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오늘은 우리 집 타작하는 날이다.
칠성이 아버지가 엊저녁 소달구지에 탈곡기를 싣고 와 마당에 내려놓았다. 또래 중에서 등치도 가장 좋고, 얼굴엔 여드름이 더덕더덕 한 칠성이는 언니와 동갑으로 6학년이다. 어쩌다 칠성 어머니가 우리 집에 마실 오면 칠성이 자랑에 침이 마른다.
참, 그리고 보니 비밀이 있다. 칠성 오빠가 은근히 언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지난봄부터 나를 보면 쓸개 빠진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곤 하였다. 나는 칠성 오빠가 혹시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다. 평소 안 그런 사람이 이유 없이 실실 웃거나,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면 이상한 일이 있다는 징조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칠성 오빠가 큰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배배 꼬고 얼굴까지 붉히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덕아? 점심은 먹었냐?’며 다정하게 묻는다. 나는 잔뜩 경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칠성 오빠가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주머니에서 네모반듯하게 접은 종이쪽지를 내밀면서 언니한테 전해 달란다.
“이게 뭔데?”
빤히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내 질문에 잠시 칠성 오빠가 좀 전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응, 그거 방명록에 적을 건데 학교서 준다는 걸 깜빡 잊고 와서 언니한테 꼭 전해 줘야 한다. 알았지?”
칠성 오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지난봄에도 이와 비슷한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언니가 대성상회 집 둘째인 찬호 오빠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버지에게 언니 심부름으로 찬호 오빠에게 쪽지를 전 했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의 안색이 변하더니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담부턴 절대로 그런 심부름하지 말거라.”
“왜?”
“어허,”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귀찮다며 그만 물어보란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를 찾는다. 딸자식 교육 잘 시키라는 아버지의 말을 전해 들은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 모르더니 날 보고 당장 언니를 찾아오란다.
나는 언니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처럼 화를 안 내시는 아버지가 내게 저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여하튼 언니는 그날 엄마에게는 물론 아버지에게도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었다. 언니는 내가 아버지에게 고자질해 혼났다며 분풀이를 단단히 했다.
그 후 언니는 나한테 그런 심부름은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니가 그런 쪽지를 주고받는 것을 그만둔 것이 아니다. 이순 언니에게 그 일을 시킨 것이다.
“안돼! 울 엄마한테 혼나. 오빠가 직접 갖다 줘.”
내 단호한 태도에 칠성 오빠의 난감한 표정을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그 뒤 칠성 오빠는 나를 보면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외면을 해버린다.
“우리 칠성이가 어디 보통 애들과 같은 가요, 양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칠성님이 점지해 준 아들 인디. 시방도 힘이 얼마나 장산지 즈 아버지는 쌀 반 가마니도 제대로 못 드는데 칠성이는 쌀가마니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나른다니까요.”
“그란디 칠성이를 어째서 중학교에 안 보내는 거여?”
“쓸데없이 공부시켜서 반거충이 맹글라고요? 양호 엄니는 시방 대성상회 큰아들 선동이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가요? 갸 대학 공부시킨다고 그 집에서 그동안 없앤 소와 전답이 얼마나 되는 줄 몰라서 그려요? 그 전답만 있으면 평생 암 것 안 하고 배 두드려 가면서 살아도 먹고 남을 텐데, 칠성이 아버지 말이 앞으로 밥 안 굶고 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하대요. 우리 칠성이는 학교 마치면 곧바로 대처로 보내 일찌감치 기술이나 가르 칠랑 고만요”
아줌마가 말하는 선동 아저씨는 안성장터에서 제일 부자인 대성상회 큰아들이다. 안성에서 드물게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선동 아저씨는 요즘 낙향해 안성장터에 내려와 있다. 선동 아저씨는 칠성 엄마 말처럼 반거충이나 다름이 없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부모님 장사를 거들지도 않는다.
늘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본 탓에 얼굴에 핏기가 없고 몸도 가냘프기 짝이 없다. 간혹 산책 나온 선동 아저씨는 어슬렁거리며 길가에 풀들을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기 일쑤였다. 어제도 내가 몰래 바위 뒤에 숨어 그런 아저씨를 지켜보았다. 선동 아저씨는 나를 돌아보다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모기 만한 소리로 묻는다.
“네가 용자 동생이구나, 그렇지? 너네 언니 친정에 자주 오냐?”
“근데 아저씨가 어떻게 우리 큰언니를 알아요?”
나는 서울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는 선동 아저씨가 시집간 큰언니를 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알다마다. 근데 너는 몇 살이냐?”
“일곱 살이요!”
“느 언니가 내 동무였다. 그때 너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새하얀 아저씨의 얼굴에 잔잔한 그늘이 진다.
“그럼 우리 큰언니 장안리로 시집가기 전에요?”
아저씨 곁에 쪼그리고 앉으며 내가 묻었다.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 큰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동무가 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아저씨가 그런 내 눈치를 느꼈던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왜 남자와 여자가 동무라니까 이상해?”
“네.”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내가 아주 아기였을 때, 네 큰언니도 어린애였거든. 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 네 언니도 같이 학교에 들어갔고, 이제 이해가 되냐?”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아저씨와 큰언니가 동무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알았다. 그러니까 아저씨와 우리 큰언니는 소꿉동무였군요?”
“뭐? 소꿉동무, 그래 맞다, 바로 그거야.”
아저씨가 호탕하게 큰 소리로 웃는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티 없이 웃는 아저씨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냐?”
머쓱해진 아저씨가 웃음을 거두며 묻는다.
“아저씨가 웃으니까 참 보기 좋아요!”
내 그 말에 아저씨의 흰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나는 문득 아저씨가 아버지와 꽃을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꽃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곧이곧대로 믿어 준다. 설사 그 말이 거짓말이더라도. 그런데 지금 보니 아저씨도 그렇다.
“정말?”
“네.”
“그럼 맨 날 맨 날 이렇게 미친놈처럼 실실 웃고 다녀야겠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아저씨가 학교에서 데모를 주도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 몸과 정신이 못쓰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이렇게 멀쩡한 아저씨를 보고 이상해졌다는 엉터리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순자는 공부 잘하니?”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저씨에게 묻는다.
“우리 작은언니도 알아요?”
“그럼. 느 오빠 이름이 양호라는 것도 아는데, 내가 서울로 떠날 때 너는 젖먹이 어린애여서 이름이 없었거든. 맞다, 네가 하도 순해서 너 아기 때 순덕이라고 불렀었는데 지금도 순덕이라고 부르니?”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작은언니 어릴 때 눈이 커서 시원시원한 게 인형처럼 아주 예뻤는데 지금은 더 예뻐졌겠네?”
아저씨의 그 말에 갑자기 아련한 슬픔을 느낀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아저씨가 꽃을 닮았다는 생각을 서둘러 지워버린다.
“왜? 나랑 좀 더 놀다 가지. 벌써 갈려고?”
발딱 일어서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아저씨가 묻는다. 그러나 아저씨와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거짓말처럼 싹 없어져 버렸다.
“순자한테 내가 보고 싶다고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그래라.”
내가 미쳤나, 작은언니한테 그런 말을 전 하게.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흥 뀌며 돌아섰었다. 그러면 나는 언니에게 끝까지 그 말을 전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언니 말처럼 내 입이 가벼워서 할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니가 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던 모습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다.
여하튼 꼭두새벽부터 엄마는 사람들 일하러 오기 전에 아침을 먹고 치워야 한다고 서둘렀다. 언니가 설거지를 끝내기 전에 할머니를 앞세우고, 돼재와 앵밑에 사시는 두 작은아버지 내외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논에 있던 나락(벼)은 엊저녁 늦게까지 작은아버지와 아버지가 마당에 옮겨놓았다.
넓은 마당에는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탈곡기가 놓였다. 탈곡기 옆으로 볏단이 수북하다. 칠성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탈곡기 앞에 나란히 서서 밟기 시작했다. 힘차게 돌아가는 탈곡기에 볏단을 갖다 대기 무섭게 나락들이 멍석 위로 떨어져 쌓인다.
나락에 붙어있는 벼 알갱이를 요리조리 살피며 모두 털어 낸 뒤 빈 짚단을 옆으로 던지고 다른 볏단을 탈곡기에 갖다 댄다. 때문에 타작 기계를 돌리는 두 사람 외에 볏단이 떨어지지 않게 날라주어야만 한다. 멍석 위에 수북한 벼를 풍로에 넣어 쭉정이는 날리고 낟알은 가마니에 담아 마루 위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벼를 털어내고 남은 빈 짚단을 날라다 높다랗게 쌓는 사람,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타작하는 데서 얼쩡거리지 마, 옷 속으로 나락 지푸라기 들어갔다고 나중에 껄끄럽다고 하지 말고.”
엄마는 벌써 몇 번째 내게 주의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집도 아닌 바로 우리 집에서 타작하는데 어떻게 내가 나가 놀 수가 있겠는가.
우리 집에 큰일이 있는 날이면 덩달아 내 마음도 바쁘다. 학교에 못 간 언니가 있어 오늘만큼은 동생을 보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새참으로 국수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정지 문턱이 닿도록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너는 아줌마한테 가서 점심 드시러 오라고 해라.”
아 참,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며칠 전 아줌마네 집엔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가 미친년이라고 놀렸던 여자가 남산 만한 배를 부둥켜안고 장터 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을 아줌마네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얼마 안 있으면 미친 여자가 몸을 풀 거란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아기를 낳는다는 쉬운 말을 놔두고 몸을 푼다고 어렵게 말을 하는지. 엄마는 날 보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아줌마네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친 여자가 아기를 낳았는지 궁금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줌마네 집 앞을 기웃거리는 것이 요즘 내 일과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줌마 말에 의하면 미친 여자의 정신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전보다 순해졌단다.
아줌마네 집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무척 오래간만이다. 마루에 앉아 호기심에 문틈으로 방안을 기웃거리며 내가 말했다.
“‘아줌마! 엄마가 점심 드시러 오시래요,”
아줌마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깜짝 반기면서 말씀하셨다.
“덕아! 너 마침 잘 왔다. 너 얼른 샛담 가서 병수네 할머니 좀 모셔올래? 아줌마가 지금 애 낳으려고 진통이 심하게 한다고 전하고. 가다가 해찰하지 말고 횅하니 얼른 가야 한다.”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단숨에 병수네 집으로 달려갔다.
산파인 병수 할머니는 안성장터에서 애를 가장 잘 받는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재작년 가을 엄마가 동생을 낳으려 할 때도 나는 병수네 할머니를 모시러 샛담 고샅을 숨이 넘어갈 정도로 빠르게 뛰어갔었다. 잘은 몰라도 나는 물론 언니나 오빠까지도 모두 병수네 할머니가 받았을 것이다.
칠순 노인답지 않게 병수네 할머니는 허리가 전혀 굽지 않았고 정정하시다. 산기가 있다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수네 할머니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도 모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제야 고무신을 바로 신고 나는 거들떠보지 않고 뛰는 것처럼 걸어간다.
병수 할머니를 따라가 애 낳는 것을 보고 싶다. 하지만 동생을 낳을 때도 병수 할머니는 밖에서 놀다 나중에 오라며 내쫓다시피 밖으로 떠밀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방과 건넌방에 큰 상이 두 개나 차려졌다. 안방에 차려진 밥상은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점심상이고, 건넌방 상은 할머니와 엄마, 두 작은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의 밥상이었다. 상위에 명절 때나 맛볼 수 있는 진귀한 반찬이 즐비하다. 무를 넣고 자글자글 졸인 생고등어도 보이고, 하얀 쌀밥에, 들기름을 발라 소금을 뿌려 구운 김도 있다. 명탯국에 두툼하게 지진 두부와 호박과 정구지(부추) 풋고추를 쫑쫑 썰어 부친 적도 접시에 예쁘게 담겨있다.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속으로 셈을 하며 할머니가 수저를 들기만 기다렸다. 웃어른과 식사를 할 때 먼저 수저를 들면 안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이다.
“욕봤다. 언제 이렇게 건건이를 많이 준비했냐? 어서들 먹자.”
할머니가 밥상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건건이란 반찬을 일컫는 우리 고장의 사투리다. 할머니가 고등어 한 토막을 손으로 집어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시를 발라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먹는다. 할머니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젓가락은 그저 구색으로 갖추어져 있을 뿐이다. 김치와 나물은 손가락으로, 국물이 있는 반찬은 수저로 떠서,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 장 종류는 수저 끝에 찍어 드신다.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엄마와 두 작은 어머니들까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때는 수저에 묻은 밥알이 반찬에 묻는 것은 다반사였다.
만약 똑똑한 오빠가 없었더라면 나 역시 할머니처럼 식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자랐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마침 아버지가 출타를 하셔서 할머니와 오빠가 겸상을 하였다. 말없이 밥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오빠가 젓가락을 들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할머니! 젓가락을 이렇게 버젓이 냅 두고 왜 드럽게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어요!”
평소처럼 손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막 입에 넣으려던 할머니가 이게 대체 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마는 아무 음식이나 덥석덥석 먹지 않는 오빠가 입이 짧고 까탈스럽다며 눈을 흘기기도 했지만, 실상은 그 속뜻은 다른 아이들과 뭐가 달라도 다른 오빠를 은근히 자랑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기야 그것은 엄마 말이 백 번 천 번 옳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찾아 먹기 힘든 그 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안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임이 분명했다. 지난봄에도 양식이 없어 온몸이 뚱뚱 붓고 누렇게 뜬 사람들이 양지쪽에 쭉 늘어앉아 나른한 봄볕에 취해있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다른 집에 비해 부자란 말은 결코 아니다.
여하튼, 오빠의 그 말 한마디에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는 순간 모든 행동을 정지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12개의 눈동자는 일시에 오빠를 향했다.
뜻밖의 일격에 당황한 할머니는 순간 당황했다. 집안 최고 어른인 자신이 며느리와 손녀 앞에서 자신이 귀히 여기는 손자에게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까딱 잘못 처신하면 자신의 권위가 깡그리 무너질 절체절명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만약 오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요절이 났을 것이다. 할머니는 속으로 은근히 이 똑똑한 손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누구던가. 안성장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무서운 시어머니가 아니던가? 아무리 늙고 술과 노름을 일삼는 둘째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큰아들 내외와 떨어져 살고 있던 터였다. 어쨌거나 집안의 최고 어른은 자신이다. 이 기회에 이 할미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잔뜩 마땅찮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손자를 매섭게 노려봤다. 집안 어른답게 위엄을 갖추어 점잖게 말하려 했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너 너, 시 시방 그 말 이 할미한테 한 소리냐?”
그러나 오빠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너무나 당당하게 할머니 말을 되받았다.
“네, 그래요. 할머니한테 한 말이에요.”
70 평생 융통 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을 봉양하고 사 형제를 키우느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할머니는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이 할미가 건건이를 손으로 좀 집어 먹었기로서니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냐?”
“양호야! 할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어서 할머니한테 잘못했다고 하거라.”
엄마가 서둘러 무마에 나섰다. 하지만 엄마의 그 말이 오히려 할머니 부아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가 엄마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시어미가 시어미 같지 않아도 그렇지, 니 눈에 이 시어미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어른이 말을 하고 있는 데 나서긴 어딜 함부로 나서. 느 친정에서 그렇게 가르치데?”
불똥이 엉뚱하게 엄마에게 튀자, 오빠가 엄마의 역성을 들고 나섰다.
“할머니! 왜 아무 죄 없는 엄마한테 화를 내고 그래요? 그렇잖아요. 젓가락을 폼으로 놓은 게 아니잖아요. 왜 반찬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어요, 손이 얼마나 더러운지나 알아요? 할머니 혼자 식사하는 거라면 또 몰라. 같이 먹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셔야 하잖아요. 젓가락으로 드시라는 제 말이 틀린 거 아니잖아요?”
오빠의 논리 정연한 말에 할머니는 잠시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오빠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어진 할머니는 힘없이 수저를 내려놓고는 획 등을 보이고 돌아앉아 버렸다.
“애고, 내가 왜 죽지 않고 살아서 나이 어린 손자한테까지 이런 끕끕수를 당하고 사는가. 애고, 저승사자들은 다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자빠졌단 말인가, 나 같은 늙은이 잡아가지 않고.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당게. 부모 복 없는 년은 서방 복 없고,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 없다더니, 에고 에고, 서럽고 서러워서 어찌 살아가야 하나!”
할머니는 억지 울음을 지으며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흘낏흘낏 오빠의 눈치를 살핀다.
“어머님도 참! 양호가 철이 없어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뭘 그러세요. 양호야! 어서 할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라.”
보다 못한 작은어머니가 말했다. 오빠는 잠시 죄 없는 밥상을 노려보더니 수저를 거칠게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당장 거기 앉지 못해?”
엄마가 오빠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앉히려 했다. 오빠는 거칠게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에이 씨! 내가 뭐 어디 틀린 말 했어.”
오빠가 그렇게 나간 뒤 할머니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치맛자락으로 코를 일부로 큰소리로 풀었다. 그리고는 밥상 앞에 숨죽이고 앉아있는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방 뭣들 하냐? 밥 먹다 말고.”
오빠가 밥을 먹지 않고 나가 속이 상해 어쩔 줄 모르는 엄마의 옆구리를 작은어머니가 살며시 잡아당긴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빠 밥그릇을 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밥을 수저로 덜어 오빠의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시방 뭐하냐? 양호 밥 다 식는고만. 얼른 식기 뚜껑 잘 덮어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 놓거라. 이따 양호 와서 먹게.”
그때 일을 생각하고 할머니를 보니 웃음이 난다. 그 후 할머니는 오빠와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조심을 한다. 이따금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다가도 얼른 오빠의 시선을 의식하곤 ‘아이고, 이놈의 손모가지 보게. 늙은 면 죽어야 한당게.’라며 헛웃음을 짓고 재빨리 상위에 있는 젓가락을 어설프게 집어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지금쯤 미친 여자가 아기를 낳았을까? 만약 낳았으면 아들일까, 딸일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점심상을 물리기 무섭게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다시 집안을 뒤흔든다. 오빠와 함께 빈 짚단을 텃밭 옆으로 나르다가 벌써 몇 번이나 남원관 집 대문을 보고 왔는지 모른다.
해가 설핏해질 때까지 계속된 타작 끝에 모두 스물한 가마니의 나락을 추수했다. 마루에 나락 가마니가 수북하게 쌓여있으니 내 마음도 덩달아 뿌듯하다.
차곡차곡 돌아가며 쌓아 올린 짚단이 내 키를 훨씬 넘고, 아버지 키를 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 집과 헛간을 굽어보게 되었다.
타작을 끝낸 뒤 아버지는 멍석을 털어 둘둘 말아 원래 있던 헛간에 다시 매달아 놓았다. 그런 다음 마당을 깨끗이 쓸고 내일 타작할 집으로 탈곡기를 갖다 놓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
“아부지! 저 많은 짚들은 다 엇다 써?”
“쓸 일이 쌔고 쌨지. 지붕도 새로 이고, 소 여물도 끓이고, 사내끼(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야하니 짚은 많이 있을수록 좋지.”
“우리 겁나게 부자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물으셨다.
“어째서?”
“저것 봐! 마루에 쌀도 저렇게 많고, 짚도 겁나게 많잖아.”
아버지가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참말로 우리는 부자로구나!”
점심때부터 시작된 미친 아줌마의 진통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밤이 이슥해졌을 때 산파인 병수 할머니를 비롯해 아줌마,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친 아줌마는 천신만고 끝에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남원관이라는 빛바랜 나무 간판 아래 붉은 고추와 숯과 소나무를 매단 금줄이 쳐졌다. 밤늦게 돌아온 엄마가 이상하다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줌마가 낳은 아기가 버버리 아저씨를 너무 쏙 닮았다는 것이다. 양악 댁 아줌마가 아줌마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하며 기저귀 감으로 무명 두 필과 미역을 두 단이나 사 왔다는 것이다.
또한 버버리 아저씨는 마치 자신의 아들을 낳은 것처럼 실성을 한 사람처럼 온종일 실실 웃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런 버버리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지난봄 박 진사네 무덤 앞의 일이 자꾸만 떠 올랐다.
며칠 후, 백지장 같이 창백해진 아줌마가 허겁지겁 엄마를 찾았다. 산모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줌마와 함께 남원관으로 달려갔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임신을 하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산 데다 난산까지 하였으니 산모의 상태가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어미라고 어린 핏덩이를 두고 가는 게 영 못 미더웠던지, 죽는 순간까지도 아기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를 않더라.”
엄마와 아줌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산모는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연고자가 없는 아줌마의 시신은 특별한 의식 없이 아버지가 지게에 지고 우리 산에 묻어 주기로 했다.
아버지가 널도 없이 가마니에 둘둘 만 그 불쌍한 아줌마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이른 새벽 아줌마네 집을 나설 때였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버버리 아저씨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묻고 오겠다며 시신을 지고 갔단다. 핏덩어리인 갓난아기는 아줌마가 맡아 키우기로 했다.
“금식이 그 사람 마음이 용하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참말 복 많이 받고 살 거여. 생판 모르는 남이 죽었는데도 어찌나 섧게 울던지 나도 같이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흘렀고만.”
양지바른 곳에 아줌마를 묻고 오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