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어느 날, 화단 구석에서 누군가 조용히 뻗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가느다랗고 수줍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덩굴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듯
서서히, 그러나 끈질기게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무성한 잎을 내밀었다.
덩굴식물이라면 웬만하면 다 예쁘게 봐주는 편이다.
덩굴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능소화처럼 풍성하지 않아도
초록이 자라나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잘 자라라, 하고.
그리고 며칠 전, 잎 사이에서 작고 귀여운 종 모양의 꽃을 발견했다.
은은한 자줏빛, 부드러운 곡선, 다소곳한 고개.
어쩐지 이름도 예쁠 것 같았다.
그런데 검색창에 뜬 이름은… 계뇨등(鷄尿藤).
닭의 오줌 덩굴이라니.
예쁜 꽃 앞에서 머릿속에 닭장 냄새가 스쳐 간다는 것.
이토록 시적인 배신이 또 있을까.
‘계뇨등(鷄尿藤)’은 말 그대로 닭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나 잎을 비틀거나 자르면 톡 쏘는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가 닭 오줌과 비슷하다 하여 옛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하지만 꽃은 다르다.
냄새는 거의 나지 않고, 오히려 고요하고 단정한 인상만 남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냄새나는 식물에서,
이토록 고운 꽃이 피어나는 걸까.
아이러니다.
어쩌면 자연은 늘 그렇게 우리를 놀라게 한다.
계뇨등은 꼭두서니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Paederia scandens, 영어 이름은 Skunk vine, 즉 ‘스컹크 덩굴’.
원산지는 동아시아, 한국과 중국, 일본의 따뜻한 지역에 자생한다.
6~8월, 잎겨드랑이에서 연보랏빛의 종 모양 꽃이 피며,
열매는 가을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줄기는 길게 뻗고, 다른 식물이나 벽을 타고 오르며,
조금만 방심하면 화단 전체를 점령할 만큼 생명력이 질기다.
계뇨등은 이름과 달리 약용식물로도 유명하다.
한방에서는 오래전부터 관절염, 류머티즘, 신경통에 사용되어 왔다.
줄기와 잎을 말려 차로 달이거나, 환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소염, 해열, 이뇨, 해독 작용이 뛰어나
‘냄새는 독하나 약은 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아픈 몸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치열 등(治熱藤)”, 즉 ‘열을 내리는 덩굴’로 부르기도 했다.
계뇨등은 공식 꽃말이 등록되어 있진 않지만
나는 이 꽃에 이런 의미를 붙여주고 싶다.
“편견을 이겨낸 생명력”
“숨겨진 힘”
“예상 밖의 선물”
예쁜 겉모습이 곧 고운 향기를 뜻하진 않듯,
불쾌한 냄새가 있다고 해서 그 존재가 불쾌한 것은 아니다.
계뇨등은 꽃과 냄새, 효능과 이름, 그 모든 요소가 서로를 배반하며
결국은 조화를 이루는 존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뇨등은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덩굴을 뻗는다.
잎은 더 풍성해졌고, 꽃도 몇 송이 더 피었다.
이제는 그 이름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세상에 꼭 예쁜 이름만 존재할 필요는 없으니까.
https://youtu.be/00Q1GgSEa1c?si=Oo6cJSpLG5DIUTQm
때론 불쾌한 냄새 속에서도, 우리는 삶의 깊은 향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발견은, 늘 조용한 화단 한편에서 시작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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