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안합니다

샐러리맨의 불안과 위안

by 가우

고삼 때 담임선생님께서 입시에 불안해하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나이 때 삶이 불안한 것은 당연해. 나이가 들면 불안감은 사라지고 편안해질 거야.”
당시 선생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저는 지금도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이와 불안은 무관합니다. 우리는 항상 불안합니다.


불안 1. 인정


샐러리맨은 누구나 승진을 원합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승진에 목숨을 걸까요? 심리학적으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는 이유는 지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첫 번째 의미는 이성에 대한 일차적이고 육체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자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름다운 여성과 섹스를 하기 위함이라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은 이것을 조금 더 지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내가 가진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는 것이라는 '이기적 유전자설'을 주장합니다.


사랑의 두 번째 의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줌으로써 세상이 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왕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승진해서 더 높은 지위를 오르려 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못지않게 넓은 의미의 사랑을 욕망하는 우리의 본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으로 부모형제, 아내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밖으로 친구, 선후배 그리고 직장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회사 핵심 부서의 직원들은 업무량이 많습니다. 요즘 ‘워라벨’이나 ‘나인 투 식스’ 등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중요 부서 선호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을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들이 동일한 직급의 직원보다 연봉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승진을 빨리 한다고 하지만 샐러리맨의 연봉이란 것이 삶의 질을 바꿀 만큼 큰 차이가 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업무량을 버텨내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혹은 남이 생각하는 업무의 중요성과 회사의 인정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을 갈망하는 것은 단순히 승진하지 못하면 직장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바라는 그저 나약한 인간이고, 언제든지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사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불안 2. 직급

샐러리맨은 입사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속물들을 만납니다. 회사의 가장 대표적인 속물은 아마도 회사의 직급을 이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직위로 누르려고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직급이 깡패!’, ‘까라면 까!’ 조직 생활하면서 숱하게 들어본 말입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교육을 해도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직도 존재합니다. 권위를 통해서 인정 욕구를 총족시키는 사랑 결핍의 왜곡된 형태입니다.


회사의 직급체계는 효율적 업무수행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지만 직급체계의 일원이 되는 순간 우리는 예속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서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부장님들은 ‘나쁜 놈’ 이거나 ‘이상한 놈’입니다. ‘좋은 놈’은 없습니다. SNS에서 펼쳐지는 나보다 직급이 높아서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의 포스팅은 우리의 속물근성을 자극합니다. 속물근성이 자극될수록 우리의 좌절과 불안은 더 커집니다.


불안 3. 피할 수 없는 비교

샐러리맨은 준거집단에 의해서 불안감을 느낄 확률이 높은 집단입니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샐러리맨이 준거집단에 의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부동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부동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부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준거집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회사 내에 부동산 스터디 동아리가 생기고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갭 투자 열풍이 불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샐러리맨의 소득과 재산 수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평균적으로 샐러리맨은 우리 회사의 중산층을 형성합니다. 절대적인 부의 수준을 놓고 보면 불안할 이유가 없지만 불행하게도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비참한 사람은 많지만 그들을 본다고 해서 나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준거집단에서 비교 못지않게 세대 간 비교에서 오는 불안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풍족한 부모 밑에서 누렸던 생활수준과 현재 자신의 생활수준의 비교에서 오는 젊은 사원들의 박탈감과 불안감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불안 4. 능력주의의 역설

회사는 그 존재의 특성상 ‘능력주의’가 지배할 수밖에 없는 조직입니다. 회사마다 소위 ‘라인’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인재를 활용하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의 속성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높은 직급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고, 과거의 승진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낮아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렸지만 역설적으로 성공의 사다리에 못 오른 사람들의 불안감 그리고 사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다리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욱더 커졌습니다.


과거에는 회사들이 ‘연공서열’에 의해서 승진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위 ‘초고속 승진’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습니다. 때가 되면 승진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공서열제도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승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 혹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과거의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생고용, 연공서열 시스템에서 조직은 비효율적이었겠지만 구성원은 덜 불안했을 것입니다. ‘불안한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효율적일까?’에 대한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 4. 불확실성의 확실성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전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아 왔습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온갖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긴 시간 동안 갈고닦은 지식과 재능을 회사에서 써먹으면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우리의 재능이 변덕쟁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보유한 재능을 10년 뒤에 회사가 원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설사 회사가 원하더라도 내가 예전처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내가 예전처럼 그 능력을 발휘했더라도 승진하는 것은 다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은 ‘운’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출생부터가 운입니다. 우리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에 '기투'됩니다. 그 누구도 운명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해마다. 인사철이 다가오고 인사 결과가 발표되면 우리는 매번 운칠기삼을 실감하게 됩니다. 승진할 연차가 되었을 때 나와 맞는 상사가 나를 평가해야 하고 내 조직의 승진 TO가 있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승진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로 자신의 운을 정당화하는 동료를 보면 우리의 불안감은 더욱더 커집니다.


위안 1. 사람은 지위와 상관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


SNS를 보면 살벌한 댓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고소고발이 일어나고 심하면 댓글에 상처를 받고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이 ‘결투’였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1차 세계대전 무렵 결투 문화가 없어질 때까지 유럽인 수십만이 결투로 목숨을 잃었고, 스페인에서 한 해에 5,000명이 결투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는 나'가 '내가 보는 나'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서점가에서 자존감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갈수록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존경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도 직원들 잘 부려서 혹은 정치를 잘해서 초고속 승진한 임원이 아니고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회사는 종종 이런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논리로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회사에서 지위와 상관없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철학자 중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가장 유사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 지적인 염세주의를 주장한 쇼펜하우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소품과 단편집>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도 지적인 염세주의에 빠지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은 외로움과 천박함 간 선택의 문제이고 젊은이들은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염세주의 철학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려면 우리 지위를 지키려는 미숙한 노력을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 우리는 논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가치를 느껴야 하는데 사실 이때 느끼는 만족감이 근거가 더 탄탄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논조는 샐러리맨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조직은 깨끗하지도 않고 머리가 좋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샐러리맨들은 이런 조직을 통해서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야 희박하지만 승진의 가능성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이 글의 주제인 불안의 요인은 더욱 커집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외로움과 천박함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외로움을 선택하겠습니다.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혹은 지키려는 미숙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받는 월급 이상의 가치를 회사에 제공한다면 저의 위치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일도 자랑스러워할 일도 없습니다. 다만, 저의 전문성에 대한 긍지는 온전히 제 것이 될 것입니다.


위안 2. 예술을 통한 위안

샐러리맨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샐러리맨을 그린 예술작품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문단을 강타한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소설입니다. 9년 만에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여성문제에 대하여 잘 쓰인 훌륭한 논문이 몇 명에게 읽힐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예술작품은 사회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부당한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훌륭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장강명의 『산 자들』이라는 소설의 1부 ‘자르기’에는 위기에 몰린 샐러리맨들의 이야기 세 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을 잘라야 하는 관리자, 대기 발령을 받은 직원들, 쌍용자동차를 모티브로 한 듯한 공장에서의 파업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 이런 샐러리맨들에 대한 비극적인 소설을 읽으면 같은 샐러리맨으로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나는 괜찮지….’

‘나도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어.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인정하기 싫지만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비극의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합니다.

'그 사람 잘못만은 아니야 저들도 나와 같이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약자와 실패자에 대한 공감은 나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감소시켜줍니다.


회사도 실패에 대한 관점을 달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영학에서 인사평가를 이야기할 때 흔히 '신상필벌'이 명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극의 공감 기능’을 받아들인다면 실패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사업도 한 번의 시도에서 성공하는 예는 드뭅니다. 특히 신사업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는 것은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할 확률은 줄어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위안 3. 회사에서 유머감각은 필수

유머는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도구 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회사에서 워크숍을 가면 ‘야자타임’이라는 것을 합니다. 구성원들의 지위에 따른 불만과 불안을 희극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놀이입니다. 상사에 대한 도발의 수위가 높을수록 워크숍의 분위기는 더 좋아집니다. 회사 입장에서 아주 효율적인 놀이입니다. 조직 내 불안은 불만으로 그리고 불만은 불안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위해서 회사에서 해야 하는 몇 안 되는 ‘놀이’입니다.


회사에서 끊이지 않는 것이 상사에 대한 ‘뒷담화’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도 뒷담화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은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직원들의 비평 행위입니다.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뒷담화도 훌륭한 예술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 뒷담화는 장려되어야 합니다.


위안 4. 지위는 변한다

스파르타 시대에는 근육질의 남성의 지위가 이상적이었고, 중세시대에는 성직자가 이상적인 지위였고, 아마존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여자가 이상적인 지위였고, 현대에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이상적인 지위입니다. 이처럼 이상적인 지위는 계속 변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처한 위치에 따라 혹은 누가 사장이 되느냐에 따라 필요한 인재가 달라집니다. 현재 회사에서 보잘것없는 미운 오리 새끼가 미래에 백조가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엄청난 실력을 보유한 사람이 회사에서 다양한 이유로 승진을 못하다가 때를 만나 승진 가도를 달리는 경우도 볼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위의 역전현상은 회사에서 흔하게 일어납니다. 승진하는 사람이나 승진하지 못한 사람이나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회사에서 우리의 자세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해야 할 것입니다.


지위 자체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지위의 절대적 가치가 사라져 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를 원하지 않는 샐러리맨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지위가 가장 좋은 지위라는 인식입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입니다. 따라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매겨지는 나의 가치는 지배자가 생각하는 가치이지 진정한 나의 가치가 아닙니다.


위안 5.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죽음이 삶에 주는 의미는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불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의 첫 직장은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였습니다. 수많은 백만장자를 배출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에 대한 기사가 신문을 도배했습니다. 친구들도 저와 같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회사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영원히 번창할 것 같던 회사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바일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에 피합병 되고 말았습니다.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이들은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첫사랑 같았던 첫회사의 죽음과 폐허를 보았습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듯이 영원한 회사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회사에 다닌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의 허무함. 회사와 샐러리맨은 무자비한 자본주의가 휘두르는 파괴와 힘의 장난감뿐 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는 역설을 겪게 됩니다. 회사의 일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보다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에 대한 인식도 변합니다.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됩니다. 비관주의적 삶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신건강 측면에서 더 좋다는 심리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삶의 기대감을 낮춘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삶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을 회사에서 영원하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는 샐러리맨들이 지위에 목메어 일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일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 ‘Memento Mori’가 주는 교훈입니다.


불안을 가지고 놀자

살아 있는 한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존재입니다. 지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회사라는 조직의 특성상 승자는 소수이고 대다수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 글은 회사에서 저의 지위를 직급 이외의 다양한 가치에서 찾겠다는 저의 다짐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 중에 하나가 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한 산업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보험, 상조, 사교육, 보안 등 사람의 불안함을 이용한 사업은 안정적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나약함마저 포식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존재의 힘이 강해야 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존재의 힘이 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안을 떨쳐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불안장애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가지고 놀 수는 있습니다.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과 불안을 가지고 노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를 알고, 불안의 이유가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불안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불안을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을 때 우리는 불안을 가지고 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안은 그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을 가지고 놀면서 회사에서 주어진 작은 자유를 마음껏 즐기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