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테이블 또래 대화를 들으며

by 이가연

어쩔 수 없이 카페에 혼자 앉아있다보니 옆 테이블 말소리가 들렸다. 거슬려서 정말 안 듣고 싶었는데, 헤드폰을 쓰기엔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고, 그냥 즐기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또래 여자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나는 또래 20대랑 대화 안 통하겠단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20대는 불안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확고하다. 남의 말 들을 생각이 없다. 직업? 계속 이렇게 싱어송라이터와 타로 상담사 할 거다. 다른 거 안 맞는 거 다 확인했다. 뭘 제안해도 내가 어련~히 다 해봤다. 남자? 확고하다. 소개팅, 결혼정보회사, 뭐 누굴 만나기 위해 모임 가고 찾아다니는 거 다 관심 없다.

옆테이블 한 명은, 자기는 지극히 평범한 삶, 안정적인 직장이 좋다고 했다. 내 보기에 인간 90%가 그렇다. 안 그러면 ADHD 성향이 있거나 ADHD다.

그래서 그동안 내 친한 친구도 둘 중 하나였다. ADHD 성향이 있거나, 전혀 없고 그냥 내 얘기 들어주기만 잘하던 사람이었다. 과거 한국에서 친하던 친구가 ADHD 성향이 분명 있던 걸로 보이는데, 그만큼 관계가 톡식했다. 후자는 영국인 친구였는데, 그럼 나만 광대인 느낌이 든다. 나만 말 재밌게 잘하고 웃긴다. 그래서 앞으로 ADHD 성향이 있되 톡식하지 않고 건강한 사람하고 친구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그게 영국에 있는 오빠다. 오빠가 복제되어 서울에 있었으면 좋겠다.

카페에 혼자 잘 안 가는데, 밀크티가 먹고 싶어서 갔다. 내 입맛에 딱 맞는 밀크티 집이 신촌에만 있다. 프랜차이즈라 여의도에도 있긴 한데, 뭔가 여의도점은 너무 달았다... 역시 본점이 최고다.

옆테이블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 싫었는데, 다른 내 또래는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들으니 나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스트레스 없이 사는 거란 자각도 들었다. 가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결혼과 출산이 하고 싶은 내 또래 여자는, 나이 드는 게 싫고 쪼들릴 것이다.

게다가 나는 몇 년 전부터 전통 한국 나이는 취급도 안 하는데, 여전히 쓰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 갔다오면 다들 만 나이로 잘 쓰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지금 97년생들은 내년에 서른이란 생각으로 산단 말인가. 올해 3월에 공연 갔다가 97이라고 하니까 "곧 서른이시겠네요" 소리 들었던 기억이 또 났다. 그런 경험들이 몇.백.번 모여서 낯선 한국인을 매우 싫어하게 만들었다. 난 당시 27살이었다... 왜 곧 서른인데요. 내가 어리게 사는 게 아니라, 너그들이 이상하게 사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몇년 전부터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나이 얘기해주면 다들 매우 이상해했다.... 법이 바뀐지 언젠데 더 이상하다.

20대가 가진 대부분의 스트레스, 고민이 없다. 기껏해야 요즘 타로 채널 조회수가 잘 안 나온다 정도다. 개인 상담 문의도 잘 안 들어온다. 한마디로 당장 수익이 적어서 좀 스트레스이긴한데, 그렇다고 집에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생계 문제가 아니다. 솔로인 게 힘든 게 아니라, 남자를 찾아다니는 과정이 힘든 것이다. 과거 나는 그랬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도 없다.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어서 힘들었던 게 아니다. 낯선 사람 만나고다니던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내가 만나던 낯선 사람 90%가 여자였다. 그걸 끊고 해방되었다.

2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의 시기인데, 나는 너무 잘 살고 있는 거 같다. 나는 한국인들이 부럽다고 하는 말을 정말 극혐하는데, 부럽단 말 안 할 또래가 없을 거 같다. 나보다 더 잘난 친구여야 한다. 사방팔방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오빠 같은 사람 아닌 이상 나한테 30초에 한 번씩 부럽다고 해서 날 질리게 할 거 같다.

이렇게 글을 쓰니 옆테이블 말소리가 안 들린단 걸 깨달았다. 집중할 게 있으면 안 들린다. 오케이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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