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을 가장 많이 보는자를 위해 오늘도 립스틱 짙게 바르고오~~
마스크때문에 너무 다 똑같아 보여서
눈에라도 힘을 팍 줄라고요. 푸하하하하
어느 오전 시간,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문밖 세면대에서 익숙한 목소리에 여인이 혼자 빵터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팀 나보다 열살가량 많은 홍선임은 목소리에 특유의 씩씩함과 호방함이 느껴져 눈감고도 알아 볼 수 있다. 화장실에서 나와 세면대로 다가가니 마스크를 쓴 채로 아이섀도우를 빡시게 바르며 옆사람과 얘기중인 홍선임이 보였다. 살구색에 펄이 섞인 섀도가 썩 잘어울렸기에, 나는 ‘정말 잘어울린다’ 칭찬을 건냈다.
마스크 핑계로 립스틱도 안바르고 다니는 세상에 빡시게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 했던 다른 여직원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그녀 역시 마스크 쓴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칭찬섞인 감탄을 남겼다.
“대단하다. 나는 선크림도 안바르고 나오는데, 선임님 대단해”
작년 일년을 돌이켜 보면 마스크를 핑계로 ‘멋’과는 거리가 먼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어느샌가 신체 일부가 되어버린 마스크 덕에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질끈묶고 미용실은 커녕 옷도 아무 고민없이 걸치는대로 입고다닌 무채색의 나날들이었다. 이런 와중에 마스크때문에 가려진 매력을 분출하기 위해 빡센 눈화장을 한다는 선임님의 철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같은 환경에서도 사람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그 언니가 멋지고 근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연말 본가에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데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엄마의 안색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있을때에는 마스크 안쓰고 건조하니 립밤이나 비비크림 정도는 바르고 산뜻하게 있자며 싫지않은 잔소리를 건냈다. 엄마의 하루하루가 좀더 화사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싫고 다 귀찮다는 거였다. 어차피 나갈일도 없고 사람들도 못만나는데 화장을 해서 무엇하냐는 말. 평범한 대답 아래 엄마의 푹 꺼진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 가슴이 묵직해졌다. 몇달에 한번씩 보던 친구들도 안본지 일년이 넘었을텐데..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그냥 알것 같아서 서둘러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화장실에서 섀도우를 바르던 홍선임을 만난 이후로 그 이야기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열어 여러번 지나쳤던 립스틱 광고를 찾아내어 가장 맘에들고 기분이 좋아질것 같은 색깔들을 골라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엄마에게 드리며 이렇게 말해야겠다.
보는사람 없는게 뭣이 중요해.
내가 맨날 보는 내얼굴
코로나고 나발이고 하루하루 이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