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이야기

동경 예대의 천재들

지은이 니노미야 아쓰토 / 현익출판

by 이가연

'동경 예대의 미친 천재들'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예술해야 된다. 모두가 미쳐 있으면 그것도 그 안에선 평범해 보인다. 다른 나라의 예대, 그리고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엿봐서 상당히 영감을 준 책이다. 일본에서 학사할 생각도 했었다. 직접 도쿄의 한 음대를 방문해서 일본어로 쓴 자작곡을 불러서, JLPT N2만 따면 합격이라고 했다. N2 땄는데 그냥 한국에 있었다. 그때 갔으면 영국 석사를 아마 못 갔을 테니 후회는 없다. 난 이제 모든 선택이 다 하늘이 나를 영국으로 그때 보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하하


읽으면서 '독창적인 사람은 일본 가라.. 한국 미대 가지 마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용음악과 보컬 입시를 했고, 연극영화과 입시만 대략 알 뿐이지 미대 입시는 모른다. 하지만 창의력을 죽여놓는다는 건 알고 있다. 음대나 미대나.


p181 성악과의 장래는 음악캠 중에서도 특히 암울하다고 들었다. 본고장인 해외로 간다고 해도 오페라의 주역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다. (중략) "역시 많이 힘든 편이에요. 합창단에 들어가면 가장 좋겠지만, 생계를 위해 현지에서 관광객 대상으로 가이드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학 능력을 살려서."

- 유명해질 때까지 보컬 트레이너로 생계를 이어갈 줄 알았는데, 타로 상담사가 되었다. 나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다 하기 때문에, 가이드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다. 외국인들이랑 대화하는 걸 한국인보다 더 좋아하니까. 다만 평발 이슈로 평발 깔창이 있어도 남들만큼 오래 못 걷는다.


"누군가가 농담으로 이런 소리도 했었어요. 이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결과가 겨우 이 정도라면 예대가 아니라 다른 대학의 의학부에라도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요."

- 타로에 들인 시간과 돈이 결코 적지 않다. 가끔 '타로에는 별 노력도 안 들인 거 같은데 이 정도라니.' 생각했는데, 음악에 원체 미친 시간, 열정과 돈을 투자해서 비교해서 그렇다. 2021, 22년부터 매일매일 타로 보고 수첩에 기록했다. 타로를 안 본 날이 거의 없던 걸로 안다. 그런데 음악은 2011년부터 싱어송라이터 꿈을 확고하게 가지고 지금껏 노력해 왔다.


처음부터 투자 대비 생각을 안 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음악인들이 경제, 현실 개념이 좀 떨어진다 해도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자 대비 생각하면 누가 음악 하냐. 나야말로 어릴 때 음악을 안 만났으면 의사 됐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운명에 사람 살리는 직업이 있다. 그래서 타로 상담사로 풀리는 듯하다.) 대치동 학원 다닐 당시, 그 대치동에서도 잘했다. 페이스북 접었던 이유가, 나보다도 공부 못했던 초등학교 때 친구들 찾아보니 다 서울대, 의대 가서였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수학하고, 전국 수학 경시대회 금상 받던 시절이 있었다.


p182 "저희는 목소리가 악기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인간의 신체는 놀랍고, 인생이란 놀라우리만치 멋지다고 다들 믿고 있는 거겠죠."

- 가수들은 더욱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노래에 묻어난다.


p183 연애를 마음껏 즐겨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사랑의 노래를 불러 봤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 연애랑 사랑은 달라요 (단호) 내가 보기엔 이 세상 연애에 사랑이 아닌 게 태반이다. 상대방이 다 좋은데 돈이나 직업, 그것만 빼고 다 좋다 그러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이 다 좋은데 키가 작아서 결혼이 고민? 혹시 사랑이 없이 결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면 인정한다. 그냥 결혼이라 하지 말고 '집안 합병'이라 불렀으면 좋겠다. 기업 인수합병 고민하는 사업가들 같다.


연애 마음껏 못 해봤어도, 좋은 노래 부를 수 있다. 무언가를 사랑해봤기만 했다면. 얘를 알기 전에도 (어후 진짜 언급하기 싫어 징글징글징글벨) 음악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자체가 깊었기 때문에 노래를 잘했다.


p193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생각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과 어딘가 비슷해 보였다.

- 나는 항상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열정이 정말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건 좀 너무 뜨겁고, 20대 초반의 열정은... 그때도 뜨거웠다. 지금은... 지금도 뜨겁구나. 어제 마카오에서 10시 넘어 집에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공연팀 지원했다.


p222 졸업생 486명 중 '진로 미정/그 외'가 225명이다. 그 졸업생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 제작을 계속하거나...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중략) "그 외에는 진학하는 사람이 많아.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계속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중략) 예대생의 진로는 '진학'과 '미정'이 80%를 차지한다.

- 그러니 내가 박사도 계속 생각했다. 석사를 논문 없이 졸업한 게 아쉬웠다. (미친 사람처럼 보지 말라. 그러니 영국 유학 내용을 담은 책도 냈다.) 2023년 8월 학사 졸업하고 바로 9월에 석사 들어가서 작년에 졸업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학생 신분 뗀 지 이제 일 년 됐다. 이제라도 유명해질 때까지 보컬 트레이너로 생계 유지하면 되는 게 아녔음을 알았으면 됐다. 대학생 때 내내 그렇게 생각해서, 올해 그걸 깨닫고 좀 막막했었다. 애들 너무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도 적성에 맞으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방문 개인 레슨이 이렇게 아예 안 들어올 줄 몰랐다.


"몇 년에 한 명씩 천재가 나오면 충분합니다. 그 이외의 학생은 그 천재를 위한 주춧돌이지요. 여기는 그런 대학입니다." (중략) "취직하면 일종의 낙오자로 보는 경향도 있어.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예술을 포기했기 때문에..." 많은 예대생의 목표는 역시 전업 예술가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존재는 한 줌에 불과하다. 수많은 사람이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몇 년에 한 명씩만 볼 수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아르바이트 생활이다. 그게 당연한 세계라고 한다.

- 음원 수익, 저작권 수익, 책 인세, 공연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많은 졸업생 중에 몇 년에 한 명 있을까 하다는 걸 안다. 전업 가수가 될 거란 믿음이 흔들려본 적 없다. 현실 감각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늘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백업 플랜이 있었다. 전에는 보컬 트레이너였고, 이제는 타로다.


p226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그걸 사용해 뭘 할지는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냥 망하는 거고...... 성공하는 방법은 직접 찾아야지 별수 있나요. 무엇보다 교수님도 성공하는 방법, 그런 건 몰라요.

- 크게 와닿았다. 정확하다. 한국의 미대, 음대 입시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망한다. 입시곡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디즈니 노래, 자작곡 부르기에 강했다. 그걸 아직도 하고 있다. 그때 이미 다 결정 났다. 선생님이 하라는 곡 했다가 수시는 떨어졌는데, 원래 잘하던 곡 해서 정시는 붙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엄청 거치면서 자기 길 찾은 사람들이 계속한다.


p229 "미래는 전혀 생각 안 해요. 그때그때,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하려고요. 정해진 레일을 따라 뭘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닐까요."

- 대학원까지 졸업 다 해서 그런가, 이젠 저런 말을 들으면 '저것도 다 돈이 있어야 가능한 생각이지.' 하는 나답지 않게 현실적인 생각도 끼어든다. 금전적 감각, 늦게 철든 거 인정한다. 그런데 난 예술가는 절대 철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난 앞으로도 내가 무대에 서서 즐거운 일이라면, 돈 못 줘도 상관없다. 대신 음식 제공, 친절한 직원 같은 그에 합당한 대우만 있으면 된다.


2년 전부터 미래 좀 제발 그만 생각하자 느꼈다. 작년에도 진심으로, 미래를 대비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했다. 올해는 훨씬 나아졌다. 몇 달 전부터는, 6개월 뒤에 죽는다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겠단 생각도 박았다. '어차피 난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하는 나에 대한 믿음이 강화될수록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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