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현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
これで十分、이것으로 충분한
일본의 철학이 깃든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의 최대 규모 매장, 나라현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에 다녀왔다.
2025년 3월 1일, 무인양품이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세계 최대 규모(약 2,500평) 무인양품 매장을 오픈했다.
종전 최대 규모이던 니가타현 조에츠시(上越市)의 '무인양품 나오에츠'를 가뿐히 넘어선 면적이다.
스무 살 때 친한 대학 동기를 따라 무인양품 매장을 처음 방문했었다.
무인양품은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던 때에 일본을 이해시킨, 더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20대의 혼란스러운 고민에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대답을 선물해 준 곳이기도 하다.
약속 장소에 친구가 늦거나 주말에 마땅한 일정이 없을 때면 무인양품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적당히 사는 삶에 로망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소중한 불꽃을 지니기 위해 애를 쓴다.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짊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를 아는 일은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일 테다.
재일교포인 여자친구의 고향 히가시오사카에서 나라현 무인양품 이온몰까지는 차로 약 50분 남짓이다.
직접 운전까지 해주신 어머님의 수고에 감사의 마음이 크다.
1.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 전경
2. ReMUJI, 과거와 현재의 가장자리
3. 코스메틱, 이것으로 충분한
4. 식품, 최고의 맛은 그대로의 맛
5. 책, 무인양품의 목소리
6. 리빙, 일본을 살다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 전경
'무지 위크 (MUJI WEEK)'는 한 해에 두 번 열리는 10% 할인 행사다.
매장이 이렇게 거대한데도 전체적인 공간의 톤 앤 매너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든 스폿이 굉장히 섬세하게 구조화되어 있어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구도가 잘 잡힌 사진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섹션 분류가 브랜드 무드에 맞게 이루어진 점이 인상깊었다. 총 9개의 큰 섹션(붉은색)과 하위로 분류된 여러 섹션(남색)이 천장에 설치되어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ReMUJI, 과거와 현재의 가장자리
'ReMUJI'는 고객들이 사용하던 제품을 재수선해 판매한다. 대표적으로는 옷이지만 고가구와 식기를 포함한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을 취급한다.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가 전면에 내세운 섹션도 'ReMUJI'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장 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생활 박물관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옛것을 새로운 의미로 탄생시키는 일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동시대에서 말하는 새로움이란 없던 것의 탄생이 아닌 있던 것의 발견에 가깝다.
감동적인 과정이다.
밋밋한 색채의 브랜드로 인식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무인양품은 굉장히 강한 색채의 브랜드다. 결국 이것이 무지의 브랜드 철학이기도 하다.
색은 쉽게 시대를 타버리지만,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색은 긴 지속성을 가졌다. 그렇게 발견한 색깔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브랜드 가치에 녹여낸다.
한국의 무인양품과 일본 무인양품의 결정적인 차이는 '책'에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본 무인양품에서는 더 적극적인 자세로 고객들과 브랜드 철학에 대해 소통하며 그것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책을 활용한다.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의 역할을 넘어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코스메틱, 이것으로 충분한
한국의 무인양품은 필기구나 식품(오징어, 초콜릿 등)이 유명한데, 사실 정말 무인양품 오타쿠라면 코스메틱에 대한 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무인양품 코스메틱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202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미 일본에서 무인양품 코스메틱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출시 날짜에 맞춰 매장으로 찾아오곤 했다.
무인양품 코스메틱의 카피인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를 지닌 'これで十分’이다.
어떤 제품이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소비하며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 내 삶의 모토이지만 몸에 직접 닿는 제품들이라면 이 카피가 더욱 와닿는다.
더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성분으로 필요한 부위에만 쓰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식품, 최고의 맛은 그대로의 맛
무인양품의 음식이 좋은 이유는 맛에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인양품의 식품 BEST 3는 바움쿠헨, 카레, 초콜릿이다.
바움쿠헨은 독일의 로컬 케이크이지만 사실 독일에서 아주 알려지진 않았다.
1차 세계대전 때 일본으로 유입된 후 지금에 이르러 일본의 대중적인 빵이 되었다. 초콜릿을 입히거나 다양한 향을 첨가하는 등 배리에이션이 매우 간편한 빵이고 일본에서는 주로 '바우무'라고 줄여 부른다.
한국 무인양품에도 여러 종류의 바움쿠헨이 수입되어 있다. 분주한 아침에는 바움쿠헨 하나로도 든든하다.
일본은 과거 서양인들이 먹는 음식을 '하이칼라(ハイカラ)'라고 불렀다.
메이지 시대에 본격적으로 서양 요리가 들어온 후 이른바 '화양식(和洋食)'이 생겼다. '화'는 일본을 뜻하고 '양식'은 서양 음식을 뜻한다. 따라서 화양식이란 일본식으로 바꾼 서양의 음식들이다.
대표적으로는 나폴리탄, 크로켓 등이 있는데 특히 일본식 카레는 그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자랑하는 화양식이다. 지역별로 다른 카레 문화가 있을 정도이니 현지화가 매우 잘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무인양품에서는 역시 '버터 치킨 카레'가 유명하다.
아쉬운 점은 한국 무인양품에 난 파우더를 팔지 않는다는 건데 퀄리티가 매우 좋아서 일본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난 파우더를 꼭 사 오는 것을 추천한다.
무인양품의 대표적인 간식인 초콜릿 코팅이 된 건딸기.
매장에서 일했을 때도 가끔 퇴근하면서 사 먹은 기억이 난다. 건조된 딸기가 초콜릿으로 코팅되어 있다.
무인양품 음료들은 퀄리티가 매우 높다.
퀄리티가 높다는 말이, 대단히 좋은 재료를 쓰거나 좋은 맛이 나서라기보다는 그 본연의 맛에 충실한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실 것은 먹고 나서 깔끔해야 한다고 믿는 내 생각을 정확히 조준한다.
'소금 초콜릿 스틱 파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인데, 무인양품을 가는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는 제품이다.
한국에서도 판매하고 있으며 아는 사람만 아는 무인양품의 수작이다. 최근 단짠 유행에 왜 이 제품은 소리 소문이 없었을까. 덕분에 많이 사 먹을 수 있긴 했다.
무인양품에서는 자체 제작 물품에 더해 그 지역의 특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무지는 로컬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 특성은 무인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본 브랜드가 추구한다.개인적으로 무인양품 냉동식품을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은데, 비행기로 가져오기가 어려우니 아쉽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무인양품 고양점 등 큰 매장에 가끔 찾아볼 수 있다.
도시락과 마실 것 등 먹거리를 카페에서 판매한다.
대부분 무인양품 자체 상품이나 특산물을 활용했으며 현지의 향기를 느껴보기에 꽤 좋은 선택이다.
책, 무인양품의 목소리
무인양품은 자체적으로 제작해 브랜드의 철학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들도 여럿이다. 제품 하나하나 어떤 소신을 담아 만들었는지 소개하는 제품 백과사전 형식의 책도 있다. 나 역시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으나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흔치는 않다.
이번 방문에서 무인양품의 책 두 권을 샀다.
리빙, 일본을 살다
일본 무인양품에는 커튼이 있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어떤 커튼을 살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 제품들 중에 고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들고 갈 여력이 되지 않아 눈으로만 즐기고 왔다.
가구가 배치된 모습이 꼭 이케아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 무인양품에서 가구를 구입하려면 배송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은 박스 채로 구입되는 점이 편리했다.
필기구의 디스플레이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색상이 잘 보이게끔 원형 통에 잘 정리된 모습이다.
무인양품 매장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의류들이 MUJI regular라면, ReMUJI는 재활용된 의류, MUJI Labo는 디자이너 마가렛 호웰이 도맡아온 무인양품의 특성이 돋보이는 의류다.
연구소를 뜻하는 Laboratory에서 따와 Labo가 되었다. 실용적 디테일이 특징이며 무인양품의 철학인 최소화의 원칙을 따른다.
떠나며
최근 몇 개월 동안 어려운 일이 많았다.
아무쪼록 그런 시간들을 정리하는 시기에 오게 된 일본이었다. 여기저기 좋다는 명소들도 가보았지만 무인양품 이온몰 가시하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으로 돌아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내가 무인양품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