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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2)

김창완 에세이 / 웅진지식하우스

by 이가연

p135 결혼할 나이도 됐고 여자 친구도 있는데 아직 결혼에 대한 확신이 안 서 고민이라는 청취자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춘 남녀가 부지기수입니다.

- 나는 솔로, 환승 연애라는 프로그램 제목만 들어봤지, 유튜브로도 연애 관련 영상은 죄다 피한다. 공감이 안 되고 짜증만 날 거 같아서다. 짜증이라는 표현이 좀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만, 그냥 다 사랑하지 않아서 나오는 고민인데 뭐가 문제인가 싶다. 내 가족이 차에 치일 거 같을 때 뛰어들 때 고민하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저 사람을 지키겠다, 함께하겠다는 마음이다.


나에게 사랑은 저 사람을 잃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다. 가족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나. 결혼은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됐고 애인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난 사람들이 '결혼'이라고 하면 결혼식, 신혼집,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걸 떠올리는 게 아니라, 가족의 개념부터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가족이 뭐냐. (잠깐만, 이래서 오빠가 나보고 사랑학개론 가르쳐도 되겠다 했군.)


만일 여자 친구가 '내가 결혼을 원하는 거 알면서 너는 확신이 없어 보인다. 나는 그런 사람 싫다.'하고 떠나면 어쩔 텐가. 고민이 든다는 거 자체가 사랑하지 않는다. 남들 말처럼, '너가 지금 그러는 게 그 사람이 옆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라거나 '사랑의 유통 기한은 3년이다'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나의 마음보다 못한 사람들이 결혼해서 되나. 나는 지금 외부적으로 보기에 짝사랑에 불과한데도 목숨 빼고 다 줄 수 있는 마음인데, 결혼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근데 나는 왜 이런 주제만 나오면 이렇게 화가 나있을까. 막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이면 이혼율이 20%도 안 될 거 같고.


p139 추억은 일기장과는 또 다른 일인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아름답게 윤색될 수 있어야 추억이라는 거죠. 그래서 궃은일도 용서와 화해와 나아가 사랑이란 액자에 넣고 보면 그럴듯한 추억이 되지요. 아름다워서 추억이 아니라 추억이라서 아름다운 겁니다.

- 누군가는 또 '너가 걔가 없어가지고 미화가 심하게 된 거 아니냐'라고 했다. 미화된 걔도 걔인데요. 미화된 것도 다 이유가 있겠죠? 자꾸 생각나서 불쾌한 구남친들과의 에피소드들도 있다. 불쾌한 이유는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이 막말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내 기준에 사랑이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말들. 근데 걔는 최면까지 해봤지만, 상처는 정말 단 한순간도 안 나오고 사랑만 받았다. 걔는 겉으로만 상처 주고 공격한 거지, 다 마음이었다. 친구 주제에.


그래서 핸드폰에 목소리 녹음된 게 단 하나도 없는 거, 이제 그만 찾기로 했다. 올해까지도 계속 핸드폰 복구 업체 알아보고 고민했었다. 이미 내 마음에 박혀있어서 그럴 필요 없다. 작년엔 걔가 마지막에 정확하게 뭐라고 했는지 미화 없이 오빠랑 같이 들어봐야 알 거 같다고 막 그랬다. 아니, 내 마음이 정답이다. 문득 걔가 지가 말만 이렇게 하고 속은 아닐까 봐? 하고 비꼬았던 말이 또 떠올랐다. 너는 이미 그 말로 나한테 다 들켰어요. (요즘 왜 이러지. 걔 매거진 좀 안 쓰려고 책 읽어도 걔 얘기네.)


설령 내가 이제 다 괜찮다고 해도 걔가 안 믿는다. 하지만 최면 치료받은 이후부터 예전에 비하면 백분의 일로 생각난다. 지금보다도 덜 생각나고, 점점 덜 생각나서 나에게 일어났던 그 극심했던 심장 통증도 다 그럴듯한 추억이 될 거다. '다 괜찮아'가 아니라, '안 괜찮지만 나는 예전의 너도 지금의 너도 스릉흔드....' 라고 하는 게 맞다. (진짜 공개 고백 언제까지 하나. 나도 여자다)


p150 길은 사람들만 만들어서 다니나 봐요. 다른 짐승이나 벌레는 가는 데가 그냥 길이고. 저는 마음속에 길 하나 내볼까 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로 그리움벌레가 되는 거예요.

- '영국에 헤엄쳐서라도 가고 싶다.', '걔가 있는 데라면 아르헨티나라도 당장 가겠다' 따위의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하하 2년 동안 내가 영국에 있든, 마카오에 있든, 걔가 서울이라고 만나자 하면 바로 비행기 탔을 거다. 하하하


그리고 오빠는 이렇게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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