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화의 의미로 본 바위솔 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바위솔

— 달력 밖에서 다시 피어나는 마음


◆ 달력에 갇히지 않는 꽃


어떤 꽃은 날짜보다 먼저 마음속에 도착합니다. 바위솔이 그렇습니다. 2월 6일의 탄생화라는 문장을 읽기도 전에, 나는 이미 여러 번 그 이름을 지나왔습니다. 다른 계절의 책갈피에서, 다른 이의 글귀에서, 혹은 오래된 돌담 아래에서.


그래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꽃은 달력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달력 바깥으로 번져 나온 것이 아닐까 하고. 탄생화라는 제도가 정해 놓은 자리에 얌전히 서 있기보다, 사람들 마음을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닌 이름. 바위솔은 그런 식물입니다.

2 부용다육이.jpg
20220411_185943.jpg


참고로 바위솔은 식물학적으로 다육식물의 한 가족에 속합니다. 돌나물과 바위솔속에 자리하며, 잎과 줄기에 수분을 저장해 건조를 견디는 성질을 지니지요. 우리가 화원에서 보는 에케베리아나 세덤과 계통상으로는 가까운 친척입니다. 다만 온실에서 길러지는 관상 다육과 달리, 바위솔은 돌담과 기와 위에서 스스로 살아온 토종 다육이라는 점에서 결이 조금 다릅니다.


◆ 기와 위의 작은 소나무


와송(瓦松). 기와 위에 자라는 소나무라는 뜻의 이 이름에는 오래된 풍경이 묻어 있습니다. 옛 그림 속 초가와 기와집을 떠올리면, 처마 끝에 조용히 얹혀 있던 초록의 점들이 보입니다. 화가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 속에서 직접 묘사된 적은 드물지만, 그들의 그림에 깃든 생활의 질감 속에는 늘 이런 식물들이 배경처럼 숨 쉬고 있습니다.

바위솔 / 이미지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근대에 이르러 바위솔은 문인들의 산문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돌확이나 담장 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식민과 전쟁을 지나온 사람들의 삶과 닮았기 때문일까요. 시인 조지훈은 “낮은 곳에 뿌리내린 푸른 의지”라 적었고, 어느 수필가는 바위솔을 두고 “가난이 남긴 마지막 초록”이라 불렀습니다. 구체적인 작품 제목이 남지 않아도, 이런 문장들은 우리 문학의 그늘 속에서 여전히 숨을 쉽니다.


서양의 정원 미술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국의 식물화가 마거릿 미(Margaret Mee)는 다육식물을 그리며 “가장 말없는 존재가 가장 긴 이야기를 품는다”고 적었습니다. 화폭 속 바위솔은 화려한 장미보다 작지만, 더 단단한 문장처럼 보입니다.

창덕궁 낙선재 작은 문 지붕 위에서 자라는 바위솔


◆ 척박한 자리의 미학


바위솔은 좋은 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흙이 모자란 자리, 사람들이 이름 붙이지 않는 경계에서 스스로 집을 짓습니다. 그래서 이 식물 앞에 서면 자꾸만 인간의 기준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는 늘 조건을 먼저 묻습니다. 볕은 충분한가, 흙은 비옥한가, 전망은 좋은가. 그러나 바위솔은 묻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밀어 넣고, 제 몸의 수분을 아껴 시간을 견딥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예술가의 태도와도 닮았습니다.


가난한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박수근, 시장 골목을 기록한 천경자,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장인들. 그들의 삶도 바위솔의 잎맥처럼 질겼습니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 중복된 탄생화, 겹쳐진 마음


바위솔이 여러 날의 탄생화가 된 이유를 나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흔들릴 때마다 이 꽃을 다시 불러냈을 것입니다. 달력에 새로운 의미가 필요할 때, 가장 믿음직한 상징으로 바위솔을 적어 넣었겠지요.

그래서 중복은 실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누군가가 한 번 더 밑줄을 그은 자리,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다 작은 별표를 붙인 자리. 바위솔은 그렇게 여러 번 호명되며 하나의 거대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 다시, 오늘의 바위솔


나는 가끔 아파트 화단의 돌 틈에서 바위솔을 만납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리에서 혼자 둥글게 번져 있는 초록. 그 앞에 서면 예술작품을 마주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이 만든 가장 단순한 조각, 바람과 햇빛이 공동으로 완성한 설치미술.


이 식물은 말하지 않지만 분명한 문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가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문장,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문장.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위솔을 다시 씁니다. 여러 번 불린 이름을, 또 한 번 불러 봅니다.


정보 요약

· 학명: Orostachys japonica — 와송(瓦松)이라 불리는 다육식물
· 꽃말: 가사에 근면함, 굳센 사랑, 불굴의 생명
· 상징: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인내와 장수의 이미지
· 문화적 흔적: 기와지붕·돌담의 생활 풍경, 근대 산문과 수필의 은유
· 예술적 시선: 동서양 식물화와 문학에서 ‘작지만 단단한 존재’로 재해석
· 중복 탄생화의 의미: 오류가 아닌 시대가 남긴 선택의 흔적


https://youtu.be/YX0sLHumb3w?si=y8BhLgi5aYqZCj0L

작가의 이전글우리 땅에서 자라는 허브 ⑨ 천사의 약초 당귀(當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