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허브 이야기
쓴 세상을 부드럽게 잇는 뿌리
우리는 누군가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꼭 필요한 사람을 두고 ‘약방의 감초’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친숙한 표현 뒤에는, 감초를 우리 땅에서 키우기 위해 무려 600년 가까이 이어진 조선과 현대 과학자들의 긴 사투가 숨어 있습니다.
조선 세종대왕께서는 백성들의 병을 다스리는 약재가 대부분 값비싼 중국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거의 모든 처방에 들어가는 핵심 약재가 바로 감초였습니다. 세종은 여러 차례 감초 종자를 들여와 시험 재배를 시도하게 했지만, 사막성 기후에서 자라던 감초에게 고온다습한 한반도의 장마와 토양은 가혹했습니다. 뿌리가 쉽게 썩고 병이 들어, 감초는 늘 실패의 기록으로만 남게 됩니다.
이 오랜 기다림은 202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을 맺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이 수십 년간의 유전자 선별과 재배 실험 끝에, 한국의 기후를 견디는 국산 감초 품종 ‘원감(元甘)’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름 그대로 ‘근본이 되는 단맛’, 우리 흙에서 태어난 첫 감초라는 뜻을 지닌 이 품종은, 한국 약용식물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한의학에서 감초는 ‘국로’, 곧 나라의 어른이라 불립니다. 이는 감초가 모든 처방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질이 강한 약재가 몸을 해치지 않도록 누그러뜨리고, 차가운 약과 뜨거운 약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중간에서 조율해 줍니다. 그래서 감초가 빠진 처방은 ‘기본이 무너진 약’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감초의 학명 Glycyrrhiza는 ‘달콤한 뿌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감초의 단맛은 설탕보다 수십 배 강하지만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 은은한 단맛은 쓴 약의 마지막에 남아, 몸과 마음에 오래도록 부드러운 여운을 남깁니다. 그래서 감초는 약이 아니라 위로처럼 기억되곤 합니다.
감초는 단지 ‘조화를 돕는 재료’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의학에서 감초는 해독, 소염, 진정, 면역 조절 작용을 지닌 약초로 수천 년간 사용되어 왔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감초의 주성분인 글리시리진(glycyrrhizin)과 플라보노이드 계열 성분들이 간 보호, 항염, 항바이러스, 위점막 보호 작용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개발된 국산 감초 ‘원감’은 중국산 감초보다 글라브리딘(glabridin) 함량이 높아, 피부 미백과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성분은 멜라닌 생성을 억제해 피부 톤을 맑게 만들어, 한방 화장품과 기능성 화장품의 핵심 원료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감초는 이제 약재를 넘어 ‘우리 땅의 미용 식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몸이 무겁고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는 국산 감초 몇 조각을 대추나 생강과 함께 달여 차로 드셔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감초의 부드러운 단맛이 긴장을 풀어 주고, 대추의 따뜻함이 혈과 기를 덥혀 주며, 생강의 매운 향이 몸속의 습기를 걷어냅니다. 이 작은 찻잔 속에는 600년 동안 우리 땅에 뿌리내리기를 기다려 온 식물의 인내와 회복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독선보다는 조화를,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택한 감초의 삶. 그 조용한 지혜가 우리 일상에도 잔잔히 스며들기를 바라게 됩니다.
· 한글명: 감초(甘草)
· 학명: Glycyrrhiza uralensis Fisch.
· 과(科): 콩과(Fabaceae, 豆科)
· 사용 부위: 뿌리와 근경
· 주요 성분: 글리시리진, 글라브리딘, 플라보노이드
· 주요 효능: 해독, 소염, 위장 보호, 면역 조절, 피부 미백
· 한국 품종: 원감(元甘, 2023년 개발)
· 문화적 의미: ‘국로(國老)’, 조화를 이루는 약재
· 상징: 화합, 중재, 부드러운 힘
https://youtu.be/iXSDpNDFE6M?si=kyOo7Mb1xKqSrC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