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린 앞에서 만난 꼬마 왕자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꽃기린 앞에서 만난 꼬마 왕자


저녁 햇살이 거실 창가로 스며들던 시간, 작은언니네 집 한켠에 놓인 화분 앞에 꼬마가 섰습니다. 까만 눈망울이 별처럼 반짝이며 꽃기린을 가리키더니 묻습니다.


“할머니, 꽃에 왜 가시가 있어?”

뜻밖의 질문에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꽃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있는 거란다.”

“자기 몸이 어디 있는데?”


아이의 눈빛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언니는 가시 돋은 줄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가시가 난 줄기, 그게 바로 꽃의 몸이지.”


그러자 아이는 별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어린왕자』를 떠올렸습니다. 장미에게 가시의 의미를 묻던 어린왕자의 모습,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난 또 다른 꼬마 왕자. 순수한 질문과 서툴지만 진심 어린 대답은, 마치 작은 별 하나가 반짝이듯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가시와 꽃

꽃기린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식물입니다. 이름처럼 기린의 목처럼 길게 줄기를 뻗어올리지만, 그 줄기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송송 박혀 있어 쉽게 다가설 수는 없습니다.


붉고 분홍빛의 작은 꽃들이 줄기 끝에 무리를 지어 피어나지만, 사실 그것은 꽃이 아닙니다. 꽃받침이 변해 생긴 포엽, 그 안에서야 비로소 작은 진짜 꽃이 수줍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꽃기린의 꽃말은 “고난 속의 사랑”, “고통을 견디는 기쁨”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가시가 예수의 가시관을 닮았다 하여, ‘그리스도의 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가시는 상처이자 보호였고, 꽃은 그 위에서 더 빛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세 살 꼬마는 가시의 비밀을 이해했을까요?
아마도 이해했다기보다는, 세상의 한 조각을 ‘깨달은 듯한 미소’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나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세 살 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아이들은 눈부신 속도로 배우고, 또 질문합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초등학교 문제조차 외면하며 마음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그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내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았지만, 기억은 늘 여닐곱 살 무렵에서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 이전의 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추억은 기억 저편의 바람이 되어 사라지고, 새로운 바람은 매일 다르게 불어옵니다.
내 단편적인 기억들은 가물거리는 호롱불처럼 새로운 바람과 힘겨운 싸움을 거듭하며 오늘도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시간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두렵습니다.

잊혀져 가는 기억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꽃기린 앞에서 만난 작은 꼬마 왕자는 내게 하나의 위안을 주었습니다.

세상은 질문으로 열리고, 그 질문은 잊히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처럼 남습니다.


아이의 미소, 언니의 대답, 그리고 꽃기린의 붉은 꽃과 날카로운 가시.
이 모든 것이 모여,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시간을 기억합니다.


https://youtu.be/mUnveOntkoI?si=7BRH-H8_0cLUy9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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