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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짜장 Apr 15. 2024

이어폰을 빼고 걸어보세요.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어요

 임신을 했을 때 일이다. 그러니깐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개랑 산책을 하는 중에 장애인 한분을 만났다. 나보다는 어려보였지만 덩치가 상당히 큰 여성분이었는데 날씨가 추운 초봄에 맨발로 걸어다니고 있었고 바지 고무줄이 늘어져서 엉덩이가 거의 보일 지경이었다. 


 한눈에 봐도 뭔가 정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저기요'하면서 따라갔는데 나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더니 또 직진해서 어딘가를 바쁘게 가버리는 그녀. 나는 그녀를 다시한번 불러세우고 '집이 어디에요?'라고 물어봤지만 멍하니 나를 응시하더니 자꾸만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맨발로 다니는 그녀와 함께 나는 개를 데리고 10분간 추격전을 벌이면서 한손으론 112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손이 차가운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랜시간 밖에 나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동안 아무도 이 여자분을 신경쓰지 않은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경찰에게 위치를 알려줘야하는데 그녀는 자꾸만 앞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다행히도 경찰관들은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해주셨는데 그제서야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했다. 맨발에다 고무줄이 다 늘어져서 흘러내리는 바지,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게 크레파스를 손에 꼭 쥐고 있는 그녀를 사람들이 봐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재를 엄마도 뒤늦게 알았는지 30분이 지나서야 가출신고접수가 들어왔고, 그제서야 그녀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집이 있었고 우리집에서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끔씩 내눈에는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 보인다. 




임신을 했을 때 일이다. 이날도 개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저멀리서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울면서 '엄마, 엄마' 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있는 쪽은 도로변이었는데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은 없고 할머니 한분 그리고 아저씨 한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이 아이에겐 내가 엄마로 보여서 다가오는 거 같았는데 한눈에봐도 아이가 길을 잃은 거 같아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그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푸름이를 끌고 가서 아이에게 다가가며 '왜? 무슨일이야?'라고 물어봤으나 아이는 놀란 마음에 울기만 했다.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주변 분들에게 '이 아이 가족되시냐?' 물어봤으나 다들 모른다고만 할 뿐이었다. 토닥토닥 안아주고 달래주니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을 그쳤다. 아이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이름을 물어봤지만 아직은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너무 늦어지면 안되니 빠르게 신고접수를 했다. 


 경찰을 기다리는 5분동안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이를 아시냐?' 고 물어봤으나 역시나 모른다는 대답뿐. 그냥 마냥 자리에 앉아서 아이와 무당벌레 이야기를 하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경찰이 왔고 아이의 지문을 조회했으나 아직 등록이 되지 않아 이름도 불확실한 상황.


 정말 다행인것은 몇 분후에 경찰에서 무전이 왔는데 '경찰인 아빠'가 아이 실종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허허. 아빠가 경찰이라서 다행이군 싶었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엄마로 추정되는 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손을 흔들어보이니 더 소리지르면서 다가오는 엄마. 그리고 같이 우는 딸.


 내가 그 당시 임신을 한 상태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이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다. 연신 고맙다고 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며 재회한 모녀를 두고 나는 산책길을 나섰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주변을 늘 둘러보면서 다녀야겠군.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네'



최근에 있는 일이었다. 차를 가지고 법원 들렀다가 아기 이유식 거리를 사야해서 마트를 들러야했다. 그런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집에 주차를 하고 다시 마트로 나와 장을 봤다. 두손 가득 장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주머니 한분이 휠체어 앞으로 완전 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활동보조사 아님 지인으로 보이는 분도 연세가 있으셔서 여성분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앞에 도와주고 싶어하는 여성분이 한명 있었지만 어린 아기를 안고 있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달려가서 여성분을 내몸에 기대 안아서 상체를 들어올려드렸다. 


 하체마비로 인해 하반신을 움직이기 어려워하는 분이어서 휠체어에 제대로 앉혀드리는 것이 중요했는데 나도 체구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 지렛대 원리를 최대한 사용하면서 앉혀드렸다. 


 만약 내가 어떻게든 마트 근처에 주차를 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면 지나쳤을 장면인데 다행히도 주차자리가 없어서 여성분을 도와드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살아가면서 무수히 비슷한 상황들이 있었는데 어제 샤워를 하면서 '왜 나에게 이런일들이 생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방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데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주 나타나는 거 같은 느낌? 그러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건 나한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수도 있다는 거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저 사람을 내가 도와줘야하나?',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까?' 망설일 때 '나같은 사람'이 조금 빠르게 나타나는 거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전혀 손해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주고나면 나 스스로가 뿌듯해지고 '그래, 누군가 날 필요하는 사람이 있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지 말고 이어폰을 빼고 거리를 걸어보는 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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