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파괴 사회

강요적 파괴에서 주체적 혁신으로

by 가우

기업의 자기부정


세상은 갈수록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디지털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기업과 오프라인 기업의 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소위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주가는 날로 치솟고 있고, 그들의 플랫폼에 편입되거나 그들의 생태계를 이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업들에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화두입니다. 모든 트랜스포메이션에는 ‘자기 파괴’가 수반됩니다. 온라인 기업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기업혁신의 교과서로 거론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에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선두기업 자리에 오르게 해 준 경영 관행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시장을 빼앗아갈 파괴적 기술 개발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혁신에 자주 실패하고 만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업들이 주류시장의 리더가 되게 해주는 경영 관행 때문에 그들이 파괴적 기술에 의해서 제공된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공한 기업이라도 파괴적 기술의 가능성 때문에 항상 마음을 졸여야 하고 한때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라고 불리었던 기술과 경영방식에 대해서 항상 회의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자기 파괴적이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기업의 샐러리맨들은 끊임없이 자기부정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샐러리맨의 자기부정

온라인 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경제 성장률은 낮아지거나 역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저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국가부채를 정당화하는 MMT(현대화폐이론)라는 이론까지 나왔습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했듯이 저성장 시대가 지속되면 개인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저금리 속에 사람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서 자산 시장에 진입했고 경제의 펀더멘탈은 자산 시장의 거품을 지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본업보다는 주식, 부동산 시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회사에서 부동산 갭 투자, 비트코인, 주식투자를 스터디하는 동아리를 만듭니다. 서점가에 가보면 그 어느 때보다 재테크 관련 책과 퇴사에 관란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승진하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파괴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샐러리맨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샐러리맨들은 회사 안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자기 파괴를 요구받습니다.


기업의 딜레마

과거의 혁신 방식은 상명하복식 자기 파괴였습니다. ‘마누라 하고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 던 이건희 회장의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연설처럼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과거와 같은 상명하복의 전략 전달은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민주화된 사회분위기와 지식으로 무장된 개인들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저의 첫 직장은 모바일 시대에 변화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변화와 파괴를 요구하자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포메이션 실패와 해외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전가, 과거 사업에 대한 내사 그리고 직원 간의 불신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회사에게 좋은 전략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내분이 일어난 기업에서 내부 혁신, 자기 변화, 전략, 트랜스포메이션 같은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의 많은 경영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사 전략을 수립해도 현장에서 수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도 ‘수행되지 않은 명령은 명령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하라고 해도 창조적 파괴를 하라고 해도 자발적이지 않는 한 영혼 없는 반응일 뿐입니다. 섣불리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가 조직이 와해될까 두렵습니다. 세상이 변했고 사람이 변했습니다.

신사업 사업 심의를 하면 웃지 못할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업에 대한 질문을 하면 직급이 높을수록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낮은 직급의 실무자들이 겨우 답변을 합니다. 위에서 하라고 해서 하기는 하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실행하지 못하는 사업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입니다.


샐러리맨의 딜레마

자기 파괴적인 회사를 다니는 샐러리맨은 자기 파괴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피땀 흘리면서 쌓아 온 것을 하루아침에 다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의 나는 무엇이었나?’, ‘끊임없이 나를 버리고 파괴하고 착취한 후에 나에게 남는 것은 뭐가 남았나?’라는 자괴감이 듭니다. 재테크에 신경 쓰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돌아보거나 현재의 나를 지키고자 하는 사소한 방심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안도했다가는 바로 나락입니다. 내가 누군지 돌아보고 돈의 횡포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하는 이는 경제적 생명을 포기해야 합니다. 서점가의 수많은 자기 계발서는 재테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와 혁신에 관심이 있을까요?

정부는 대마를 죽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시합니다. 부패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등 막대한 재정지출과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통해 돈이라는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한없이 쌀 찌우려 합니다. 절대 자연순화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재테크에 대한 유혹을 증폭시킵니다.

자기 일에 근면하게 성실하게 일한 사람은 도태됩니다. 근무 시간에 주식 사이트 보고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부동산 보러 다니며 은행에서 대부분의 투자금을 대출받아서 투자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수성가했다고 말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책을 냅니다. 이런 이들을 바라보는 샐러리맨의 딜레마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문화와 인문적 경영전략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변화의 방향성은 본인이 정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강요하는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회사 안팎에서 자기 파괴를 강요당하고 있는 개인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추구하면서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회사의 건강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CEO의 C가 Culture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문화를 바꿈으로써 기업을 변화시킨 인물입니다. 각각의 고유한 생각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문화입니다. 개인의 성향이 밤하늘의 별처럼 다양하듯 개인에게 열려있는 기업은 문화를 통한 해결책도 셀 수 없이 다양할 것입니다. 그것이 온라인화의 방법일 수도 있고 의외로 전통적인 생존 방식일 수도 있고 기존 사업을 새롭게 변신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화가 없는 회사는 앞서 말한 내 첫회사의 운명을 걸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문화를 가진 조직은 직접적으로 강압적으로 변화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변화하도록 넛지(Nudge)합니다. 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의 문화가 아니라 자기 긍정의 문화를 제시합니다. 회사의 변화 방향을 세팅해놓고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고과를 잘 주겠다는 접근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직도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이런 접근방식을 취합니다

열려있는 기업문화만이 기업도 개인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성공하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 스타일이 2020년 한국에서도 통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되고 탈중심화되고 있는 현재 시대에는 ‘사티아 나델라’와 같은 리더십이 더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두에서 언급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실리콘 밸리 스타 CEO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블루오션 전략’의 저자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e)’은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을 활용한 경영전략보다는 경쟁과 상관없이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는 블루오션을 창출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경쟁자에게 신경 쓰지 말고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창출하라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우화를 들면서 ‘경쟁자가 설정한 조건 아래서 싸우지 마라’고 조언합니다. 자기 파괴적 기술을 가진 상대와 그들의 룰에 따라 사업을 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자신의 장점을 무시하고 타인의 장점만 쫓아가는 자존감 없는 회사가 실패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수많은 경영전략서 중에 저는 블루오션 전략을 가장 좋아합니다. 자존감 있는 기업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구성원에게 인간성(Humaness)을 통한 자신감을 주는 것을 중시하는 인문학적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루오션 전략은 개인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블루오션 전략은 타인의 행동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에 미쳐있습니다. 부동산은 파괴적 자산증식 수단입니다. 자신의 투자가 타인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에 미쳐있을 때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사람이 있을까요?


내 방식으로 성공하기

'토드 로즈’가 쓴 <다크호스>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만의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자기를 버리지 않았고 충족감을 느끼면서 성공했습니다.


다크호스 프로젝트에서 만난 다른 대가들이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들이 우수성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로 충족감을 얻게 됐다는 점이 아니다. 충족감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로 우수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다크호스, 토드 로즈


다크호스들은 어떤 일이 우수해짐으로써 충족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에 깊이 몰입하면서 충족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개인화된 성공이란 ‘충족감’과 ‘우수성’을 모두 누리는 삶인 것 같습니다. 행복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영어 ‘happy’는 사건이나 상황을 뜻하는 ‘hap’의 형용사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happy’는 그 어원상 ‘특정 사건에 잘 맞는 것’을 뜻하겠지요. 데이비드 흄도 새로운 지식에 잘 맞는 이론이라는 의미로 ‘happy theory’라는 문구를 쓴 바 있고 우리가 기억할 만한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기질에 잘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데이비드 흄


강요적 파괴에서 주체적 혁신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시대에 '기업과 개인이 자신을 지키면서 성공하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이 글을 구상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저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기업마다 개인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기 때문이죠. 다만, 한국의 기업과 개인이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전략의 하수 중에 하수라고 불리는 벤치마킹이 가장 많이 애용됩니다. 상대방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지요. ‘이대로 좋은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나를 지키면서 성공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 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체적인 작은 성공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최근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정부는 일단 살고 보자는 경제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임기응변식의 경제 정책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중 가장 두려운 것은 ‘혁신의 부재’ 일 것입니다. 기업은 정부가 살려주겠지라는 믿음으로 방만한 경영을 하고 개인들은 경제를 죽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겠지라는 믿음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갑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일본이 25년을 잃어버린 것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아니라 혁신하고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분위기가 점차 만연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변화와 혁신은커녕 아예 변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나마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는 것은 벤처기업 투자심의를 할 때입니다. 과거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었고 성공 확률도 줄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투자가들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해내는 벤처기업을 보면 대한민국이 아주 비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부동산 시장 대신 '자기를 닮은'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벤처시장으로 몰려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