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독자의 코로나극복기
쾌적하고도 추운듯한 공기, 고급진 특유의 향이 “내가 바로 호텔이다” 외치는것 같은 로비를 느긋하게 가로질러 호텔 문을 나선다. 강렬한 태양의 직사광선이 여기가 서울이 아님을 격하게 알려준다. 선크림을 충분히 발라 놓은 덕에 주저없이 고개를 젖혀 눈부신 햇빛을 정면으로 응시해본다. 숨길 수 없는 관광객 모드로 주변을 둘러보며 하늘색은 어떨까? 나무 모양도 신기하게 다르네? 내가 사는곳과 다른 이국의 정취를 온몸으로 흡수시킨다. 전날 밤 방콕에 도착해 맞았던 첫 아침의 기억은 이따금씩 나를 방콕의 작렬하는 태양아래로 데려다 놓는다.
일본 3대 야경이라는 뷰 포인트를 빡세게 돌아보고 귀가한 온천 숙소에서 노천탕을 할까 그냥 잘까 한 열번쯤 망설이다가 옥상 노천탕을 향했다. 연말 성수기라 사람이 많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정말 아무도 없었던 하코다테의 옥상 노천탕에서 나홀로 여유롭게 탕에 몸을 담궈본다. 어깨위까지 딱딱하게 뭉쳐있던 여행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밤하늘에 별자리도 가늠해본다. 몸은 노곤하지만 정신은 명료하게 또렷했던 그 밤, 요즘 요가수업을 들을 때면 시작과 끝에 하는 명상에 항상 떠오르는 순간이다.
엄마 아빠를 모시고 떠났던 괌 여행의 마지막날 만찬은 부모님이 꼽는 해외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그 만찬의 메뉴는 괌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남태평양 생참치도 거금을 들여 예약했던 선셋 스테이크도 아니었다. 현지 식사가 부모님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을 대비해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햇반과 김치, 컵밥을 모두 꺼내 짐을 줄일 요량으로 해변에서 먹어 치웠더랬는데 그 순간이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괌 여행의 best part라니. 여행하면서 잃어버린 입맛을 단박에 살려준 한국인의 힘 컵라면과 김치는 우리가족의 단골 토크 소재로 등극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평안에 모든 집중을 하며 살고있는 요즘,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난 여행들의 샘플이 없었다면 어떤 기억들로 지금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혼자 걸을때나, 운동 전후 머리가 맑아질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난 여행의 장면들은 결코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고대했던, 공들였던 순간들은 의외로 기억에서 잘 잊혀진다. 외려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들 위주로 선택되어 다시 재생되고, 어느덧 그리움이 된다.
지금 겪는 일상 속 평범한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환하고 싶은 귀한 순간들이 되겠지. 그런 순간들이 더 많아지도록 오늘도 내일도 무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