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강은경 작곡 박재철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부용'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fwiOUX-31y4? si=NSUREhcsOTEw62 KL
너의 사랑은 연인은 전부는 될 수 없다 하여도
늘 네가 외로울 땐 내 생각을 해 곁에 있어
네 모든 아픔은 슬픔은 눈물은 내가 모두 가질게
더 이상 헤매지 마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지잖아
- 김부용의 <풍요 속의 빈곤> 가사 중 -
깁부용은 솔로 가수로 1995년 데뷔했습니다. 데뷔곡은 <돌아보면>이라는 노래였는데 크게 반향이 없었고요. 배우 김지호 씨가 뮤직비디오에 나올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말이죠. 1996년 2집 <CHANCE>가 실린 타이틀곡이 히트를 지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가수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바로 그 노래이죠.
하지만 이 노래는 일본의 보이밴드였던 체커스의 노래인 <짐과 제인의 전설>를 표절한 것으로 판결이 났죠. 사실상 원히트원더 곡이 표절이었으니 이후 활동이 원활치 않으며 대중에게 잊혀 갔죠. <불타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근황을 전하면서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더랬습니다.
JTBC <슈가맨>에 출연해서 원래 연기자로 계약을 했고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가수를 그만두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음악 방송이 립싱크에서 라이브로 바뀌면서 공황장애를 겪으며 적응하지 못하다가 군대를 가면서 가수 활동을 접었다고 하네요.
1998년 3집을 내고 재기를 꿈 구웠지만 잘 안 됐죠. 한 참 후인 2010년에 디지털 싱글을 하나 내기도 했네요. 현재는 압구정동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등 잘 되는 가게 사장님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하하.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뭐가 많은 데 내 것은 없는 뭐 그런 상태를 가리키죠. 사랑에서는 지천에 남자 여자가 즐비한데 내 짝은 없는 경우 정도를 뜻하고요. 여기서는 오히려 너무 짝이 있을 것 같아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아 솔로가 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언급하고 있네요.
'항상 네 주위엔 수많은 남자들의 행렬/ 너의 환심사려 아낌없는 배려 넌 행복하겠지/ 그런 너였기에 물론 난 눈에 찰 리 없지/ 그저 멀리서만 너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지'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가 좋아하는 상대인 한 여성은 꽤나 인기가 많아 보입니다. 그런 상대가 화자에겐 부담스러웠을까요. 화자는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연히 알게 된 너의 생일 저녁에/ 쓸쓸히 혼자인 너를 봤어/ 당연히 누군가 함께 일거라는/ 우울한 상상만을 했는데/ 그런 게 풍요 속 빈곤이라는 거야/ 허탈한 네 마음 알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걷고만 있는 널/ 이제는 내가 함께 하려 해'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입니까. 그녀의 생일 저녁에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하고 혼자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화자는 이 상황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임자가 있을 것 같아 아무도 대시를 하지 않아 솔로인 상황 말이죠. 그 덕에 화자는 그녀에게 다가갈 기회를 포착하고 용기를 내 보려 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너의 사랑은 연인은 전부는 될 수 없다 하여도/ 늘 네가 외로울 땐 내 생각을 해 곁에 있어/ 네 모든 아픔은 슬픔은 눈물은 내가 모두 가질게/ 더 이상 헤매지 마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지잖아' 부분입니다. 자격지심이었을까요. 사랑도 연인도 되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외로울 때 곁에 있어줄 수는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픔과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이 그걸 담당한다고 하죠. 화자에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이 더 참기 힘들었나 봅니다.
'너 비록 시간이 오늘이 이 밤이 지나간 후/ 또다시 날 외면한다 해도 끝까지/ 내 맘 널 원망하지 않아' 부분입니다. 잠깐 외로움을 느껴서 그녀가 화자에게 손을 뻗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다시 외면한다고 해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요.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진짜 사랑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음 오늘은 제목 '풍요 속의 빈곤'을 주제로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 자주 들어보셨죠? 세상에 반은 남자이거나 여자인데 나는 짝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이죠. 아니면 가질 것 다 가졌는데 유독 부자가 되니 더 돈을 못 쓰는 상황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말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장했습니다. 저축의 역기능을 언급하면서요. 부유한 사회가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도리어 빈곤해질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표현이었죠. 이 표현은 양극화 문제를 언급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 향상되었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빈곤층이 생기는 현상을 말하죠. 일명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지수가 가장 낮았던 때는 1979~1980년대였습니다. 고도 성장기에 있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죠. 90% 수준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하며 누구든 열심히 일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마인드가 자리 잡았던 우리 경제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IMF라는 경제 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급변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이 구분되면 그 간극이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대기업과 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풍요의 영역에,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있는 사람들은 빈곤의 영역에 놓였죠.
그리고 근 3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익부 빈익빈이 안 좋기로 소문난 미국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글로벌화와 짝은 맺은 자본주의는 부의 편중을 가속화시키며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하는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있죠.
저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에서 앞의 풍요는 물질적인 부분을, 뒤의 빈곤은 정신적 부분을 뜻하는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물질적인 부분은 장족의 발전을 해 왔잖아요. 물건은 넘치고 넘치는데 그걸 살 돈이 없는 상황이죠. 그에 반해 우리의 정신적인 부분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나만 잘 살면 돼라는 구호의 우익 움직임이죠.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자본가의 탐욕을 끝이 없고요. 각박한 현실에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이 우리의 정신은 부지불식간에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돈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우려가 듭니다.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었더라면 '픙요속의 빈곤'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음식점 하나만 봐도 되는 집만 되는 세상이다 보니 어떤 정책적 접근이나 판단 미스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맛있는 음식을 나도 좀 먹어 보겠다고 그 대열에 끼는 현상을 뭐라 할 순 없으니까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물질적 풍요를 갖는다고 해서 정신적 풍요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현실에는 물질적 풍요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지만요. 격하게 말해서 정신적 풍요는 물질적 풍요와는 무관합니다. 산 골의 스님이 가진 게 얼마나 된다고 높은 정신적 풍요 상태를 유지하고 있겠어요.
책을 예로 들어볼까요. 예전엔 글자를 모르거나 책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무나 책을 대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도서관 가서 책을 빌릴 수도 있고 전자책을 읽으면 한 달에 만원 정도면 가능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가진 부자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죠. 다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말할 순 있을 겁니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생계를 위해 잠자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예외로 하고요. 평일은 몰라도 주말 정도는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책을 보기보단 너튜브 등 영상에 심취하죠.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빈곤의 이유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일을 등한시해서 그런 것이죠.
우리가 '풍요 속의 빈곤'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같은 꿈을 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기 잡는 집은 고기가 풍요로울 것이고 농사짓는 집은 쌀이 풍요로워서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은 고기도 돈으로 쌀도 돈으로 환산해 그 크기를 비교하죠. 비결혼주의자에게 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까요? 우린 저마다 갖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다른 거잖아요. 그런데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해서 돈 많으면 형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면 당연히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게 될 겁니다.
정리하죠. 돈 많은 사람이라고 걱정이나 고민 없이 사는 건 아닐 겁니다. 돈이 풍요로운 것이지 정신이 풍요로운 것은 아닌 것이죠. 오히려 너무 없으면 풍요 속의 빈곤이 성립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지 않는 길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느끼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네요. 현실적인 버전은 물질적 풍요와 함께 정신적 풍요도 비례해야 하는 것이겠죠. 지금 여러분들은 삶에서 '풍요 속의 빈곤'을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고 계시는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 노래에 등장하는 그녀처럼 너무 훌륭(?)해서 짝이 없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인기녀인 줄 알고 남자들이 제 풀에 포기해서 그렇죠. 주변에 남자라는 대상은 풍요로우나 사랑하는 관계가 되지 못한 빈곤한 상태인데요. 애초에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가 없었다면 실망감은 줄어들었겠죠. 조금은 곁을 내주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풍요를 탑재했으나 그 풍요를 빈곤에 빠뜨린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