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샤프란 ― 비 뒤에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나도 샤프란 ― 비 뒤에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


아파트 상가 약국 앞 작은 화분에 해마다 흰 꽃이 핀다.


실처럼 가느다랗지만 굳센 줄기 가운데 하얗게 피어나는 눈부신 꽃,
바로 나도 샤프란이다.


“나도 샤프란이라고 불러줘요!”
절규하듯 하얗게 피어나는 그 모습은 조금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코끝을 가까이 대어 보지만 향기는 없다.


사실 이 꽃 스스로 이름을 정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람이 보고, 샤프란을 닮았다 하여 붙여준 이름일 뿐.
어쩌면 억울할지도 모른다.

◆ 서풍의 꽃, 제피란테스


나도 샤프란의 정식 이름은 제피란테스(Zephyranthes candida).
그리스어 ‘Zephyr(서풍)’와 ‘anthes(꽃)’가 합쳐져 ‘서풍의 꽃’이라는 뜻을 지닌다.


원산지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남아메리카 습한 초원.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들면, 소리 없이 꽃대를 올려 맑은 흰빛 꽃을 피운다.


그래서 영어로는 ‘레인 릴리(Rain Lily)’.
소나기 뒤, 기다렸다는 듯 피어나는 꽃의 이름은 참 잘 어울린다.

◆ 문학 속의 나도 샤프란


순백의 꽃은 오래전부터 문학 작품 속에서 ‘순수한 사랑’과 ‘기다림’의 은유로 등장해 왔다.


한국 시인들도 비 온 뒤 화단에 피어난 제피란테스를 노래하며, 삶의 청정한 순간과 겹쳐 보았다.
특히 시집 『흰 꽃의 시간』에서는 레인 릴리가 “비로소 기다림을 끝내고 피어난 희망의 꽃”으로 묘사된다.


그 모습은 잔잔히 스며드는 위안,
한 줄기 흰 빛으로 남아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 꽃말 ― 순수한 사랑, 기대


나도 샤프란의 꽃말은 순수한 사랑, 기대다.


비 온 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습성은,
마치 오래 기다려온 마음 끝에 찾아온 기쁨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흰빛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시다.


작은 아파트 화분 속에서도,
남아메리카 숲에서도,
나도 샤프란은 소리 없이 피어나 우리에게 속삭인다.


“나는 샤프란이 아니어도 괜찮아.
나답게 피어나는 이 순간이 곧 사랑이고, 기대이니까.”


https://youtu.be/k6QY17QN-IA?si=yMocnPxddaSGiz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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