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어제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붉은 꽃, 바로 사철베고니아(Begonia semperflorens)였습니다.
꽃잎은 크지 않지만 맑고 선명했고, 잎에는 붉은 테두리가 둘러져 반짝거렸습니다.
한동안 제 눈길에서 멀어졌던 꽃이었는데, 오랜만에 마주하니 옛 기억이 문득 살아났습니다.
아주 오래전, 저는 중계동 건영옴니백화점 정문 앞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지만, 화원을 꾸려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새벽마다 남대문 꽃시장을 오가며 꽃을 골라와야 했고,
그렇게 아름답던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물속에서 악취로 변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그 시절, 화원 앞자리를 차지하던 꽃이 바로 사철베고니아였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가격이 저렴해 손님들이 쉽게 사 가곤 했지요.
작은 화분에서도, 마당 가장자리에서도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우는 귀여운 존재.
늘 곁을 지켜주는 듯 소박하고 꾸준한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직원이 놀란 얼굴로 저를 불렀습니다.
화원 맨 앞에 놓인 사철베고니아 화분을 가리키며, “사장님, 이거 좀 보세요!” 하는 소리에 다가갔더니,
세상에나, 화분 속에서 구더기가 바글바글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아 있는 꽃 화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서둘러 그 화분을 치웠지만,
한동안은 눈을 감아도 자꾸만 구더기가 보이는 듯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화원에서는 사철베고니아를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꽃은 여전히 귀엽고 소박했지만, 저에게는 두려움과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철베고니아는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입니다.
학명은 Begonia semperflorens로, ‘semperflorens’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언제나 꽃을 피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말도 그래서 ‘친절’, ‘사랑의 인식’,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사철 내내 작고 소박한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베고니아는 전 세계에 2,000종이 넘을 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화단에서 흔히 보는 사철베고니아,
화려한 큰 꽃을 피우는 구근베고니아,
독특한 무늬 잎이 매력인 잎 베고니아,
줄기가 늘어지는 덩굴성 베고니아 등.
한때는 집집마다 화분으로, 학교 화단에서, 마당 구석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꽃.
특히 사철베고니아는 튼튼하고 관리가 쉬워, 초보자도 잘 키울 수 있어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습니다.
사철베고니아는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지만, 반그늘에서도 잘 자랍니다.
겉흙이 마르면 흠뻑 물을 주되, 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가 중요합니다.
흙은 통풍이 잘되고 배수가 원활한 일반 원예용 상토면 충분하지요.
씨앗이나 꺾꽂이로 손쉽게 번식할 수 있어, 예전에는 화분마다 번져 가듯 키우던 꽃이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저는 사철베고니아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산책길에서 다시 만난 그 꽃은, 마치 세월을 건너와 제 앞에 다시 서 준 듯했습니다.
작고 투박한 듯하지만 선명히 빛나는 붉은 꽃.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는 않지만, 늘 묵묵히 피어나며 곁을 지켜주는 모습.
이제는 그때의 두려움마저 세월 속에 녹아,
사철베고니아는 다시금 제게 삶의 추억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CtvZZWKAEtM?si=ilTH46zTaRbkDe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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