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요즘 가끔 그랬다. 약이란 게 꼭 안 가져왔을 때 아프다. 종종 안구건조증 탓에 밤이 되면 두통이 있었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오는 두통인지 바로 안다. 그래서 근래 낮에도 좀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있었다.
저녁 먹으면서도 살짝 두통끼가 있길래, 약국 갈까 싶었다. 필히 그랬어야 했다.
살면서 100번이 넘는 공연을 해봤는데,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다. 일단 두통 탓은 처음이다. 그리고 공연 시간도 가장 길다. 보통 공연은 길어야 40분이었는데, 여수는 50분이었다.
아직 공연 절반 밖에 안 왔음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게다가 오늘 공연은 관객도 거의 없었다. 원래 관객이 없을수록 멘트가 적어져서 힘들다. 아무 반응 없는데 혼자 썰 푸는 거 어렵다. 이래봐도 타고난 내향인이고 자기PR, 자신감 같은 다른 능력을 나의 꿈을 위해 엄청 키웠다.
두통이 심해지자 급기야 어떤 곡에서는 가사를 완전 다 날렸다. 누가 봐도 엠알만 흐르고 안 부르고 있었다. 진짜 정신이 혼미해진 증거였다. 2018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너무 더워서 정신이 나가서 가사가 싸그리 기억 안 났다. 진짜 거의 없는 일이다.
노래가 끝나도 스탭 빼고는 거의 박수가 안 나오기도 했다. 박수와 호응이 있으면 엔돌핀이 돌아서 어떻게든 정신줄이 붙잡히는데, 관객도 없고 두통도 심하면 정신줄 잡기가 어렵다.
그런데 공연 전부터 아팠다고 하지 않았는가. 공연 전에 했던 생각이 있다. '내일이라도 걔가 보러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토요일이잖아. 정말 얼마나 좋을까. 난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오늘내일 버는 돈 다 줄 수 있다.' 했다.
공연 중반부 정신 혼미해질 때, '지금 그 생각으로 버티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눈 앞에 없는 건 없는 거고, 걔가 내일은 보러온댄다 생각했다. 앞서 불렀던 '그런 너라도'도 한 번 더 불렀다. 내일은 이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원래 상상력이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신경 정신 의학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다. 마음 같아선 한 곡 끝날 때마다 가지고 있는 생수를 이마에 대고 좀 머리를 식히고 싶었으나, 그리 하면 사람들 보기에 머리 아픈 사람처럼 보일 거 같아서 한 번 그랬다.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더더욱 웃으려 노력했다.
오늘 같은 날이 앞으로도 생길 거다. 앞으로 웬만해서는 유료 공연만 하고 싶지 않겠는가. 유료 공연은 내 맘대로 취소도 공연 시간 축소도 할 수가 없다.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약은 바로 바로 사야 한다. 그거 얼마 한다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이런 것까지 밝혀도 되나 싶은 걸 밝히는 것도, 내게 진통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