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노래, 수크령 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나는 수크령입니다

나는 수크령, 혹은 수크령(Pennisetum alopecuroides)이라 불리지요.


벼과에 속한 풀, 여름 끝자락부터 가을 하늘이 높아질 무렵이면 내 존재가 드러납니다.


내 키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대체로 30에서 80cm, 때로는 조금 더 자라기도 하지만 억새처럼 거대하지는 않지요. 줄기는 곧게 서서 뻣뻣하고, 잎은 길고 편평하며 바람이 불면 아래로 고개를 숙입니다.

내 꽃은 8월과 9월, 보슬보슬한 꼬리처럼 솟아오릅니다. 은빛이 돌기도 하고, 흑자색이 감돌기도 하며, 햇살을 받으면 잔잔히 빛납니다. 그리고 9월에서 10월 사이, 나는 작은 열매를 맺어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강아지풀과 닮았다 말합니다. 맞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내 이삭은 더 길고, 원주형으로 곧게 뻗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은근한 빛깔과 곡선은 강아지풀과는 또 다른 매력이지요.


어떤 이들은 나를 ‘암크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국립수목원의 분류 어디에도 ‘암크렁’이라는 식물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수크령, 그 이름 하나로 충분합니다.

내 꽃말은 이렇습니다.


은근한 매력

소박한 기쁨

가을의 향기


나는 화려하게 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스쳐갈 때, 비로소 나의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수백 개의 꽃차례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순간, 그 속에서 나는 가을을 노래합니다.

나는 늘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임도 주변, 숲 가장자리, 풀밭, 때로는 사람들의 정원과 공원에서도요. 어떤 이는 내 잎을 공예품 재료로 쓰고, 어떤 이는 내 뿌리줄기를 약으로 삼습니다. 가축들도 내 전초와 열매를 먹으며 계절을 살아갑니다.

혹시 당신이 산책길에서 나를 마주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세요. 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은 아니지만,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풀, 가을의 전령사입니다. 은근히, 그러나 깊이,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https://youtu.be/0jk3Hp5jAS8?si=SbHpI6wyaC0OKP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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