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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짜장 Mar 19. 2024

손주 베이비시터 엄마께 월2회 휴가를!

베이비시터 할머니 손주 육아

3월8일은 엄마 생신이다. 그동안 엄마께서 베이비시터로 일하시면서 본인의 기념일을 챙기지 못하셨다. 베이비시터 세계에선 휴가라는 개념이 잘 없는 거 같았다. 


 딱 한번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부부가 엄마를 법인 직원으로 고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4대보험도 들어줬고, 명절 떡값, 휴가도 줬었다. 다만 그집은 쌍둥이 집이었고 주6일 근무가 기본옵션이었다. 일이 그만큼 고되었지만 엄마께선 그때 베이비시터일을 시작하신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지, 이게 불합리한지도 모르고 일하셨던 거 같다. (물론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돈을 많이 줬다. 월 400만원?ㅎㅎ)


 무튼 '엄마의 생신'을 계기로 엄마와 근로계약서를 쓸 때 휴가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엄마께 그동안 휴가를 받으신 적이 있는지 여쭤봤다. 그래야 내가 기준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딱히 그런 건 없었다고 하셨다. 혼동이 왔다. 


 그럼 엄마는 평일에 언제 쉬셨냐고 물으니 '아기 엄마나 아빠가 쉬는 날에 쉬거나, 해외여행을 갈 때나 쉬었지.' 하셨다. 정말 그랬던 거 같다. 엄마는 딱히 휴가라는 개념이 없었고 그동안 아기 엄마&아빠가 쉬는날에만 '통보적'으로 쉬었던 것이다. 


  아기 부모가 2-3일전에 '쉬세요'하면 엄마는 갑자기 시간이 생겨서 은행일, 관공서 등과 같은 업무 (평일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급하게 처리하셨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잠시 도서관에 가셔서 책을 보면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엄마께서 원하는 날 휴가를 갖는게 아닌 '통보적'휴가만 받아오셨다.


 그런 모습을 봐왔으면서 나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엄마께 휴가도 드리지 않고 주5일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오게 했고 심지어 늦게 퇴근해서 엄마가 집에 8-9시에 가시는 날도 있었다. (원래는 오후6시인데..) 또 내가 바쁠때는 주말에도 한번씩 서울에서 부천까지 먼길을 나와주셨던 엄마였다.


 엄마의 생신날이 다가오자, 휴가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못된딸. 딸이라서 더한가보내' 자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책만 하면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당장 3월부터 엄마께서 원하는 날 쉬는날을 정해달라 말씀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엄마의 생신때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께 3월8일 금요일 생신날 오지 마시고 쉬시라고 말씀드렸다.(또 통보인가?) 한사코 '오전까지만 나와서 아기를 봐주시겠다고, 그래야지 너가 일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겠냐'며 오시겠다는 엄마의 뜻을 꺽어 '제발 쉬세요'라고 말씀드렸다. 10번쯤 말씀드리니 집에 가실 즈음 '그래, 그럼 난 내일 안 올게~월요일에 보자!'라고 하셨다. 에휴..


 사실 고민이 되었다. 생신인데 혼자서 보내는 것보다 손주가 있는 집에와서 맛있는 음식먹고 시간 보내시는 것이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혼자서 계시면 왠지 쓸쓸하게 보내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들기도 했는데, 이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가진 휴식으로 열심히 은행일을 보셨고, 손주가 부러뜨린 안경을 다시 맞추느라 안경집에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알뜰교통카드'발급도 마치셨다고 하셨는데 아주 바쁜 평일 휴가를 보내신 거다. 


 오랜만에 가진 휴가 시간을 내심 좋아하시면서도 계속 '너 바쁘지 않아? 엄마가 괜히 쉬어서..'라고 하시는데 나는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 화를 냈다고 해야할까. '바빠!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생신에 나오는 건 더 싫어!' 라는 식으로 말을 했던 거 같다. 


 나중에는 정신을 차려서 '엄마, 나는 엄마께 휴가를 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행복하면 됐어요. 그러니 그만 미안해해요.'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이 엄마께 100%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못된 딸이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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