훗날은 미래의 어느 날이라기보다는 기회가 되는 어느 날로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어떤 날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그 뒤에 다시 만나면이라는 가정이 붙는 것도 그렇고요.
음. 오늘은 제목 '먼 훗날에'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먼 훗날에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먼 훗날은 특정하지 않는 미래를 뜻합니다. 미래는 미래인데 언제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진 않는 것이죠. 나쁘게 보면 불투명한 것이고 좋게 보면 그만큼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현재의 삶이 너무 각박하기에 우린 먼 훗날을 그려봅니다. 언젠가는 지금의 힘듦이나 슬픔을 극복하고 밝게 웃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죠. 특정하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이 되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에 지금의 삶이 좀 숨통을 트는 것이겠죠.
교육을 말할 때 백년대계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매년 후까지의 큰 계획이라는 뜻으로 지금보다는 다음 다다음 다다다음 세대가 누릴 수 있는 좋은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죠. 현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년 젓가락 뒤집듯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입니다.
사실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백 년이 아니라 십 년, 아니 일 년 후에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매년 새해 전망을 발표하지만 연말이 되어서 보면 그대로 된 적은 거의 없잖아요. 그만큼 역사상 가장 많은 전 세계 인구가 저마다의 의지와 생각으로 사는 지구촌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죠.
그래서 일까요? 우리의 시선은 지금, 여기, 당장에 파묻혀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자그마한 핸드폰에서 시선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죠. 소확행이니 하는 말에는 먼 훗날은 올지 안 올지 모르니 지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지는 심리가 담겨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00살까지 사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99년 인생 농사를 잘 짓다가 마지막 1년을 망하면 그 삶은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반대로 99년 농사가 폭망 하다가 마지막 1년 농사를 잘 지으면 그런대로 기쁨을 느끼며 눈을 마감할 수 있죠. 99년 농사가 폭망 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먼 훗날에 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멀리 길게 보는 일이 꽤나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채 1년 아니 1달도 지속하기가 힘들죠. 몇 초로 이루어진 릴스 같은 짧은 영상으로 도파민 뿜뿜하는 시대에서 보이지도 않는 먼 훗날은 명함을 내밀기도 힘든 상황이 되고 있는 듯한데요. 과연 먼 훗날은 그리도 쓸모가 없는 걸까요?
제가 첫 책 <지구복 착용법>에서 완성 콤플렉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요. 우린 뭐든 시작하면 꼭 완결을 지어야만 그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여행을 한다 치면 5대양 6대주를 다 가봐 진짜 세계여행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왜 3 대양 혹은 3 대주만 가면 세계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저 멀리 화성이나 우리 은하 정도까지 경험해야 세계 여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하하.
완성 콤플렉스는 자신의 생각의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본인이 허용하는 무언가가 생각으로 다 들어오면 거침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요새가 되는 셈이죠. 하지만 우린 죽는 그날까지 생각의 문을 늘 열어놓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으나 죽는 시점에 어떤 생각은 내 안에 있고 어떤 생각은 내 밖에 그대로 둔 채 삶을 마감하는 식이죠.
'먼 훗날에'라는 가사가 우리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열림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떠한 이유로 그럴 수 없으나 특정하지 않는 미래에는 한 번쯤 내가 원하는 상황이나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죠. 물론 먼 훗날에도 그런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만 놓고 보면 허왕된 꿈을 가지고 사는 것과 같죠.
하지만 돈이 안 되는 일에서 진짜 행복을 자주 느끼듯이 우리의 꿈이 늘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며 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완성 콤플렉스는 바로 이 점을 공략합니다. 완성이 되어야만 행복이 찾아온다는 잘못된 믿음에 기인한 것이죠.
여러분들은 먼 훗날에 뭐가 되고 싶거나 뭔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제발 그걸 함부로 내려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설사 뭐가 되지 않고 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그걸 향해가는 삶이 그냥 부질없고 쓸모없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거든요. 글을 써서 전업 작가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안되면 어떻습니까?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글은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알게 하는 도구가 되어 줄 겁니다.
우리 인생이 오늘 100원 넣으면 내일 110원이라는 숫자로 바뀌는 마케팅은 아니잖아요. 먼 훗날 남들이 인정해 주는 공식적인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리 실망하지는 맙시다. 먼 훗날을 기약하며 현재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과실을 누릴 자격이 있을 테니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30대에는 회사 잘리면 긴긴 세월을 뭐 해 먹고사나 걱정을 꽤나 많이 했더랬습니다. 40대가 되니 이제부터라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하자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50대가 코 앞에 다가오면서 나중에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그리고 먼 훗날에 눈을 감을 때 잘 살았노라라고 말하려면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뭘 빠뜨렸는지도 돌아보게 되더군요. 여러분에게 먼 훗날은 어떤 그림이실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