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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울 Mar 07. 2024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

나의 그림이 가득한 공간, '라잇풀 스튜디오'의 의미

분주한 출근 인파가 사그라든 10시에서 11시 사이, 집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고 을 나섭니다. 집에서 30분 남짓 걸리는 출근길 끝엔 망원동 한적한 길가에 자리한 ‘라잇풀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세모난 지붕 아래 갈색 벽돌이 둘러진 7평 남짓한 네모난 공간 안에는 나의 그림이 가득한 벽과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준비된 작업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놓인 선반, 그림엽서와 포스터로 빼곡히 채워져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진열대까지… 어디를 보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득합니다. 이곳은 나의 작업실이고, 쇼룸이고, 갤러리이며 가게입니다. 

‘라잇풀 스튜디오' 전경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군데군데 자리 잡은 조명을 켜고 잔잔한 음악을 틉니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인센스를 피우고 먼지떨이로 밤사이 쌓인 먼지를 위에서 아래로 털어내요. 하룻밤 동안 얼마나 많은 먼지가 내려앉는지, 정말 신기할 지경입니다. 먼지를 다 털어낸 뒤엔 바닥을 쓸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모자란 상품을 채워놓습니다. 주기에 맞춰 식물들에 물을 주기도 해요.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문가에 피워둔 인센스는 잔잔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음악과 아늑한 향기, 따스한 빛과 적절한 온도까지… 손님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마치면 문에 달린 도어사인을 ‘OPEN’으로 돌려두고 자리에 앉아 적당히 식은 커피를 즐깁니다. 청소하는 동안 멍하니 비워진 머리에 차츰 오늘 하루 해야 하는 일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그렇게 매일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짧은 휴식 끝에 오늘의 일과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새로 도착한 메일을 확인합니다. 입고처에서 보내온 메일이나, 진행 중인 외주 작업 관련하여 새로 온 요청이 없는지요.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한 후엔 노트에 그려둔 스케치 중 몇 개를 골라 새로운 여행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에세이를 쓰곤 합니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스튜디오에 대해 설명하고 그림을 소개해 드려요. 무엇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들입니다.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한 지 꼭 8년 만에, 스튜디오 운영 3년 만에 정리된 그림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일상입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상이 당연해진 요즘이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을 겸해야 했습니다. 일러스트 작가 ‘가울'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무렵 병행했던 어시스던트 일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방과 후 미술 교사로 일하기도 했고, 회사원으로 일하기도 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7년간 쉼 없이 꿈을 향해 달려온 끝에 비로소 2022년 12월이 되어서야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겸하던 일을 내려놓았을 때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사대보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소속감은 정말 안락했어요. 만약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꿈꾸는 삶의 모습이 없었다면 영영 회사에 머물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온전히 작가로 잘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림을 알릴 새로운 무대가 찾아야 했어요. 판데믹이 길어지던 당시엔 페어나 행사가 취소되기 일쑤여서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부족했어요. 새로운 돌파구를 간절히 찾던 중 마련한 공간이 바로 ‘라잇풀 스튜디오'였습니다. 친구가 전해준 소식으로 공간이 매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반쯤은 충동에 이끌려 계약을 맺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 운영에 대해 고민해야 할 현실적인 제약들이 많았지만, 작가로서의 나를 알리고 싶은 간절함이 보다 강렬했습니다.

그 간절함을 에너지로 삼아 회사에서 퇴근하면 스튜디오에 출근해 페인트칠하며 공간을 가꾸었고, 주말에도 밤낮없이 몸을 움직이며 한 달을 보낸 뒤에 21년 6월, ‘반짝이는 빛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라잇풀 스튜디오'를 오픈했습니다. 오픈 첫 날, 손님들을 맞이하며 설레고 떨렸던 하루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렇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거리의 이웃들과 얼굴을 익혀가는 동안 스튜디오는 점점 풍성하게 채워졌고 올해로 운영 3년을 채워갑니다. 3년의 절반이 흘렀을 무렵 마지막으로 겸했던 일을 정리하며 전업 작가로 하루의 대부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고 있어요. 퇴사 후에도 매일 출근할 곳이 있었던 덕에, 마치 매일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처럼 저는 새로운 패턴의 일상에 빠르게 적응해 갔습니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덕일까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동안 작가로서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세 번의 인터뷰를 했고, 두 권의 책을 냈으며, 세 가지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네 번의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난생처음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날씨에 따라 요동치는 매출, 무례한 사람들이 던지고 간 뾰족한 말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 공간에 몸이 매이는 것, 모두가 쉴 때 일해야 하는 자영업의 특성까지… 쉬이 적응되지 않는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그 모든 어려움에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얻은 좋은 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스튜디오를 오픈하지 않았더라면 배우지 못했을 경험을 얻었고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났고, 얻지 못했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스튜디오를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자산은 매일 새로운 사람에게 작업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그 어느때보다 자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페어나 플리마켓, 전시를 하며 작업을 소개하곤 했지만, 분주한 환경과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차분히 한분 한분께 집중하며 그림을 소개하기는 어려웠어요. 반면에 스튜디오에선 오신 분들이 오직 저의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고, 또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그 어느때보다 진솔하고 솔직한 감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창작은 마음의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에 마음에 힘과 용기를 더해주는 긍정적인 감상과 응원은 작업을 시작하고 완성하기까지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무척 큰 힘이 됩니다. 그렇기에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들을 수 있었던 따뜻한 언어의 말들이 저에겐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에 더해 매일 거듭하여 작업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의 작업이 품은, 나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메세지를 발견한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큰 결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나의 꿈, ‘세상에 아름다운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걸음걸음이라는 점이 이 공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3년간 스튜디오에서 홀로 노력하며 보낸 시간들이 공들여 가꾸어온 공간의 가치를 더합니다. 나의 작업실이고 쇼룸이자 갤러리이며 가게인 이 곳은 오늘의 일상을 지키고 내일의 꿈을 꾸는,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가울 그리고 씀.
2024.2.23




글과 그림을 한 편의 레터로 엮어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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