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읽기 프로젝트
한 명의 작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작가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강의 마지막 작품을 읽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니 첫 작품을 읽기로 했다. 앞으로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읽는 프로젝트를 할 계획이다. 부지런한 독서가가 아닌 관계로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작가에 대한 덕질의 일환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붉은 닻>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작가는 시로 먼저 등단을 했고 <붉은 닻>으로 소설 등단했다.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한강이라는 이름이 싫어 한강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1995년 출간된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실린 6편 중 마지막에 실린 작품이다.
동식은 쇠퇴해 가는 도시에서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는 어머니, 동생 동영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평생을 술과 노래에 빠져 살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노래를 불렀고 어머니와 동식은 아버지의 옷과 구두를 벗겼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그가 유일하게 남긴 것은 구두 한쪽이었다. 시신을 못 찾은 어머니는 구두 한쪽을 묻고 봉분을 세웠다.
동식에게 아버지는 발이 없는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땅을 딛고 제대로 서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세월을 보냈다. 동식은 아버지와 달리 굳건한 발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창녀촌에 드나들었다. 방탕한 생활로 간경변 진단을 받은 그는 의사로부터 5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5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져있다.
동식은 아버지의 환청을 듣고 환영을 본다. 그 환영은 동생 동영과 겹쳐 보인다. 그에게 동생은 마치 죽은 아버지의 영혼같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식은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지만, 동영은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 동영은 아무 이유 없이 밤새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일쑤였고 동영이 집에 돌아왔을 때 동식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옷과 신발을 벗겼다.
동영이 제대한다는 소식에 동식은 두려워진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변했겠지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동영의 방황은 계속된다. 동식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소풍을 가자고 말한다. 동영이 어렸을 때 바다를 보고 싶어서 혼자 서울역에 갔다가 오는 길에 아버지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바다를 보기 위해 섬으로 간다. 파도도 치지 않고 불도 숨을 죽이는 조용한 섬이었다. 그들은 섬의 뻘밭에서 수십 개의 녹슨, 붉은 닻을 발견한다. 거대한 무덤 같았다.
노을 속 역광을 받은 얼굴을 한 동영에게 동식이 묻는다.
“왜 넌 변하지 않았냐?”
대답대신 동영이 묻는다.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동영은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파도가 들어오면서 고요한 물결이 닻들의 무리를 어루만지면서 쓸어 들어왔다. 불타는 닻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한 사내의 검붉은 그림자가 그 속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동식과 동영 형제의 갈등은 밤과 낮, 밝음과 어두움에 대한 묘사로 구체화된다. 동식은 낮과 밝음의 인간이고 동영은 밤과 어둠의 인간이다.
동식은 도로 맞은 편의 건물들 사이로 사위어가는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혼을 다른 말로 영혼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석양을 바라볼 때면 어둠 속에서 죽은 사내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불타는 손을 상상하곤 했다. 263p
이 작품에서 붉은색의 이미지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죽음을 앞둔 동식에게는 황혼병이 있다. 황혼이 지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고 싶은 병이다.
동식은 초조했다. 황혼이 스러지고, 박명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버스에 올라타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학을 졸업한 후 동식이 철칙과 같이 지키는 본능이었다. 267p
황혼병으로 인해 동식은 밤에는 수동적인 사람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는다.(271p)
반면, 낮은 동식에게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 이마에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은 동식에게 놀라운 것이었다. 도서관의 창문으로는 변두리를 에워싼 바위산이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동식은 언제나 그 창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오후를 보냈다. 272p
> 차 안에서도 느낀 감정이었으나, 이제 유리창으로 여과되지 않은 채 생생하게 온몸을 덮치는 햇살은 그를 더욱 안도하게 했다. 290p
동식에게 밤이 두려움이고 낮이 축복이라면, 동생 동영에게는 정반대로 낮이 두려움이고 밤은 축복이다. 동영은 밤만 되면 활기가 돌았고 낮이 되면 움츠러들었다.
어둠과 함께 시야를 교란하는 음습한 밤안개처럼 녀석은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슬며시 돌아와 자리에 누울 뿐이었다. 273p
동영은 먼저 내려서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녀석의 등허리는 한낮의 태양 아래 외롭고 맥없었다. 어두운 곳에 길든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녀석은 간신히 제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290p
소설 속 여러 장면에서 동생 동영은 죽은 아버지의 반영으로 드러난다. 동식은 때때로 어둠 속에서 불빛을 등지고 걸어 나오는 사내의 모습을 환상으로 본다. 동생 동영이 밤을 좋아하고 낮을 싫어하는 모습은 동영이 아버지의 ‘혼령’이라는 해석을 설득력 있게 한다. 동식은 술 취해 집에 돌아왔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밤새 쏘다니다가 돌아온 동영의 옷과 구두를 벗긴다. 형제의 대립은 동생 동영이 아버지의 영혼이 씌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대립은 더욱 고조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동영이 바다를 보고 싶어서 서울역에 갔다가 오는 길에 아버지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들은 바다로 소풍을 간다. 바닷가 소풍은 아버지를 환기하고 가족이 화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항상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도 두 달에 한번 갔던 소풍에서는 다른 사람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파도도 치지 않고 따듯한 섬은 화해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느껴진다.
‘왜 변하지 않았냐’는 동식의 물음은 마치 아버지에게 던지는 원망같다.
‘왜 아팠냐, 왜 술을 마셨냐‘는 동영의 물음은 그도 똑같은 슬픔을 같이 겪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황혼과 더불어 죽음을 상징하는 불타는 듯한 붉은 닻에 파도가 밀려 들어오고 고요한 물결이 닻들의 무리를 어루만지며 쓸어온다. 어머니는 그 물결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고 동영이 아니 아버지가 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걸어 나온다. 고요한 물결은 죽은 영혼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가족이 다시 만나 화해한다.
소설 데뷔작인 이 작품이 추후 한강 작품의 원형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색깔로 빚어내는 상징,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시키는 영매 같은 이야기, 죽음 이후 산자들의 삶 등 <붉은 닻>은 나중에 한강이 보여준 작품들의 원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바닷가에 흩어진 붉은 닻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에 등장하는 바닷가 나무 무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아버지의 영혼이 씌워진 동영의 모습은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준 혼령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 작가는 한 작품만 쓸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