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오래 전, 강화도 석모도 가는 길.
한 농가 집 앞에 곱게 피어 있던 백일홍을 보았습니다.
그 고운 빛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볕을 듬뿍 받은 탓인지, 그 꽃빛과 잎빛은 제 어설픈 필력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너무도 곱디고와 결국 사진으로 남기고, 아쉬운 마음에 차를 후진해 다시 한 번 바라보던 기억. 그리고 계절이 흘러 씨앗이 익어갈 무렵, 일부러 그곳을 다시 찾아 씨를 받아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받아온 씨앗을 이듬해 화분에 심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복도에서 키운 백일홍은 햇볕이 부족했는지, 웃자라기를 반복하며 제 키만큼 커 버렸습니다. 꽃이 맺히긴 했으나 그 아름다움은 석모도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아쉬움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백일홍을 보았지만, 그날 해변가 농가 집 앞에서 피어 있던 그 백일홍만큼 아름다운 꽃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백일홍은 이름 그대로 ‘백일 동안 붉게 핀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학명은 Zinnia elegans,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지요. 원산지는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일대.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꿋꿋하게 피어나 여름 정원의 빛깔을 책임집니다.
백일홍은 장미나 해바라기처럼 잘 알려진 신화는 없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전설과 민속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못난 꽃에서 여름의 여왕으로
18세기 백일홍이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그다지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아 ‘못난 꽃(Ugly flower)’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품종이 개량되고 색이 다양해지면서 오히려 여름 정원의 주인공으로 사랑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백일홍은 겸손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이라는 상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기다림의 전설
또 한 소녀가 전쟁에 떠난 연인을 기다리며 정원에 백일홍을 심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꽃은 뜨거운 여름 내내 시들지 않고 오랫동안 피어 있었고, 소녀는 그 꽃을 보며 연인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비롯해 백일홍의 꽃말이 ‘한결같은 사랑, 영원한 그리움'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멕시코에서의 상징성
백일홍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는 이 꽃이 오래 피는 성질 때문에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랑과 추억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추모의 꽃으로도 쓰였으며,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 축제에서 국화(마리골드)와 함께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백일홍의 꽃말은 한결같은 사랑, 그리움, 행복입니다.
붉은 백일홍은 영원한 사랑,
노란 백일홍은 우정과 기쁨,
흰 백일홍은 순수와 선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여름 내내 지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성질 때문에, 변치 않는 정성과 인내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백일홍은 다른 초화와 달리 자연 발아가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심어야 꽃을 볼 수 있습니다.
햇빛: 하루 종일 햇볕을 받는 곳이 좋습니다. 반그늘에서는 꽃이 제대로 피지 않습니다.
토양: 배수가 잘 되고 비옥한 흙. 화분에서도 잘 자라지만 햇볕은 필수입니다.
물주기: 건조에는 비교적 강하지만, 흙이 너무 마르지 않도록 적당히 물을 주어야 합니다.
관리: 꽃이 진 후 시든 꽃대를 제거하면 새로운 꽃이 계속 올라와 긴 시간 동안 화려하게 피어납니다.
백일홍은 여름 내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꽃이지만, 저에게는 언제나 석모도에서 만났던 그 한순간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으로도 다 담지 못했던 그 고운 빛, 그리고 다시 씨앗을 얻어 심었던 추억까지. 백일홍은 제게 단순한 여름꽃이 아니라, 그리움과 회상의 꽃입니다.
혹여 누군가 올여름 백일홍을 만나게 된다면, 잠시 멈추어 그 빛을 오래 마음에 담아 두시길 바랍니다. 꽃이 지고 나면 다시는 자연스레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반드시 씨앗을 받아 두어야만, 다시 피워낼 수 있는 꽃이니까요.
햇볕 속에 피어난 너는
백일을 살아도,
내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지지 않는 꽃.
https://youtu.be/i6ODHcg1DBQ?si=kX5prR1QsepFMP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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