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는데... 어렵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심리 상담을 한 번 받으러 가봤는데, 그 한 번에 도움을 못 받았다고 효과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고 치자. 더 이상 대화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한 번? 살면서 나는 심리 상담을 천 번 이상 받아봤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번 학교에서 상담을 받았고, 성인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두번씩이었다... 학창 시절엔 학교 상담이 무료라서, 거의 매일 가던 시기도 있었다.
정신과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문턱을 넘기 어려운 건 알겠는데, 한 번 병원 가봤는데 약 부작용만 나고 별로였다고 다신 안 간다고하면 이도 마찬가지로 더 대화가 어려울 거 같다. 거기까지 하는 것도 아픈 사람들은 어려운 거 진짜 알겠는데... 머리론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그것도 인간의 의지 같다. 아프면 아플수록 치료 방법을 더 찾았어야지. 나는 어떻게든 항상 나를 위해 찾아 나섰다. 나를 안 포기했다. 지금 병원 초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ADHD 하나만 있어도 힘들고, 우울증 하나만 있어도 힘든데 둘 다 가지고 죽고 싶지 않고 살아왔단 건 정말 대단하다고 하셨던 게 난 매우 이해된다. 내가 앞으로 설령 10개 국어를 하든, 석사 학위를 5개쯤 모으든, 그게 제일 대단한 게 맞다.
정신과에 처음 가본 게 2015년이니, 그동안 수도없이 가봤다. 지금 다니는 병원조차도, 이 약도 부작용, 저 약도 부작용, 계속 겪었다. 약 부작용으로 15kg 이상 쪘다가, 10kg 혼자 빼봤다. 10년 동안 병원 오진으로 ADHD 진단도 못 받았다. 괜한 약 때문에 너무 고생했다. 그런데도 지금 병원에서 부작용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그게 왜 선생님 잘못이여.. 싶었다.
남의 노력도 박수를 쳐줘야하는데, '그걸 지금 노력이라고...' 생각이 앞선다는 건 내 마음의 치료가 아직 완전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안다.
병원에서 알려주셨다. 과거 최면 치료사나 상담사가 나에게 줬던 상처가 자꾸 생각 난다고 했더니, 그건 내가 지금 심리 상담이 필요하게 느껴서라는 답을 주셨다. 그래서 심리 상담이 필요 없도록 약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내 안에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끼니까 자꾸 생각이 나던 거다. 하지만 병원에서 추천한 상담사도 다 싫다고 퇴짜를 놨기 때문에, 상담이 필요하면서도 너무 싫으니 욕구가 충돌되었다.
지금도 이 글이 나온 이유가 뭘까. 딱히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 적도 없고, 그래서 누군가의 노력을 폄하하는 생각이 들어본 적도 없다. 다 나의 상상 속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쏟아진다. 또 누군가 친구든 애인이든 서로 알아가면 내가 답답하고 대화하기 싫을까봐. 사람을 원하는데 동시에 사람이 싫으니까. 상처 수준이 비슷해야될 거 같다. 그런데 또 경제적 수준에 차이가 나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 항상 겁이 난다. 가정의 경제적 환경이 비슷하면서도 상처 수준은 깊어야하니, 나는 친구든 애인이든 만날 수 있는 풀이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다. (얕은 친구는 못 둔다. 모두와 깊게 친해지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한다! 이 글을 읽을 99% 사람들과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우월감이 아니라, 지긋지긋함과 피로감이다.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디지털 싱글 한 번 냈는데 반응이 없어서 다신 안 낸다'라고 하면 '그래라' 한다. 그런데 앞서 예시를 든 것이 상담과 병원이다. 그러니 본심은, 상대방이 상담이나 병원을 계속 안 다닌다고 노력을 폄하하고싶은 게 아니라, 내가 계속 상담과 병원이 필요한 현실이 싫은 거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충분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왜 이렇게 남을 비하할까. 우월감을 느끼는 게 좋은 건가.' 자책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이런 글을 좀 그만 쓰고 싶다가도, 내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기록도 의미가 있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