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대로이지만 항상 새로운

2026년을 맞이하며 잡지 만들기

by 이가연

언제나 뿌듯한 나랏돈 이용하기다. 오늘은 2026년을 맞이하며 ZINE을 만들었다. 이거 뭐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고 대출 많이 해서 등록금 낸 값을 하던 생각이 난다. 다만, 거리상으론 가까운데 교통이 별로였다. 마을버스 밖에 없었는데, 네이버 지도에 도착 예정 정보 없게 뜨면 '창원이냐' 싶다. (지역 비하 아니에요! 두 번씩이나 그 볼 거 없는 델 혼자 가다니.)


도착 예정 시간이 예상이 안 되니 늦을까 봐 헐레벌떡 갔지만 당연히 그래도 일찍 도착했고... 공간에 들어서니 개개인 책상마다 색연필, 사인펜, 풀, 가위, 칼, 자, 필요한 건 다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쪽에는 2023년, 2024년 잡지 수십 권이 있었다.


만들기 시간으로 1시간 10분이 주어졌는데,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미루면서 정신없이 집중해서 찾고, 오리고, 붙였다. 영국에서 누드 드로잉 2분 크로키했을 때를 제외하고 올해 가장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옆 사람이 뭘 하는지 둘러볼 여유 따위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내지가 6쪽이 나오도록 만들어뒀는데, 다 제대로 채워야 한다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장은 2025년을 돌아보는 페이지로 꾸며봤다. A4 용지 두 장을 겹쳐서 만들었는데, 이어지는 부분을 마스킹 테이프로 붙이려다가, 더 예쁘도록 배경을 깔아서 자연스럽게 붙였다. 원래도 보라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억'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지구본과 모형 비행기를 발견하고 올해 비행기 타고 갔던 여행지인 영국, 파리, 프라하를 적었다. 그다음부턴 '글씨는 집에 가서 써야지'하고 열심히 오리는 것에 집중했다. 글씨 쓸 펜은 집에도 있지만, 오릴 잡지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공감이 되는 말들을 오려 붙였다. 내 안에는 예술이 있다. 씩씩한 방식으로 노래한다. 첫 EP,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 같은 앨범 모두 올해 나의 모습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말들이다.



1월 영등포구 여의도로 이사했다. 유튜브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운 대로 인스타 릴스 모양을 오려 붙였다. 올해 '내가 진짜 이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구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말 귀찮지만 홍보를 위해 '타로하는 뮤지션' 틱톡, 인스타그램도 개설했다. 틱톡은 나름 반응이 있다.


나를 보면 '늘 그대로이지만 항상 새로운'이라는 말이 딱 맞다. 핵심은 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이벤트를 마구 찾아서 하니까. 6월부터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 만큼, 깨알 같이 '자원봉사', '재능기부' 키워드도 붙였다.



"음악의 아름다움 속에 있다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라는 말, 내 노래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와닿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을 울릴 수 있으면, 모두를 울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나머지는 설명 생략한다. '에라이' 싶어도 나의 올해, 못해도 80%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살았다. 나는 지금 '싱어송라이터. 유튜버'라는 정체성 빼면 시체인데, 그걸 지금 다 무슨 마음으로 하나.


그냥 설명하겠다. 2월 말에 창원 갔었고, 건축가의 관점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도 있었다. 8월 중순까지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강렬하게 떠올라서 가슴이 아프게 찔렸다. 그 전과 후로 완전히 나뉜다. 최면 치료 이후에야 '과거 기억을 그저 덤덤하게'에 한걸음 다가섰다.


다음 장은 다가올 2026년을 생각하며 붙였다. 왼쪽 상단은 그냥 책이다. 내년에도 책 한 권 내면 좋겠다. 그리고 역시 나는 유럽이 좋다. 왼쪽은 독일인데, 특별히 독일에 가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유럽 더 많은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붙였다. 오른쪽은 영국 피시 앤 칩스 가게와 영국 어딘지모를 소도시다. 그리고 빠에야다. 빠에야는 엄마가 못해주는 음식이자 혼밥이 불가한 음식이라 지금 매우 결핍이 있다. 올해 여의도에서 한 번, 영국에서 한 번 밖에 못 먹었다. 영국에서 학교 다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빠에야 푸드트럭이 와서 먹었다. 맛이 대단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빠에야 자체를 좋아한다. 스페인에 2박 3일 있다고 하면, 매 끼니를 1인 빠에야 하는 데 찾아가서 먹었다. 스페인 또 가고 싶다.



여담으로, 영국 관련된 사진을 못 찾겠어서, 영국 찾아주시면 좋겠다고 서로 찾아주고 품앗이를 하자고 외쳤다. 인원이 소수라서 당당히 적막 속에 외치는 게 가능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직원 분께서 열심히 찾아주시더니 맨유 보고 영국 국기라도 찾았다고 주셨다. 축구 잡지 들춰볼 생각을 못 했군. 빅벤, 타워브리지처럼 매우 런던스러운 사진은 못 찾았지만, 저거라도 만족하고 감사했다.


마지막은 '나의 꿈'이다. 일단 데이식스 콘서트와 휴양지 사진으로 배경을 먼저 꾸몄다. 나도 데이식스처럼 히트곡이 생기고, 콘서트 투어하고 싶다. 그리고 만일 내 인터뷰가 잡지에 실린다면, 들을만한 말들을 골라봤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음악을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시적인 표현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순간들, 마치 명상하듯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힘 모두 나와 어울린다. 정규 음반 세 장과 뮤직비디오는 목표인 만큼 넣었다.



바닷가 휴양지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혼자 바닷가 가는 거 이제 제발 제발 그만하고 싶다. 옆에는 '뜬금없는 데이트'라고도 붙였다.


근데, 뭐든 진심을 다해 그냥 좋아하는 마음 그거로 충분하다. 혼자 여행 가면 발만 너무 혹사당한다고, 힘들었던 기억만 가지고 온다고 볼맨소리 하면서도 어떻게든 계속 나갈 기회를 엿보는 게 다 왜인가. '아하 그렇다면 이제 공부하러만 나가야겠구나.' 하면서 런던에 여름 캠프 가려고 계속 생각하는 게 왜인가. 좋아하니까 어떻게든 하려는 마음이다.



뉴욕, 도쿄에 가려고 벼르고 있기 때문에 발견하곤 붙였다. 지금까지 에세이만 내봤기 때문에, '첫 소설집'도 가능할까 하고 붙여보았다. '스몰 브랜드'는 저기 글씨 크기가 전혀 스몰 하지 않다만, 나의 '타로하는 뮤지션' 채널이 앞으로 스몰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보여서 붙였다. 폭풍 성장을 기대해 본다.




오늘은 내가 딱 봐도 최연소 참가자였다. 전부터 느꼈지만, 연령대가 높은 장소에 가는 것이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집단에서는... 서로 몇 살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묻는 게 실례라는 걸 좀 안다. 애초에 관심도 없다.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20대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최연소면, 분위기가 따뜻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약..간 귀여움 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장소는 첫 번째가 강연, 두 번째가 클래스, 세 번째가 평균 연령층이 높은 장소다. 다만, 오늘은 이렇게 내가 가장 어릴지 몰라서 좀 놀랐다. 하기사 20대 초반은 도서관 이용 자체를 안 할 수 있겠다. 시험공부나 하러 오지...


여담으로 꼭 이런 거 만들 때, 직원 또는 강사님께 만들기 하는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한다. 사실 담당자가 진짜 할 일 없는 경우도 많다. 입장을 바꿨을 때, 그들도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 거 뻘쭘하다. 부탁하는 게 좀 부끄러울 수 있지만, 열심히 찍어주신다. 보통은 결과물이나 사진으로 남겨두지, 나처럼 얼굴 나오게 찍어달라고 하는 사람은 나도 주변에서 한국이나 영국이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 나중에 기억에 더 남는다. 정 부끄러우면, "제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서"라는 말을 붙이면서 부탁하기도 한다.


다 만들고 각자 나와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다. 간단하게 말한다고 말한건데, 내가 제일 상세하게 발표했던 거 같다.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다고 다른 참가자 분께 칭찬 받았다. ^^



이번 달이 아직 절반밖에 안 지났는데,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것 같은 무료 행사를 벌써 다섯 번이나 참여했다. 이번 주에만 수, 목, 토, 일 참 재미있었다. 수요일엔 크리스마스 캔들 만들고, 목요일엔 강연 듣고, 어제는 화병에 유리 붙이기 했다. 그중에 오늘이 압도적으로 즐거웠다. 역시 몰입의 경험이 중요하다.


따뜻한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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