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작사 노영심
안녕하세요?
<가사실종사건> 오늘의 주인공은 '노영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fbqdiH20 jBw? si=F-geAiAFVxktvfaN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깊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 주는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 노영심의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가사 중 -
노영심은 1989년 데뷔했습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이화여대 음악대학 피아노과를 재학 중에 가수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조금씩 알려졌죠. 그녀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대중의 눈에 띈 것은 가수 변진섭의 2집 <희망사항>이라는 노래를 작곡/작사하면서죠.
해학적인 가사로 인해 그 노래를 쓴 작사, 작곡가에게 눈이 갔었죠. 가수 변진섭과 결혼설, 남매설 등 각종 소문도 난무했었답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가 가수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이라는 곡입니다. 아시죠? 그만큼 순수하고 풋풋한 노래 만들기 노하우가 빛을 발했습니다.
그녀는 1992년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바로 여기에 실린 곡입니다. <그리움만 쌓이네>를 리메이크를 한 곡도 이 앨범에 있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나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3집부터는 주전공을 살려 피아노 연주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1990년대에 다양한 방송 활동도 했습니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4년 가까이 진행했고 영화나 시스템 등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작곡활동도 병행하면서 말이죠. 2022년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6화 엔딩에서 <엔딩노트>라는 곡을 부르기도 했고요. 2025년 <박보검의 칸타빌레> 1회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남자 어떠세요? 좋게 보면 세심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살짝 피곤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좋은 기억력을 다른 곳에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하하. 가사가 엄청 깁니다. 그래도 한 번은 읽어볼 가치가 있지 않나 싶네요. 하하하.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생일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부분입니다. 상대에게 바라는 기억의 최전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생일과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일이죠.
'내가 전화걸 때 처음에 여보세요 하는지 죄송합니다만 그러는지/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안에서 내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하는 남자' 부분입니다. 이 정도는 이상형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의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이 초승달인지 보름달인지/ 우리 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은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부분입니다. 인간 챗GPT를 꿈꾸고 있네요.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깊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 주는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부분입니다. 화자는 기억이라고 쓰고 이해와 관심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하네요. 쩝.
2절입니다. '내 새끼손가락엔 매니큐얼 칠했는지 봉숭아물을 들였는지/ 커피는 설탕 2스푼에 프림 한 갠지 설탕 한 개에 프림 둘인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겠지만/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준다면 어때요 매력 있지 않아요' 부분입니다. 이건 취향이고 기호를 말하는 듯하네요.
'어릴 적 동화 보물섬 해적선장 애꾸 잭은 안대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만화 주인공 영심이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고깃집에서 내가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바르고 고기를 얹는지/ 고기부터 얹고 쌈장을 바르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부분입니다. 이 정도면 뭐. 하하하.
'나도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기억이라고 쓰고 새로움이라고 읽어야 하나 봅니다.
'지난겨울에 내가 즐겨 끼던 장갑이 분홍색인지 초록색인지/ 그게 벙어리장갑인지 손가락장갑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던 날 어느 정류장에서 들리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인지 빈대떡 신산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 만난 날 내가 구두를 신었는지 아니면/ 운동화를 신었는지 그때 화장을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부분입니다. 거의 퀴즈 왕 수준이 되어야 할 듯요. 재밌죠?
음. 오늘은 '별 걸'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 며칠 제미나이 하고 노느냐고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유료 버전을 구독하고 이것저것 해 봤더랬습니다. 업무에도 적용해 보고 <가사실종사건>에서 제가 못 찾은 가수도 검색해 보고 회사 업무에도 적용해 보고 그랬습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구글 시트에 주식 실시간 전광판을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있는지도 몰랐던 함수를 쓰질 않나, 코딩을 해서 붙여넣질 않나 정말 컴퓨터공학과 학생이 되어서 과제를 하는 것처럼 열심히 되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아직도 적용해야 할 곳은 차고 넘칩니다. 좀 진이 빠지는 상황이랄까요. 하하하.
저는 제가 회사에서 제가 맡은 주 업무가 있지만 그것만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남들 안 하는 일들에 야금야금 손을 뻗쳐서 오히려 주 업무보다 부업무가 훨씬 많아지는 기현상도 겪었죠. 책도 나름 잡식성인데 일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문제는 저만의 지랄병이 하나가 있다는 점입니다. 뭘 보면 그냥 좋다, 그냥 그러네, 이건 아니다 이렇게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합니다. 하나에 꽂히면 왜 그렇게 되는 거지 하고 파고 파고 또 파고 그럽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도 많은 반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도 생기죠.
문과를 나오는 저는 사회 나와서는 이과로 밥을 먹고 삽니다. 일하면서 학생 때 덥었던 물리책, 화학책, 생명과학책 뭐 이런 류들을 힘들게 다시 공부하는 비극을 맛봤죠. 그런 공부를 할 때마다 이렇게 공부할 거면 차라리 그때 그 학문을 전공할 걸 그랬나 뭐 이런 생각도 하곤 했었답니다.
이런 삶을 살아온 제게 오늘 주에인 '별 걸'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이 저에게는 다른 의미도 다가오곤 하니까요.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것을 대하는 방식이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별 걸'이 저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고 믿는 1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철학과 인문학도 요즘 시대는 '별 걸'로 통하는 듯합니다. 우린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고, 어떻게 아름답게 죽는지 같은 문제를 머리 싸매고 생각하면 먹고살기도 바쁜데 '별 것'에 목숨을 건다 말하잖아요. 그런데 전 이상하게도 그 질문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더라고요.
<가사 실종 사건> 1000개를 쓰고 안 쓰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상당 기간 동안 많은 노래를 다뤄왔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그 1000개가 목숨과도 같죠. 하하하. 그게 밥 먹어야 주냐, 그 정도 의미가 있냐 뭐 이렇게 질문을 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 그 '별 걸'이 너와 나를 가르는 매우 중차대한 의미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요. 대충 보면 우린 다 같은 사람입니다. 외견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성별, 외모 정도가 다죠. 그에 반해 우리가 그리는 삶의 궤적은 사람의 머리수만큼입니다. '별 걸'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게 가능했을까요? 다 똑같은 엇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좀 있는 표현으로 이걸 우린 개별성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에서는 감수성이라고도 하고요. 특정한 무언가에 반응하는 각자의 모습 같은 거죠. '별 걸'에 누군가는 목숨을 던지고 누군가는 콧방귀를 뀝니다. 너무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개별성이, 감수성이 작동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하루 세끼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잠자리에 들고 뭐 이런 생리적 활동과 직장이나 학교 가고 집에 돌아오는 생계적인 활동은 다 대동소이하죠. 그런데 취향 영역으로 가면 그 격차가 말도 못 합니다. 음악과 담쌓은 사람도 있고요. 음악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죠. 음악과 담을 쌓은 사람 입장에서는 음악을 이 세상에서 날린다고 해도 '별 것도 아닌 일' 정도로 여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개개인의 '별 걸'은 무엇인가요? 저는 각자의 '별 걸'을 잘 발견하고 잘 키워나가는 것이 좋은 삶의 모습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괜한 데 목숨 건다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그런 것이잖아요.
아마 이 노래의 화자는 디테일한 기억력을 보유한 사람이 이상형이겠죠. 누가 보면 너무도 사랑해서 그런 것까지 기억하나 하겠지만 다른 누가 보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 기억력이면 서울대도 갔겠다며 폄하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잘 기억하는 것도 너무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아닌 적당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요? 하하하.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억력을 퇴화합니다. 이런 방식의 사랑을 하려면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데, 청춘들이나 가능한 버전인 걸까요? 두 사람이 너무 기억력이 좋은 커플도 그다지 끌리진 않네요. 기억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인 것 같습니다. 우린 기억력을 탓할 게 아니라 무성의함과 무관심 따위를 저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글을 쓰는 건 기억력을 늦추는데 아주 좋은 활동이죠. 기억보다는 기록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억은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도 잘 일어나죠. 우린 객관적 기억이 아니라 대부분 주관적 기억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좀 살만해지죠. 적당히 망각도 하고 왜곡도 하고 기억이 그렇게 불완전해야 인간스럽다고 할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