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접초와 족두리, 족도리풀 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족두리꽃, 풍접초, 그리고 족도리풀 이야기


저는 아주 오랫동안 풍접초를 ‘족두리꽃’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쪽에 늘 피어 있던 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새벽, 풍접초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족도리풀’이라는 전혀 다른 토종 꽃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지요.
만약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풍접초가 곧 족두리꽃이라 믿고 있었을 겁니다.

만주족도리풀 (사)한국자생식물보존회(김용현).


◆ 소박한 족도리풀과 옛 족두리


족도리풀(Asarum sieboldii)은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가 원산지입니다. 깊은 산의 낙엽 밑, 그늘진 숲 바닥에서 자라며, 꽃은 땅에 바짝 붙어 갈색과 자줏빛을 띤 작은 꽃송이를 피웁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겸손한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youngprincess_jokduri_fill.jpg 사진 : 영찬왕비 족두리

이 꽃은 옛 신부가 혼례 때 머리에 얹던 작은 관, 즉 족두리와 닮았다고 하여 ‘족도리꽃’이라 불렸습니다. 고려 말~조선 초기의 족두리는 오늘날처럼 화려한 옥과 산호로 장식된 모자가 아니라, 단정한 머리 위에 소박하게 얹는 작은 모자형 관이었습니다. 바로 그 모습이 족도리풀 꽃과 닮아 있었던 것이지요.


족도리풀은 약재로도 쓰여 왔습니다. 뿌리는 한방에서 진통·해열제로 사용되었고, 꽃말은 ‘은둔’. 숲속 그늘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특성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 풍접초와 화려해진 족두리


시간이 흐르면서 신부의 족두리 역시 변모했습니다.


복식사 연구에 따르면, 고려 말조선 초의 족두리는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조선 중기 이후 점차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겉에 비단을 씌우고 가장자리에 비취·산호·옥 등을 장식하면서, 18세기 후반19세기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화려한 족두리의 모습이 정착했습니다. 『국조오례의』와 조선시대 풍속화에도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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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무렵, 남아메리카 파라과이·브라질 원산의 외래 꽃 풍접초(Cleome hassleriana)가 관상용으로 들어왔습니다. 영어 이름은 ‘Spider Flower’, 긴 수술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마치 거미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술이 나비 날개처럼 퍼지는 모습 때문에 ‘바람에 춤추는 나비꽃’이라는 뜻으로 풍접초(風蝶草)라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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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접초의 꽃말은 ‘가냘픈 아름다움’, ‘당신의 그늘에서’. 여름 햇볕 속에서도 화려하게 피어나는 풍접초의 특성과 잘 어울리지요.


사람들의 눈에는 이 풍접초의 둥글게 모인 꽃송이가, 더 이상 소박한 족도리풀이 아닌, 화려하게 변한 족두리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풍접초는 자연스럽게 ‘족두리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며 족도리풀 대신 그 이름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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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에 담긴 세월의 흔적


정리하자면,

족두리의 변화(소박→화려)는 복식사 연구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풍접초를 ‘족두리꽃’이라 부르게 된 과정은 문헌적 고증이라기보다 민간적 상상과 별칭의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꽃 이름의 변천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과 마음이 시대와 함께 옮겨간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족도리풀은 숲 속 그늘에서 소박했던 혼례의 족두리를 닮아 있고,
풍접초는 시대가 더해 준 화려한 장식을 닮아 있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ai8llaai8llaai8l.png 족도리풀 꽃


꽃의 이름 하나에도 우리의 생활과 역사가 배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 이야기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만주족도리풀 국립수목원(정수영)

한때는 땅바닥에 숨어 피어난 작은 꽃이 신부의 머리를 닮았고,
세월이 흘러 화려한 장식의 꽃이 그 이름을 이어받았습니다.


꽃은 이름을 바꾸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시대의 눈으로 꽃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속에는
우리의 기억, 우리의 삶,
그리고 변해가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https://youtu.be/krJawnqc1UU?si=O_tIhVzwtL1CwO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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