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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의 <진이>

작자/작곡 최수정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하이디'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GTP9 xcTE7 sw? si=A_gEmVbfS9_bdujq

이 시간이 간이 간이

지나가기 전에

내게 용기를 내어서 돌아와 줘


나의 맘이 맘이 맘이

변하기 전에

I wanna be a Mr Lee


- 하이디의 <진이> 가사 중 -




하이디는 솔로 댄스가수로 1995년 데뷔했습니다. 본명은 이혜영입니다. 지나가다 본 예쁜 옷 가게 이름에서 따온 활동명이라고 하네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서 20세가 되던 해에 <착각>이라는 곡으로 데뷔를 합니다. 후속곡으로 <다시 내게로>라는 노래를 선보였고요.

하이디 하면 떠오르는 1번 곡은 오늘 소개해 드릴 곡입니다. 1996년 발매한 2집의 타이틀 곡인데요. 90년대를 상징하는 빠른 템포의 리듬감과 시원한 가창력이 일품이죠. 원래 이 노래는 작곡가 최수정 씨가 남성 가수를 염두하고 만들었던 곡이라고 하네요. 최수정 씨는 UN의 <선물>, 인디고의 <여름아 부탁해>를 만든 분입니다. 이 노래는 차트 1위를 하진 못했지만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등 흥이 필요한 장소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JS, 김연숙, 홍경민 등이 이후에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고요.

그녀는 3집을 내고 성대결절에 걸려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가 포항 MBC 정오의 희망곡 DJ를 맡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와서 2013년 싱글 <철없던 사랑>을 발표했고요. 2017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습니다.

2016년 슈가멘에 출연했고요. 제작진이 안 불러줘서 본인이 직접 연락을 했다고 하네요. 하하하. 2020년에는 복면가왕에도 출연하셨더라고요. 지금도 가수 활동은 꾸준히 하고 계신 듯해요. 현장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형태라고 할까요. 트로트 가수로도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진이'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이겠죠. 원래 남자 가수가 부르려고 했던 곡이었으니 진이는 어떤 한 여자의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네요. 너무도 흔하디 흔한 이름이겠지만 화자에게는 이 세상 모든 진이와 구별되는 하나의 이름이었을 겁니다.

'진이 너 없는 동안에/ 난 한 번도 널 잊은 적 없고/ 오 진이 넌 모를 거야/ 너 외엔 다른 사람 없다는 걸'이 첫 가사입니다. 진이가 어디로 떠난 것일까요? 시키지도 않은 일 같은데 화자는 혼자 상대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죠. 뒤에 내용을 보면 이별을 한 뒤의 반응인 것으로 추정되네요.

'한 번만 더 늦기 전에/ 나를 사랑한다고 해줘/ 넌 나의 전부야/ 그건 너의 오해야/ 날 믿어주길 바라' 부분입니다. 뭔가 많은 내용이 압축된 듯하네요. 화자는 상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그 말을 내뱉지 않는 상대에 지쳐가는 중이죠. 그래서 늦기 전에 그 말을 해달라고 하죠. 그런데 상대가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화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오해였을까요? 아마도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내는 듯 보이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2절을 볼까요. '진이 너의 사진 속에/ 행복해 보이는 우리가 있고/ 진이 함께한 날보다/ 이별이 더 중요하지는 않아' 부분입니다. 이별이라는 사건이 벌어진 직후라 극구 이별을 부정하는 듯한 가사입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 시간이 간이 간이/ 지나가기 전에/ 내게 용기를 내어서 돌아와 줘/ 나의 맘이 맘이 맘이/ 변하기 전에/ I wanna be a Mr Lee' 부분입니다. 상대가 먼저 떠났고 멀지 않은 시점에 돌아와 주길 기대하고 있죠. 화자 입장에서도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을 돌릴 태세고요.

여기까지가 노래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렴구를 들어보니 '밤이면 너에 창에 불이 꺼지겠지/ 너의 꿈길로 날 만나러 와 줘/ 이제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어/ 처음 그 느낌처럼'이라는 가사가 더 있었네요. 랩 비스므레하게 들어간 가사인데, 본 가사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건너뛰었을 수도. 쩝


음. 오늘은 가사 중 '너 외엔 다른 사람 없다는 걸'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래간만에 공부가 필요한 썰 주제입니다. 바로 단독적(Singular) 혹은 단독성(Singularity)이라는 철학용어 때문이죠. 흔히 쓰이는 말로는 '대체 불가'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말로 특수성이 언급되는데요. 영어로 Particular입니다. 철학자 강신주 씨가 쓴 <철학, 삶을 만나다>라는 책을 보면 이 두 개념을 책으로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서점에서 책을 샀는데 책이 파본이 있어서 바꿔 준 책이 바로 특수한 책이고요. 파본이 있는 책은 동일하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거나 메모를 한 경우는 단독성이라고 하더군요. 이해가 되시나요?

사회학자인 안드레아스 레크비츠라는 분이 쓴 <과잉 히스테리의 사회, 단독성들의 사회>라는 책이 2003년 번역되어 국내에 나온 바 있는데요. 여기서도 단독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기점으로 보편의 시대가 지나고 단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류가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역시 일반/특수를 말하면서 고유한 단독성이라는 개념을 꺼내 들었죠. 단독성을 아주 쉬운 개념으로 바꾸보면 바로 '개성'입니다. 지금의 사회는 자신의 개성을 뽐내고 인정받으려는 투쟁의 현장이라는 건데요. SNS나 너튜브 혹은 브런치도 그런 현장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린 개성을 드높이기 위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과잉 스트레스라는 질병에 노출된 사람들인 셈이죠. 하하하.

최근 제가 읽고 있는 책이 <개인주의를 권하다 :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에게>입니다. 여기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집단이 주를 이룰 때는 개인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집단이 자리를 비우면서 관계의 끈이 헐거워지며 역사속에서 개인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게 됩니다. 그 사이 견고해진 사회 구조를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자 미니멀리즘 같은 극단의 자아 치유법이 생겨났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수궁이 되더군요.

다시 가사로 돌아가 봅니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개나 소나 대체불가의 상대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는 첫사랑을 비롯해서 이어지지 않는 많은 사랑들은 특수한 사랑에 불과합니다. 대체불가라고 생각했던 사랑과 헤어져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단독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니거든요. 결론적으로 당시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죠.

단독적인 사랑은 영화 소재 정도로 쓰이는 극소수의 커플에 적용해야 합당합니다. 세월에 떠밀려 살아오면서도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 말이죠.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특수한 사랑을 했나요? 아니면 대체불가 단독적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 보셨나요? 하하하.

예전에 제가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죠. 특수성만으로는 인생 전체를 담아내기 어렵다고요. 반드시 보편의 힘을 갖추어야 한다고요. 단독성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단독성의 출발 배경이 관계의 몰락과 개인주의의 출현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요. 결국 보편에 주목하게 됩니다.

어떤 내용의 너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펼치는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하트를 누르고 구독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존재하죠. 다시 말해 단독성이 스스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위에만 설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매력 있고 개성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요. 온 세상이 보편성만 추구해서도 안 되겠지만 단독성만 추구해도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상품은 단독성이 핵심이겠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은 보편을 회복하기 위한 단독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오늘 주제 너무 어렵다.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단독성의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을 때 죽음을 대입해 보라고 하네요. 책에서. 죽음은 1,2,3인칭이 있는데요. 1인칭은 나의 죽음으로 내가 죽으면 끝이라서 고통스럽지 않다고 하고요. 2인칭은 나에게 대체불가능한 사람의 죽음으로 가장 고통스럽다고 하네요. 이게 단독성 영역이고요. 3인칭은 뉴스에서 듣게 되는 죽음인데, 이것도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서 안타깝긴 하지만 고통이 2인칭 대비 크진 않다고 하죠. 요게 특수성 영역으로 이해했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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