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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의 <혜야>

작사 Alejandro sanz 작곡 Kenzie

by GAVAYA

안녕하세요?

<가사실종사건> 오늘의 주인공은 '종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suhznndfvKQ? si=-n-BHmF3 wcbyPa6 q

https://youtu.be/dvXfCCLAZMM? si=z3 yNwdIkWkTYeYlX

혜야, 나를 떠나려는 거야


안녕이란 그런 잔인한


인사뿐이었던 너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겠지


혜야, 제발... 가지 말아 혜야


가지 말아


혜야...


- 종현의 <혜야> 가사 중 -




종현은 2008년 데뷔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샤이니의 메인 보컬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첫 솔로 데뷔 음반을 발매했고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발라드 프로젝트 그룹 S.M.THE BALLAD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교내 밴드부에서 베이시스트를 맡았고 2005년 청소년 가요제에 나가면서 SM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장리인의 노래에 피처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근 3년의 연습기간을 거쳐 샤이니로 데뷔를 한 것이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2008년 발표한 샤이니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그의 솔로곡입니다. 이 노래는 스페인 가수 알렉한드로 산스의 'Y Si Fuera Ella'를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그리고 만약 그녀라면'이라는 뜻이라네요. Ella를 에야라고 발음하는데, 이를 혜야라는 제목으로 가져왔답니다. 손승연 씨가 복면가왕에서 멋지게 이 노래를 부른 걸 듣다가 원곡자를 찾다 보니 그가 나오더군요. 쩝

종현은 솔로곡을 내고 한참 콘서트로 바쁜 활동을 하던 2017년 겨울 연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안타깝죠. 콘서트가 끝난 지 8일 되었을 때였으니까요. 팬들도 충격이 엄청 컸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떠난 자는 말이 없지요. 2018년 겨울 마지막 앨범이 발매되기 했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혜야'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녀'라고 할 수 있죠. 찾아보니 스페인어에서는 la는 여성명사와 함께 사용된다고 적혀 있네요.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화자를 떠나 그녀를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혜야, 미안하단 말은 말야/ 언젠가 아주 먼 그때/ 마지막의 마지막에 하지 않을래/ 그래야 지금 이 아픈 시간도/ 훗날 좋은 추억이라 웃으며/ 말하고 있을 우리일 테니까 말이야'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미안해라는 말은 입에 담지 말자고 말합니다. 지금 미안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먼 훗날 이별 사건이 아픔으로 기억되어 있을 것을 우려해서죠.

'혜야, 너는 말했었지/ 그저 좋은 친구의 가슴으로/ 날 사랑하는 것이라 영원한 거라고/ 그런 말 다신 하지 마' 부분입니다. 아마도 떠나면서 그녀는 '우린 좋은 친구 사이였어, 그러니 헤어지더라도 우리 우정은 영원할 거야'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닌지 추정해 봅니다. 그러나 화자는 진심이었기에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습니다.

'네겐 너무 가벼운, 그러나 내겐 너무 무거운/ 이 마음이 너를 힘들게 했구나/ 조금은 물러설게 기다릴게/ 니가 편하도록 멀리 서 있을게/ 이리 애원하잖아' 부분입니다. 화자는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웠을까 두려워 멀리 떨어져 바라만 할 테니 떠나는 발걸음을 멈춰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한 마디로 멋집니다. '혜야, 어찌 떠나려는 거야/ 웃는 그 눈으로 안녕이란 잔인한 말은/ 나를 죽이고 숨이 멈춰/ 행복하게 해 주던 그 멜로디가/ 아직 너무 찬란하다/ 제발 버리지 마 버리지 마' 부분으로 시작하죠. 늘 하던 안녕이라는 인사가 Good-bye가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로 들립니다. 늘 웃음을 보이며 했던 그 말에 가시가 돋치고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죠. 화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여서 찬란한데 별이라는 믿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살고 싶지 않아 어찌하나/ 너 없는 날 어찌하나/ 아예 모른 채 살 것을/ 이렇게 미치도록 슬플 줄이야' 부분입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대목이죠. 이럴 줄 알면 만나지 말 걸이라는 푸념이 이어집니다.

'혜야, 어찌 떠나려는 거야/ 안녕이란 그런 잔인한 말로/ 떠나버리는 너를 원망하겠지/ Oh, 제발... 가지 말아 혜야' 부분입니다. 그래도 진짜 떠나겠냐고 다시 묻고 있습니다. 이렇게 떠나버리면 그녀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면서요. 가지 말아 달라는 그 말이 절절하게 다가오네요.


음. 오늘은 노래는 좋으나 딱 쓸 주제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트한 내용을 뒤적뒤적 해 봅니다. 최근에 시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적어놓은 구절이 보이네요.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소래섭 교수가 쓴 책이었는데요. 꽤 괜찮아서 이번 연휴에는 그 분 책을 찾아서 다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한 작가의 사상이 충분히 이해하는 데는 전작 읽기가 제격입니다. 소설을 거쳐 시로 글쓰기의 여정을 정한 저로서는 시와 친해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이 분이 쓴 글을 읽고 나서 조금 더 그의 책을 통해 대화가 하고 싶어 졌다고 할까요. 하하하.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그런 작가를 만날 때면 책 읽는 재미가 생깁니다. 책을 고르는 시간이 줄어드는 점도 그렇고요. 다음 책이 정해져 있으니 읽는 데에 집중하기 쉽죠. 며칠 전에 소개드렸던 시 한 자락도 그분의 책에서 알게 된 것이지요.

책을 읽다가 좋은 시나 글귀는 저장을 해 놓기도 하고 저장한 게 많아지면 찾기도 어려워서 직접 노트에 써 보기도 하는데요. 어떤 책은 노트에 적을 내용이 많아서 책 읽는 스피드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다른 책은 한 자도 안 적는 경우도 있고 그럽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으면 적는 것을 잊기도 하고요.

그렇게 적은 내용들을 책상 옆에 놓고 자주 뒤적거려 봅니다. 언제 써먹을까 하고 기회를 보고 있는 셈이죠. 주제가 딱 들어맞으면 금상첨화고요. 오늘처럼 특별히 쓸 내용이 없을 때 써먹기에 딱 좋죠. 저에겐 보물 창고 같다고 할까요. 그런데 내용을 상세히 안 적어서 나중에 보면 왜 적었는지 모르는 게 많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그중에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하는데요. '위태로움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문구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아마 중학교 남학생에게 이 문장을 설명한다면 '위기 속의 기회다'와 같은 상투적인 말이 난무할런지도 모르겠네요. '웃음이 극한이 되면 눈물이 된다'도 이 문장 아래 적어놓았습니다. 감이 잡히시나요?

저는 이 노래 가사 중에 '안녕이라는 잔인한 말로'라는 구절이 가장 눈에 들어옵니다. 이별 현장에서 쓰이는 안녕, 잘 있어와 같은 인사는 평상시 만나고 헤어지면서 하는 인사와는 차원이 다르죠. 사람의 안부를 묻는 말과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진 말이 '안녕'이라는 단어에 함께 존재한다는 게 좀 특이하긴 합니다.

아마도 화자는 그 부분을 짚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안녕이라는 짧은 말로 긴 우리의 만남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지며 말하던 안녕이라는 말을 그토록 매정하고 모질게 하는 상대의 모습에 치가 떨렸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에도 위태로움이 함께 스며있다는 말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아름다움과 위태로움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로 우리가 그 말을 어디에 쓰느냐의 문제로 인해 그 말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일 뿐 그 말은 그 자체는 중성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쓰는 상황이 그 말의 향방을 결정해 주는 것이죠.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아름다운 것은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100%의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지만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는 2%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00%를 채운다는 것은 아름다워지는 일이 아니라 위태로운 일에 더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요.

철학에서는 있다는 없다가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개념으로 봅니다. 위태로움과 아름다움도 그런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죠. 마치 위험부담이 크면 클수록 기대 수익이 높아지는 것처럼요. 거의 1% 이하의 확률로 무언가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에 투자한 위태로움이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일이겠죠.

이 노래에서는 안녕이라는 상대의 안부를 묻는 그토록 아름다운 말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정 떨어지는 말로 둔갑하며 화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죠.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좋은 것을 취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한 번쯤 상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별이라는 칼에 베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화자의 아우성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명곡이네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가사실종사건>에서 남자 솔로 파트가 가장 먼저 세 자릿수, 100곡을 달성했네요. 하하하. 가급적 고르게 담아보고자 노력했으나 매거진별로 아직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네요. 남은 400여 곡을 하면서 키높이를 맞춰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즐거운 연휴가 이어지네요. 저는 연휴 기간 동안 600이라는 숫자를 꼭 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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