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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Oct 29. 2020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까?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스마트폰


21세기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스마트폰이라는 신기기와 스마트폰 생태계라는 신문명을 선사했습니다.


제가 인터넷 회사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회사의 큰 미션 중 하나가 통신사 포털로 진입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신사는 포털업체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포털로 진입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통신사의 횡포에 억울해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은 이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었습니다.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라면 얼마든지 모바일 생태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통신사들이 가장 긴장했죠. 그리고 또 삼성이나 노키아 같은 핸드폰 제조업체들이 긴장했습니다. 삼성전자 ‘권오현’ 사장이 쓴 <초격차>라는 책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초대를 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초대받는지도 모르고 갔다가 아이폰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폰이 전 산업분야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습니다.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겪었고 반대로 그 시류에 편승한 기업들은 잘 나가고 있습니다.


혁신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처음 애플 컴퓨터를 만든 이야기, 애플에서 쫓겨난 후 픽사를 성공시킨 이야기, 위기에 처한 애플에 돌아와서 회생시킨 이야기, 그리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 등이 그를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혁신 방법은 한동안 혁신의 교과서처럼 회자되었고 많은 경영자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스티비 잡스의 혁신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파괴적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다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잡스의 사업 원칙 중 하나는 결코 자기 잠식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잘 나갈 때에도 혁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먹을 겁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아이폰이 아이팟의 매출을 잠식하고, 아이패드가 맥북의 매출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잡스가 계획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파괴적 혁신을 지금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를 노트북으로 포지셔닝해서 맥북의 매출을 '적극적으로' 잠식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저는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삶과 경영에 관한 그의 인문학적 접근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경영철학에 인문학적 배경이 진하게 깔려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전 세계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도 했었죠.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 때 전자 공학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자아와, 문학과 창작에 몰두하는 자아의 교차점에 선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제품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간단한 슬라이드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슬라이드에 담긴 것은 ‘인문학'이라는 거리와 '과학기술'이라는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를 표시한 도로 표지판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글도 스티브 잡스와 그의 인문학적 삶과 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거대한 인문학적 스토리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인문학은 무엇이었을까요?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


캘리그래피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이 강한 LAC(Liberal Art College)인 리드 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학교는 중퇴를 했지만 캘리그래피 수업을 청강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캘리그래피 수강은 잡스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캘리그래피를 공부한 것이 나중에 애플컴퓨터의 폰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테크 회사의 CEO가 될 그가 문자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일단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인문학도들의 기본적인 관심사가 문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닙니다. 문자와 언어는 인문 학도들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도구들이니까요. 원시 한자의 글월 문(文) 자는 무늬를 뜻한다고 합니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文)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래피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그의 인문학적 씨앗이 그때부터 싹트고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 옆으로 빠지는 이야기입니다만,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자에 관심이 많아서 외국어를 좋아하고, 폰트나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선의 옛 선비들이 서예에 빠졌던 것처럼 말이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를 연출한 ‘웨스 앤더슨’ 감독은 futural 폰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futural 폰트는 가구를 만드는 '이케아'가 애용했던 폰트이기도 합니다. '이케아'가 폰트를 바꾸자 저항 운동이 생기기도 했다고 하지요. 폰트 하면 또 떠오르는 분은 ‘신영복’ 선생님입니다. 감옥에서 서예를 가르치시다가 ‘신영복체’를 만드셨지요. ‘처음처럼’이라는 소주에 쓰여있는 글씨체가 ‘신영복체’입니다. 인문학을 특히 동양 고전을 사랑하셨던, 소주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분입니다.


히피, 마약 그리고 이데아


스티브 잡스는 모두 알다시피 히피였습니다. 대학교 때 캠퍼스에서 뿐 아니라 회사 사무실에서도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채식을 하기 때문에 샤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씻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었겠지요. 히피 문화의 상징인 ‘비틀스’와 ‘밥 딜런’을 좋아했습니다. 후일 매킨토시 팀에게 제시했던 ‘타협하지 마라’, ‘해군이 되느니 해적이 되는 것이 낫다’등의 금언은 그의 히피로서 저항 기질을 보여주는 일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히피가 그랬듯이 마약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15살부터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해서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피웠다고 합니다. ‘람 다스’가 쓴 <지금 이곳에 존재하라>라는 환각제의 경이와 명상에 대한 안내서를 탐독했고  LSD 예찬론자였습니다. 그는 LSD를 하면서 사물의 현상이 아니라 본질(이데아)을 보려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플라톤 이래 이어져온 서구 철학의 영향, 즉 ‘형이상학’과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약을 하면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고 믿는다는 것이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선불교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 때 도서관을 다니며 '선'에 관한 책들을 파고들었습니다.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사>, ‘파라 마한사 요가난다’의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리처드 모리스 벅’의 <우주의식>, ‘초감 트롱파’의 <마음공부>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힌두교 구루인 ‘님 카롤리 바바’를 만나기 위해 인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이성이 아닌 ‘직관이나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스즈키 순류’의 제자 ‘고분 치노’가 로스 앨토스(Los Altos)에 선불교 센터를 열자 잡스는 열성적인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고분 치노’는 잡스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았고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선불교의 영향으로 단순한 디자인을 선호했습니다. 지금은 애플을 떠났지만 영국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는 그의 디자인 소울메이트였습니다. 그의 심플한 디자인을 보면 선불교에서 가르치는 심플한 삶의 방식을 따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 '더 얹을 것이 없는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고 더 뺄 것이 없는 것이 완벽한 것이다'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분명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쿨러가 시끄러우면 참선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리 없는 컴퓨터를 추구했습니다.

저는 항상 불교가, 특히 일본의 선불교가 미적으로 숭고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본 것들 중 가장 숭고한 것이 교토의 정원들이에요. 일본 문화가 일구어 낸 것들에서 큰 감명을 받곤 하지요. 물론 그것들은 모두 선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지요.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동양 사상과 힌두교, 선불교, 깨달음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단순히 열아홉 청춘이 잠시 보인 객기가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평생에 걸쳐 그는 동양 사상의 많은 개념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개념들 중 하나가 ‘반야’로서, 이는 정신의 집중을 통해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근원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스티브 잡스는 동양철학을 통해서 배운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애플 제품이 명품화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저자 ‘스콧 갤러웨이’는 애플은 더 이상 테크 회사가 아니고 명품회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술이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강조해서 구매자들을 유혹한다는 것이죠.


앞서 말한 요인들보다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스티비 잡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

한 기사에서 이 글을 읽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특정 철학을 경영에 적용한다는 CEO는 많았지만 철학가와의 점심과 회사의 전부를 바꿀 수 있다는 CEO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스티브 잡스 특유의 과장을 고려하더라도 파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삶의 의미와 지혜를 찾을 수 있다면 부질없는 기술이나 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요?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얻는다면 더 나은 기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까요? 오래전부터 궁금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소크라테스를 정말 만난다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고 했을까요? 그래서 제가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에 동시에 빙의해서 그들의 생각을 훔쳐보려고 합니다.


너 자신(영혼)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너의 욕망과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알며 그것을 실천에 옮겨라.’라는 말입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가 이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게 실천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면 당장 그만 때려치우라는 거죠. 그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회사와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의무감도 강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아가 ‘욕구’와 ‘능력’과 ‘당위’의 세 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분별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또한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받지 않고 또 불운을 피한다.
<소크라테스의 추억>,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가 만난다면 소크라테스는 2,000년이 지나 자신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실행한 사업가를 진심으로 칭찬해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지에 대한 자각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들은 아무도 지혜를 연애하거나 지혜로워지기를 욕망하지 않아요. 이미 지혜롭기 때문이죠. 이미 지혜롭게 된 자는 누구든지 지혜를 연애하지 않는 법이죠. 마찬가지로,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연애하거나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지요. 무지가 난감하고 위험한 이유는 이런 데 있죠. 즉, 무지한 자는 아름답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은데도 자기가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고 착각하죠. 그리고 자기에게 아무것도 결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욕망하지 않아요.
<향연>

반면 스티브 잡스는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왜곡장(Self-Distortion Field)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는 절대 화이트보드를 다른 사람에게 내준 적이 없었고 그의 주장을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설사 그가 모르는 분야라도 말이죠.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울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티브의 성격장애가 의심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설사 집에 돌아가서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을지언정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이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을 사람이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마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 이해를 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론의 중요성


소크라테스가 토론을 하고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회의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대화편 25편 중에 ‘프로타고라스’ 편이 있습니다. 그는 이웃나라 ‘트리키아’에서 온 유명한 소피스트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아테네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히포크라테스’와 그를 만나러 갑니다. 사실은 ‘히포크라테스’가 그에게서 배움을 청한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간 것입니다. 프로타고라스를 만나기 위해서 온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두 사람은 ‘썰전’을 벌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지혜를 가르칠 수 있나?’, ‘덕성을 구성하는 것들은 갖가지 다른 특성을 갖는가 아니면 덕성이 일부로 존재하는가?’ 등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덕성을 구성하는 다섯 항목, 즉 ‘지혜’, ‘절제’, ‘용기’, ‘정의’ 및 ‘건강’ 중에 중에 정의는 덕성과 다르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가 소크라테스에게 완벽하게 깨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소크라테스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의 회의 장면을 본 적 없지만 그는 회의 시간에 소크라테스의 산파식 논법으로 사람들을 자기 왜곡장으로 끌어들여 사람들을 설득시켰을 것이라는 상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달리 대화를 통한 변증술로 우리가 반드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화에 성실하게 임할수록 로고스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좀 더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혼의 정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토론을 장려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역시 토론의 중요성을 역설했죠.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혹은 어쩌면 그것의 고립성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잡스는 직접적인 만남을 열렬히 신봉했습니다.


“이런 네트워크 시대에는 이메일이나 아이쳇을 통해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에서 나오는 겁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일의 진행 상황을 묻고 진심 어린 반응을 보여주다 보면 곧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로 요리를 하게 되지요.”


이기기 위해서 토론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썰전'을 벌이면 누가 이길지 정말 궁금합니다. 온라인과 언택트 문화가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두 거인의 토론을 볼 수 있다면 토론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샐러리맨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타지 소설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소중히 여겨라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취지의 말을 소크라테스는 여러 번 했지만 저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말은 재판에서 자신의 사형이 확정되고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미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안겨준 것과 똑같은 고통을 그 아이들에게 안겨줌으로써 복수하십시오.
<소크라테스의 대화>

자식을 남기고 죽음을 앞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복수해도 좋으니 내 아들들이 물질적인 것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소크라테스의 정신에 대한 숭배는 큰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딸 ‘리사 브레넌’은 스티브 잡스가 금욕주의와 미니멀리즘이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고, 음식에 대한 그의 강박증에 그의 인생철학이 반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훌륭한 수확은 척박한 자원에서, 즐거움은 절제에서 비롯한다고 믿었어요.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공식을 알고 있었어요. 모든 것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부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태도는 이중적이었습니다. 반물질주의를 지향하는 히피였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겼고 물질적인 소유물에 대한, 특히 디자인이 뛰어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스톡옵션 백데이팅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돈에 대한 욕심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돈 자체로 보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인정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여자 친구였던 ‘제니퍼 이건’과 논쟁을 벌인 주제 중에 하나가 잡스가 선불교 연구를 통해 확립한 신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이건’에게 우리의 소비 욕구가 건전하지 못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물질을 추구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건’은 반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탐낼만한 컴퓨터와 여타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철학을 거스르는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죠. 결국 자신이 만드는 물건들에 대한 잡스의 자부심은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집착을 피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압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높게 사면서도 그의 물질에 대한 욕심을 나무랐을 겁니다.


악법도 법이다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직접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절친이었던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자 돈으로 매수해서 소크라테스를 도주시키려 합니다. 이미 돈을 대겠다는 제자와 지인들이 많았던 상황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나를 키워준 조국과 조국의 근간을 이루는 법률을 저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법률에 따르자고 말합니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화려하게 복귀할 때 그는 막 태어난 셋째 아이를 위해 제트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애플의 이사회는 걸프스트림 v 제트기와 1,400만 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600만 주를 더 요구했고 기존의 옵션 대신 행사 가격을 낮춘 새로운 스톡옵션을 부여해달라고 이사회에 요청했습니다.  후일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이에 관한 보도를 했고 미국 증권 거래위원회(SEC)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백데이팅으로 이익을 본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관련 법을 적용하기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미국 증권 거래위원회(SEC)는 잡스가 백데이팅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음에도 그가 그것의 회계상 함의는 몰랐다는 이유로 그의 직권남용을 사면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 판단은 아주 애매합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와 애플 간 혹은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 간의 무슨 모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문제 삼으려면 충분히 삼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법을 최대한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 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것은 다시 한번 그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종용했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을 질책했듯이 스티브 잡스의 행동에 대해서 나무랐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혼나는 스티브 잡스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여자와 가족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앞두고 그의 친구와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또 잔소리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크산티페를 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녀를 집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알려진 대로 그의 가정생활은 죽음에 임박해서도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는 친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고 브레넌이라는 여성과 관계에서 낳은 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젊었을 때 '크리스앤 브레넌'을 만나 딸 '리사'를 낳았지만 모녀를 외면했습니다. 밥 딜런의 연인이었던 팝가수 '존 바에즈'도 만났었고, 폴란드계 '바바라 야진스키'라는 여자도 만났고, '제니퍼 이건'이라는 대학생도 만났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 진정을 사랑했던 여자는 애플 재단 소속의 비영리법인에서 일했던 '티나 레지'와 아내 '로렌 파월'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특히 '티나 레지'에 대해서 “내가 본 여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녀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첫 번째 여인이었어요.”라고 회상을 했고 프랑스 파리에 같이 가서 정착할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탠퍼드 경영 대학원 신입생이었던 아내 '로렌 파월'과 결혼 이야기를 할 때에도 '티나 레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하니 그녀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사랑하면서도 로맨틱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배려심과 공감능력이 없는 그를 만나는 여자들은 힘들어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 모두 여자와의 관계 형성에는 모두 서툴렀습니다. 아마 두 사람은 여자와 가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참을 토론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여자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두 사람이 껄껄대고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


소크라테스는 그 시대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신에게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훌륭한 영혼이 가는 ‘축복받은 자들의 섬’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데아를 알고 있고 그래서 우리의 지식은 단지 ‘상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살아온 대로 죽음을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평생 진심으로 철학에 전념한 사람은 죽음을 맞아 자신감을 갖게 되고, 죽은 뒤 저승에 가서 가장 큰 상을 받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니체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찬양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인식과 그 근거를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인간이다. 나아가 그는 학문의 전당 현판 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화된 학문의 사명을 상기시키는 방패의 휘장이다.
<비극의 탄생>, 니체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를 가장 애타게 찾은 것은 아마도 자신이 죽음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었던 반면, 스티브는 13살 때 교회 다니는 것을 스스로 중단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을 것입니다.


스티브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픽사와 애플 두 회사에서 동시에 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직함은 픽사 CEO였지만 이사회 멤버로서 애플일을 하던 시절이었죠. 이때 스티브의 건강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시 애플로 돌아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해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스티브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을 했습니다. 스티브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항암제를 찾는 노력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혁신적인 기술을 허용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로 그는 살아온 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현세가 아닌 하늘에서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면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너는 너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수고했다.”라고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 모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치열하게 찾았던 거인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성과와 스티브 자스의 사업적 성공은 그 결과물일 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 대신 자신을 진정한 최고의 인간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형을 당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광기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샐러리맨들이 배워야 할 부분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 인생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샐러리맨의 한 사람으로서 만약 스티브 밑에서 일한다면 죽도록 싫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종류의 상사랑 일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성과는 잘 나오지만 부하 직원은 죽습니다.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하지만 기업인들 중에서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기업인이 있을까요? 스티브 잡스가 수많은 이중성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삶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스토리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한 남자의 피나는 노력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끔찍합니다. 말의 꼬투리 하나 놓치지 않고 논리의 빈틈을 파고들어 질문을 해대는 사람과 함께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도 철학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했던 한 남자가 고뇌가 보였기 때문에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어떤 철학자보다 더 많이 기억되는 것입니다.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가 좋아했던 <더 홀 어스 카탈로그>라는 간행물의 최종판에 적혀있던 문구라고 합니다. 보통 이 문장을 ‘항상 갈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도전하라.’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을 소크라테스 식으로 해석을 하면 ‘항상 갈망하며 지혜를 추구하고, 자신의 바보같이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일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를 죽여라


스티브가 점심을 먹으면서 소크라테스와 어떤 대화를 나눴든 간에 그는 소크라테스를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선불교 사상이 그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도를 추구하는 벗들이여. 불법의 견해를 터득하려면, 남에게 미혹되지 말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주치는 대로 곧바로 죽일 수 있어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서 친척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해탈하여서,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하게 될 것이다.
<임제록>, 임제선사


우리도 그들을 죽이고 넘어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뭔가를 극복하고 넘으려 했던 그 정신을 배우는 것이 진정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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