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8 프리라이팅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게시글을 볼 때마다, '역시 내가 힘든 게 이유가 있었구나' 수준도 아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같이 몰려온다.
ADHD인은 RSD라는 거절 예민성을 가지고 있다. 공포와 과도한 생각이 날뛴다. 그냥 잠깐 대화 멈춤이 아니라 완전한 단절로 느낀다. 무엇보다 '완성'에 대한 갈망, 이게 정신적으로 미치게 한다.
그래서 안읽씹이 날 미치게 했다. 읽씹은 적어도 상대방이 답장 의사가 없단 걸 알 수 있다. 내 경험에도 읽씹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읽씹은 그걸로 완성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읽씹이나 안읽씹이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은 비 ADHD인일 것이다. 나의 추리로는 그렇다. 끝맺음에 대한 갈증, 이게 ADHD인이 겪는 고통이다.
안읽씹은, 상대방이 답장 의사가 없단 걸 내가 모른다. 아무리 그걸 기다리는 내 스스로가 꼴보기 싫어서, 채팅창 나가기를 눌러도 이미 내가 보내고 기다린단 걸 알지 않는가.
영국인 친구에게는 답장을 줘야되는 상황에서 며칠씩 안 하면 얼마나 내가 3일이고 4일이고 답장 올 때까지 그 생각만 하게 되어서 미치는지 충분히 다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1시간 전에 메시지 온 거 봤는데 그때 말했어야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이지만, 그게 거듭 반복되니 도저히 친구할 수 없었다. 1시간 전에 봤으면, 1시간 전에 이미 내 고통을 끝내줄 수 있던 것이다. 진통제 달라고 제발 막 소리 지르고 아우성 치는 환자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간호사, 의사랑 똑같다. 남의 고통이니 그 고통 수준을 모르는 거다.
그 친구 경험으로, '하. 역시 ADHD는 설명해서 되는 게 아니야. 애초에 아무 문제 없던 오빠 같은 사람만 친구해야 돼.' 라는 생각이 매우 강화되었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바쁘고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오빠가 24시간 이상 답 없으면 그냥 예의가 없는 거라고 거듭 말해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오빠가 아니었으면 계속 내가 과한 요구를 하는 건 줄 알았을 거다. 오빠 말대로 날 아끼는 사람이면, 절대 그렇게 고통스럽게 놔두지 않는다.
저 글 보면서는 걔랑 같이 지내던 겹지인 여자애와 최근에 손절한 영국인 친구 둘이 떠올랐다. 영국인 친구는 한국말로 욕하면서 분노라도 표출했다. 겹지인 여자애는 걔랑 겹지인이라서, 영국에 가져간 비상 약 먹으면서 온몸을 다 부들부들 떨면서 참았다. 결국 그게 작년 5월 일인데 아직까지도 병으로 남아있다. 걔 귀에 들어갔더라도 그 정도면 분노 표출을 했어야하는 거 아닌가 싶다. 결국 약이 능사가 아니다. 다만 그때는 그 여자애가 막 나에게 공격을 하던 상황이라 빨리 차단해야만 했다. 상대방이 공격을 해오면, 정상적으로 언어가 나가질 않고 욕만 나간다. 발작하며 욕만 치게 된다. 그건 정말 싫었다. 그 두 사람에게 내가 그렇게 기억되기 너무 싫었다. 그게 얼마나 틱장애 같은 건 줄도 모르고. 평생 모를 거 아닌가. 진짜 틱장애처럼 본인 의지 개입이 전혀 없다. 자폐, 틱장애, ADHD 모두 같은 신경 발달 장애이다.
겹지인은 ADHD였던 걸 몰랐지만 '나는 그게 장애란 걸 아냐. 컴퓨터 오래 돌리면 엄청 뜨거워지는 것처럼 답장이 올 때까지 계속 그 생각이 백그라운드에 돌아가는데 제때 꺼줘야될 거 아니냐.' 하는 작년 5월에 했어야할 말이, 올해 진단 이후로 계속 맴돈다. 작년 하반기엔 오히려 덜하지 않았나 싶다. 진단 이후로는 이게 장애라고 말할 수 있단 걸 알아버려서 분노가 생겨버렸다. 그전까진 그냥 내가 그런 쪽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만 알았지, 장애 영역인 줄 몰랐으니까.
영국인 친구에겐 ADHD에 대해서 올해 내내 말해줬어도 마찬가지 분노 엔딩이었다는 게 굉장히 크게 남는다. 결국 마지막에 나에게 했던 말을 보면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과하게 요구한단 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는 매번, 지극히 당연, 더 요구해도 된다고 난 너무 안 바란다고 말해줘왔다. 어찌보면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 가스 라이팅을 당하든 막아줄 수 있는 진짜 훌륭한 양어머니이시다.
음악학부 친구 중에서도 한국인이 딱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도 며칠, 일주일씩 답장 안 오는 거 알면서도 계속 보내게 되었다. 다신 안 보내야지 하면서도 보내게 되었다. 결국 그 '다신 안 보내야지'가 일 년 넘게 수십 번은 반복 되어야 난 그 친구를 삭제했다.
채팅창 삭제하고, 숨김 친구에 둬도, 어차피 보내봤자 나를 또 열 받게 할 거 알아도, 어쩜 그렇게 보내는 걸 멈출 수 없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았겠나. 한국인 혐오다, 또래 혐오다, 라는 말에는 수백명이 들어있다.
ADHD는 5번 보내면 6번째에는, 6번 보내면 7번째에는 좋은 반응,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뇌가 엄청나게 갈망한단 걸 이젠 알아버렸다. 도박 같은 거였다. 사람 중독. 안 해야지 몇 번을 다짐해도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싹 다 중독 증상이다.
그 친구는 역시나 삭제한지 6개월은 지났는데 한 번도 연락이 없다. 사회성이 참 바른 친구였어서, 역시 내가 눈치가 없었나 정말 그것도 아팠다.
그 친구에겐 분노하지 않은 이유가 뭔줄 아는가. 애초에 겹지인이나 영국인 친구처럼 애착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분노는 그런 애착이 있어야 난다. (물론, 하나 남은 영국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라는 것도 한몫했다.)
신체적 고통. 회피성 짙은 걔가 다 알았을 때, '쟤가 과장하는 걸 거야. 저 정돈 아닐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종종 생각했다. 걔 덕분에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늘었으나 늘 매우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검붉은 피 토하는 기분을 수십 번 느끼게 했다고 하면 좀 비슷할까. 부족하다. 나보고 어떻게 사는 거냐고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종종 말해주는 오빠도 내 뇌를 갈아끼는 게 아니니 모른다. 그냥 가장 알아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제발 ADHD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오빠에게는 ADHD를 애써 설명해서 상대방이 뭘 달리 해줄 필요가 없다. 이미 그냥 모두에게 예의 바르고, 사람을 아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오빠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죽여 놓는다.
걔로 얻은 고통 수준이 너무 말로 형용할 수 없어서, 걔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얻었던 고통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일 수 있어도 결코 작지 않다. 예를 들어, 작년 5월에 손절한 겹지인과 그때 그 억울한 생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떠올라서 힘들어도 되게 큰 일이다. 병원에 얘기해야될 일이다.
어쩌면 ADHD 게시글을 안 보는 것도 때론 인풋을 줄여주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전에도 서점에서 ADHD 책을 읽다가 덮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얻은 트라우마가 확 생각나서 순간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ADHD 책은 주로 ADHD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 나올 때가 많다. 그럼 내 어린 시절은. 생각에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ADHD 게시글을 읽는 것이 내 행복에 방해가 된다면, 또래 사람 이제 다시는 안 둔다는 다짐처럼 피하는 것이 옳다.
한편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ADHD만 아니었어도, 그 사람들하고 한 달, 몇 달에 한 번만 연락하는 지인, 친구 사이만 유지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걸 못 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자주만 안 보냈어도, 날 귀찮게 생각하지 않아서, 놔두면 몇 달에 한 번은 상대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내가 상대를 참다못해 카톡 삭제할 정도면, 상대는 얼마나 내가 귀찮아서 진절머리 난 상태였으려나. 생각까지 흘렀다. 서로 그게 대체 뭔가.
'먼저 연락 다시는 안 해야지' 다짐을 아무리해도 카톡 보내는 게 도저히 막아지질 않는 게, 다 ADHD 탓이니 원망스럽다. 나는 몇 번이고 채팅창을 나가기 눌렀고,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너무 할만큼 했다. 채팅창 나가기를 단 한 번도 안 눌러본 사람이 오빠다. 엄마고 동생이고 누구고 다 나가기 누르는 습관이 되어 있다. 오빠는 작년 2월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대화가 전부 남아있는, 태어나 유일한 사람이다. 기적이다. 그래서 걔의 최대 업적은 나를 지옥에 빠트려서 오빠를 알게 만든 것이다.
걔에 대한 원망도 결국 ADHD 때문 아닌가 싶어서 원망스럽다. '작년 8월에 말했어야지. 작년 2월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도, 애가 자기 때문에 영국에 다시 오고, 연락했으면 정말 메일 답장 한줄이라도 해주지.' 하는 원망이 극심하다. 그런데 비 ADHD인 같았으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비 ADHD인이었으면 답장 없으면 알아들었을 일이었을까.
그런 고통 속에 1년을 둔 사람은 정말 내 사람 될 자격이 없는 거 아닐까.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정도 사랑이 될까. 당장 가족이 죽어도 그거보단 덜 떠오를 것이다. 가족이 죽어도, 1년 뒤에는 하루종일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괴롭지 않을 것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는 나에게 절대 과거 사람이 아니고,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놓아본 적 없다.
혹시 그.. 여수가 창원하고 닮아보이나. 그래서 이러나. 공연이나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