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비가 그친 아침이었다.
젖은 풀잎 사이로 한 송이 주황빛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멈춰 섰다.
아, 원추리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피어난다.
하루뿐이다.
내일도 어제도 없이
이 꽃은 오늘만을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 원추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하루밖에 못 피는 꽃이라고요?
아뇨, 하루를 온전히 피워내는 꽃이죠."
어쩌면 삶도 그런 게 아닐까.
그 짧음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하루에 자신을 다 던져 피워낸다면
그건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원추리는 예로부터 ‘망우초’라 불렸다.
이름 그대로, 근심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남편이 먼 길을 떠나자 슬픔에 잠긴 여인이
이 꽃을 보고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슬픔을 덜어주는 풀이라 믿고
마음이 무거울 때면 이 꽃 앞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꽃은
우리를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오늘 하루만 피워내도 충분해."
하루만 피고 지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잎을 키우고 뿌리를 뻗는 그 삶의 구조가
나는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하루도,
그 하루 위에 수없이 반복된 준비와 기다림이 있었고
결국엔 오늘이라는 꽃을 피워냈다는 사실.
그래서 원추리를 마주하면
삶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천천히 내 시간의 뿌리를 내리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꽃 한 송이의 수명이 하루라고 해서
그 생을 가볍게 여길 순 없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원추리 한 송이가 조용히 피어나
햇살 한 줌을 모아 담고,
잠시의 바람과 눈을 맞추다
자연스럽게 져간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나도 그래야겠다.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서
다 피워내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나의 한쪽 잎사귀쯤은
햇살을 향해 펼쳐야겠다.
학명: Hemerocallis spp.
꽃말: 근심을 잊다, 희망, 소망, 하루의 아름다움
한자명: 忘憂草 (망우초)
개화시기: 6~8월
특징: 하루만 피는 꽃, 그러나 매일 새로운 꽃이 피며 여름 내내 피어난다.
https://youtu.be/uCUInOhQrmk?si=dYPc9cJDkFCBn2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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